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5.26 | 고린도전서 11장 27-34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11장 27-34절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새벽 묵상


바울은 우리가 성찬에 참예할 때에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을 나눌 때에 주의 몸과 피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마음의 감동없이 임해서는 안될 겁니다. “그저 교회에서 때가 되었으니까 하는가 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관습적으로, 생각없이 참예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태도입니다. 



성찬을 받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진지한 자세로 참예 해야지, 아무런 생각없이 가볍게 성찬에 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겁니다. 



회개하는 마음없이 그 죄를 그대로 품고 성찬에 참여 한다든지, 형제에 대한 미운 감정을 그대로 품고서 성찬에 참예하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나라 국기인 태극기를 땅에 놓고 짓밟는 행위는 단순히 하나의 천 조각을 짓밟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태극기가 상징하고 있는 우리 나라를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찬에 합당치 않는 자세로 참예하는 것은 주의 몸과 피를 경멸하는 겁니다. 주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찬에 임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는가? 이웃과의 관계는 바로 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는데 과연 충성 되게 그 사명을 잘 감당해 왔는가? 하나님을 내 목숨과 내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것들을 우리가 먼저 살펴 보라는 겁니다. 그러는 가운데 잘못된 것이 생각나거든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성찬에 임하는 것은,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함부로 경망스럽게 성찬에 임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의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 31절에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그랬습니다. 그리고 32절에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 그랬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죄 짓는 행위를 할 때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지금 고린도교회에 약한자, 병든자가 적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찬에 합당치 않은 자세로 임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함부로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시는 똑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죄짓는 일을 경고하기 위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의 몸을 약하게도 만드시며, 병으로 고통 당하게도 하시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우리의 목숨을 잃게 만들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33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찬이 거룩한 예식이 되도록 서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찬은 결코 우리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이왕 주시려면 좀 빵도 큰 것으로 주시고, 잔도 큰 잔으로 주시지, 이게 뭡니까?” 물론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찢기신 살을 조금만 받아도 황송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뜨거운 보혈을 우리가 마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피 한 방울도 소중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자세로 임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성찬에 대한 불경한 태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판단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34절 끝 부분에 “그 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 잡으리라” 고 했습니다. 



성찬과 관련해서 자신이 못다한 가르침은 바울이 고린도에 갈 그 때에 올바른 지침을 주겠다는 약속으로서 성찬에 대한 가르침을 끝맺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자기를 살피지 않고, 합당치 않은 태도로 먹고, 마시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즉, 이천년 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던 군중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성찬은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을 때  그 피의 공로가 나에게 적용되는 것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성찬의 목적은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몸 찢기시고 피를 흘려 돌아 가셨다는 이 사실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제 성찬을 받을 때만이 아니라 우리는 예배, 찬송, 기도 할 때도 항상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는가?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는가? 내 마음속에 회개하지 못한 죄가 도사리고 있지 않는가? 이것을 우리는 늘 먼저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안에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임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