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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5.05 | 고린도전서 2장 1-9절 | 구진모 목사



고린도전서 2장 1-9절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절.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절.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절.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새벽 묵상


믿음이 있다는 것이 뭡니까? "주님의 믿음을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이 있습니다 할 때 그것은 주님의 믿음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럼 주님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마가복음9: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즉, 믿음은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 베냐민 지파의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 유대교 최고의 지성인 가말리엘에게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알기 전부터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으로서 기독교를 핍박하는 최전선에 앞장서서 스데반을 죽이고, 다메섹의 기독교인들가지 잡아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거기서 거꾸러졌습니다. 그후 그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온 생명을 바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많은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총명을 주셨고, 많은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떨었노라”고 했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는 마음이 약해지고 두려워서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 왜 바울이 이처럼 갑자기 나약한 인간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자기의 지식과 지혜 경험과 능력만 믿고 전도하다가 실패한 쓰디쓴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 오기전에 아덴에 들러 전도했었습니다. 아덴은 헬라의 수도로서 철학의 도시요 헬레니즘의 총 본산입니다. 바울은 본래 예수님 믿기 전 철학을 많이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옛날 솜씨가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한바탕 실력 발휘하여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흥미는 있어 하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여기서 바울은 완전 실패했고 참패당한 겁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지만 아덴에서만은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로 간 겁니다.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이 번성한 도시로서 부유한 생활을 했습니다. 무역이 성하니 여러 다른 종족들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곳은 신상이 많았습니다. 도덕과 윤리가 말로 할 수 정도로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덴에서 선교에서 실패한 바울이 이곳에 와서는 마음이 약해지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8:9-10에 보면 성령께서 바울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여 잠잠하느냐? 이 성중에 구원받을 내 백성이 많으니라 너는 나가 담대히 말씀을 전하라"하시매 바울은 큰 결단을 내리고 말씀을 전하니 많은 사람을 얻게 되었고 고린도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일 평생 3번의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1. 자기가 핍박하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결단입니다. 2. 자신의 모든 일생을 주를 위해 바치는 결단이요. 3. 오늘 본문 말씀대로 십자가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는 결단입니다. 오직 십자가만 알고 십자가만 높이고 십자가만 믿고 나갈 때 큰 힘과 능력이 나타나게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제1단계의 처음 믿음, 처음사랑, 처음열심은 힘이 있고 열정이 있습니다. 뜨거운 믿음이 있습니다. 이때 은혜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이 첫사랑의 믿음은 한가지의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이 올 때 넘어지기 쉽습니다. 유혹 받기 쉽고, 미혹되기 쉬워서 속기도 잘하고 자칫 속이는 자가 엉뚱한 곳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면역이 되어 있지 않은 겁니다. 마귀는 이런 사람을 잘 노립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반드시 "이 사람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자가 없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제2단계의 믿음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무엇인가 많이 배우고 남에게 많이 듣고 경험하게 되니 지식의 폭이 넓어지고, 교회생활의 요령도 알게 되고 많은 크리스찬들과 사귀면서 이런말 저런말 많은 말을 들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세련되고 성숙한 크리스찬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배워서 세련되고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이 곧 힘있고 능력 있는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많이 듣고 배워서 아는 것 같은데 지식은 늘어 판단은 하는데 열정과 의지가 식어져서 움직이지를 못하니 능력이 없습니다. 



처음 은혜 받았을 때는 전도도 나가고, 금식도 하고, 기도원에도 가서 며칠씩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정도 교회에 대해서 알고, 직분을 받으면, 그런 일에 참여하는 일들이 뜸해 집니다. 점잖아 집니다. 성경도 안읽고, 기도도 안하고, 전도는 생각도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다 무식할 때나 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3단계, 차음 믿을때 같이 순수하고 단순한 신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단순해서 자기 원하는 것은 시간이나 장소 불구하고 울어버립니다. 염치나 눈치코치 같은 것 모르고 사달라고 소리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는 겁니다. 아이가 울면 부모는 세상없어도 아이를 만족시켜 주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웁니다. 아이는 "어떻게 걷나?"하는 방법을 생각지 않고 엄마한테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넘어졌다면 누구 책임입니까? 부모의 책임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을 목표로 무식하고 단순하게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장애물은 주님이 치워 주십니다. 할렐루야! 



베드로가 주님만 바라보고 가니 물위를 걸었습니다. 얼마나 단순하고도 순수한 믿음입니까? 그러나 좀 어른스럽게 주변환경도 참작해서 걸어야겠다고 물을 내려다보니 빠졌습니다.



학교에서도 단순하고 우직하게 보이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합니다. 우직하고 요령 안 피고 약간 촌스럽고 순진한 학생들이 나중에 보면 성공하는 대기만성입니다.



예수님도 단순하고도 순수한 사람들을 불러 제자 삼으셨습니다. 당시의 지식인인 서기관이나 정치가, 경제 전문가들인 사두개인, 중교인들인 바리새인들은 제자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들을 제자 삼었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많이 변질되었을 겁니다. 그래도 제자 중 머리 좀 굴릴줄 아는 사람은 가롯유다와 요한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머리로 예수님을 은30에 팔았습니다. 중병환자들은 자기 병에 대하여 너무 많이 알아서 죽습니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겁니다. 이약, 저약 쓰고 이 병원 저병원 옮겨다니다가 죽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담임목사의 말씀 잘 듣고 단순하게 순수하게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그 믿음이 빨리 자라고, 능력도 받게 되고, 열매가 무성합니다. 이런 크리스천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게 미덥지 않아 여기 가서 이말 듣고 저기 가서 저말 듣고, 이교회, 저교회 수없이 옮겨 다니는 사람은 마음에 정함이 없습니다. 뿌리가 내릴 틈이 없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지 ,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여기저기 다닌다면 스스로 말라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뭔가 많이 배운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뭔가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일이 닥치니 속수무책입니다. 한 우물을 파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제2단계에서 실패한 겁니다. 아덴 선교에서 자기 철학적, 문화적 지식과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선교에는 실패한 겁니다. 자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말씀 전하기가 두려워졌고 떨렸습니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는 두려워 떨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도만 전하라!" 다시 처음의 단순하고도 순수한 믿음으로 되돌아가라는 겁니다. 



이것이 제 3단계의 믿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며 복음을 전파했고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처음 믿음 처음사랑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과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3단계의 순수하고도 단순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여러분,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생각합시다. 제 2단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제 3단계의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순수하고도 단순한 신앙인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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