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5.06 | 고린도전서 2장 10-16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2장 10-16절


10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절.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절.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새벽 묵상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교인들 간에 파당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1:11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분쟁의 이유를 바로 육신의 생각으로 육신을 따라 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복음을 받지 아니한 구원받지 못한 자를 말합니다. 불신자입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서 예수 안믿는 불신자들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본성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예수 믿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도덕적이고 공의로 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적 진리에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출석을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는 교인도 바로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1)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예로 우리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많은 말씀과 기적을 베푸셨지마는 저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1:21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고 합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지마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매사를 육체를 따라 행동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육체를 따라 행하는 사람 들어 쓸 수 없습니다.



고전1: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랬고, 29절을 보면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손에 붙들려 지기를 바랍니다. 육체를 따라 행하지 말고 내 생각보다 성령의 생각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육에 속한 사람의 또 한가지 특징은 



2)성령의 일이 저희에게는 미련하다는 것이고 바보짓이라는 겁니다. 고전1:23- 24절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거리낀다’는 말의 뜻은 반갑지 않은 소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미련하다’란 말은 어리석다 즉 바보짓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판으로 의역한다면 이 세상에서 뜨기를 바라고 튀기를 바라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반갑지 않은 뉴스고 바보 짓으로만 보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는 바로 고난이요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16절 이하에 보면 한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어 어찌할꼬 생각하다가


그래 이렇게 해야지 하고 곡간을 늘리고 모든 곡식을 거기에 쌓아 두고는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하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 때 어리석은 자여 하는 말은 “야! 이 바보야 !” 하는 말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이 바보 짓처럼 보이지마는 실상은 세상일이 바로 바보 짓인 겁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 바로 육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인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더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가 듣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1912년 세계최대의 해난사고가 일어나 513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했습니다. 바로 당시 영국의 최대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입니다. 이 배는 침몰하기 직전에 무려 5번이나 경고를 받고 6번째 “빙산을 조심하시오” 라는 경고 전문이 왔을 때에는 귀찮다는 듯이 “조용히 해, 나는 바쁘단 말이야” 하고는 “하나님도 이 배는 가라앉게 할 수 없다”고 선장은 코웃음 쳤습니다.


그러나 불과 35분 뒤에 이 배는 빙산과 충돌하여 바닷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따라가면 파멸의 빙산에 부딪치니 인간들에게 제발 주의하라고 경고하지만 현대인들은 자신을 너무 신뢰하기 때문에 무시하다가 파멸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신령한 자 즉 영에 속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신령한 자란 영에 속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럼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을 좇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10절에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며, 11절에도 보면,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좇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을려면 성령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바로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럼 영에 속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5절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신령한 자는 영적 분별력을 가진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세상사람들에게 비난 받거나 지탄받을 일을 하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에 속한 사람을 고전 2:6절에 ‘온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자란 성숙한 자란 말입니다.



온전하다 성숙하다란 말의 뜻은, 의사들이 부러진 뼈를 제자리에 맞춘다는 뜻이 있습니다. 군인들이 전쟁을 위해 군대를 정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부가 출항하기 위해 그물을 수선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삶이 부러져서 고통을 당합니까? 삶이 정돈되지 않아서 의욕을 잃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의 그물이 정비되지 아니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빠져나가고 있읍니까? 온전해 지시기 바랍니다. 영에 속하시기 바랍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삶의 부러진 뼈가 맞추어 지듯이, 군대가 정비되듯이, 그물이 수선 되듯이 온전케 될 줄 믿습니다. 



그럼 어떻게 신령한 자 즉 영에 속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5:16-17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을 좇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 받아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