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7.14 | 고린도후서 4장 13-18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후서 4장 13-18절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새벽 묵상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염려를 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물질'에 대한 염려와 '건강'에 대한 염려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가장 큰 염려 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도 주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막연한 불안과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8 이하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 마음속에 염려가 생기고 낙심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낙심하게 되고 염려와 근심이 쌓이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높은 직책을 가졌어도, 죄를 범하면 마음 한 구석은 항상 불안한 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 때문에 오는 근심과 낙심은, 죄를 회개해야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매일 반복되는 수많은 죄악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시기심과 교만과 탐심과 거짓말과 모든 외식과 위선된 삶의 모습들이 우리속에서 매일 계속되는 죄악들입니다.



이러한 죄를 없이 할 수는 없지만, 이것들을 회개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안고 있는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죄의 짐입니다. 그 무거운 죄의 짐을 주님께 내려 놓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있는 염려와 불안이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바라기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온갖 짐같은 죄악들을 하나님께 낱낱이 고백하여, 죄 때문에 찾아오는 염려와 근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이 가져다 주시는 참된 평안과 안식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늘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염려가 찾아오는 것은 '고난' 때문입니다.



고난과 고통이 계속되면 낙심하게 됩니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긴 병에는 효자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처럼 계속되는 고난속에는 평안이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자들에게 주시는 고난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고난이 아니라, 도리어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대장장이는 어떤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쇠붙이 하나를 들고 수십차례 뜨거운 불속에 집어 넣다 뺏다하면서, 커다란 쇠망치로 두두리고 또 두두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쇠붙이를 더욱 더 강하게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쇠는 때리면 때릴수록 강철이 된다고 합니다. 그 안에 있는 눈에 보이


지 않는 미세한 기포들이,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좁아지고 없어져서 결국은 튼튼한 강철로 변한다는 겁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진흙도 수도 없이 쳐야 단단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답니다.)



아무리 쓸모없는 쇠라도 풀무불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온갖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때리고 또 때려서 생활에 필요한 유용한 제품으로 변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도, 우리를 더욱 더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습니까? 이삭을 빼앗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그 같은 고난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욱 더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고난을 통과한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의 축복과 ‘믿음의 조상’이라는 커다란 축복을 얻었습니다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격어야만 했던 욥도 그 고난을 참고 이겨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허락해 주셨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깨닫는다면, 어떤 고난이 우리앞에 닥치더라도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고난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고난당할 때 그 고난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먹구름 뒤에 감추인 빛나는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믿음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있는 염려 근심을 물리치고, 고난중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코스트코 같은 매장에 생활필수품들을 사두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왔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물론 무슨일이든 적당한 준비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보험도 들고 연금도 가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너무 지나치면 ‘불신앙’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나친 염려는 불신앙에서 나오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도 이런 불안과 염려 때문에 몰래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내 힘으로 하는 것 같아도 결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겁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일 무슨일이 일어날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최후의 승리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습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영생의 부활을 우리는 확실히 보장받고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께 맡기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본문 16절 말씀처럼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겁니다” 



무슨일을 만나도 믿음안에서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