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2.19 | 누가복음 13장 22-35절 | 구진모 목사



누가복음 13장 22-35절


22절.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절.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절.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절.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절.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31절.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절.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절.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절.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월 19일 새벽묵상


오늘의 본문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구원문제에 관한 한 우리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여행하는 가운데 어느 제자가 느닷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 구원얻는 자가 적겠습니까? 많겠습니까?" 


이 질문의 의도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또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보기 위해서 예수님 주위로 몰려들고 있는데, 제자들이 볼 때 그 몰려드는 사람들이 정말 주님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군중심리에 의해 모이는 것 처럼 보였던 겁니다. 정말 구원을 받기 위해 따르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궁금한 것은 주님의 기준이나 판단에 근거하여 구원하신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구원의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숫자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구원받는 숫자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대답은 하지 않으시고, 본문 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고만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너희들의 소관이 아니다. 대신 중요한 문제는 구원의 숫자가 아니라 구원의 본질을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힘쓰는 일이다라는 겁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교회생활하면서 쉽게 저지르는 잘못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 와서까지 '내가 구원받았는가?'라는 질문보다는 '오늘 교인 수가 얼마나 되지?' 라는 질문을 더 많이 한다는데 있습니다. 정확히 숫자를 알아보는 일이야 왜 나쁘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비본질적인데 신경을 쓰다가 본질적인 것을 놓쳐버린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봉사도 하고 기도 생활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다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이 열려졌을 때 그 문을 향해서 들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문이 닫힌 후에 후회하면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분명한 첫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문이 매우 좁다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그 문을 좁은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좁다'는 말은 '아주 협착하고 비좁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까 말까한 작은 공간을 의미합니다.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로 충분히 넓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구원의 문은 매우 좁기 때문에 힘쓰지 않고, 온갖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문이라면 구태여 애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은 자도 별문제 없이 그 문으로 들어가고, 거짓말하는 자도 충분히 빠져나가고, 사기꾼, 강도 등 온갖 나쁜 짓 하는 자들도 다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면 누가 힘써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습니까? 아무도 힘을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구원의 문은 아무나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기의 죄를 통회하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만이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이 문은 아무나 들어가는 문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열려져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문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좁은 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안일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적당히 교회생활 하다보면 언젠가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착각은 금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주 낭패를 당한 자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2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은 때때로 예수님을 길거리에서도 만났고, 가르치는 현장에도 있었고, 주님이 하시는 말씀도 잘 듣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한때 예수님과 교제했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문을 열어 달라고 외쳐대나 주님은 아는 체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두드린다'는 말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해서 쉬지않고 두드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들의 노력을 보면 처절 할 정도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너무나 싸늘합니다. 27절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봉사한다고 생각했는지 몰라요. 그런 대로 잘 섬긴다고 자부해 왔는지 모릅니다. 남보다 더 열심히 기도했는지도 몰라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착실하게 예배생활도 하고 경건하게 살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주님의 대답을 들어보면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순전히 자기 착각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들어갈 줄 알고 다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문이 닫히고 완강히 거부를 당한 겁니다.  


이처럼 황당하고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당하는 불행쯤이야 시련쯤이야 고통쯤이야 새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어요. 새롭게 재기할 기회야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구원얻을 기회마저 완전히 상실한 후에 '난 너를 모른다, 나를 떠나거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화당하겠어요? 


그러므로 내 믿음이 좋다고 스스로 만족해 하지 마세요. 항상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내 믿음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가? 과연 내 믿음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 적당한가를 늘 점검해 보면서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 어야 할 겁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뭡니까? 그 이유는 언젠가는 닫혀질 문이기때문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이 말은 주인이 그 문을 한 번 닫은 후에는 아무리 애걸하고 부탁해도 다시 열려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구원의 문만이 아니라 인생의 문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문이 한번 닫히면 새로운 기회를 더 이상 얻을 수가 없는 겁니다. 구원의 문이 한 번 닫힌 후에는 그 누구도 열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이 닫혀지기 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어느 외국인 한 사람이 한국에 와서 운전대를 잡기만 하면 "하나님 오늘도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는 기도를 저절로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한국 사람들의 운전이 너무 거칠고 무질서해서 언제 사고 나서 죽을지 늘 불안하기 때문이랍니다. 갑자기 사고나면 기도할 기회도 없을 터이니 아예 출발 전에 이런 기도를 해놓고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회개의 기도 한마디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죽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언제 죽더라도 죄만은 회개하고 죽어야지 않겠어요? 한번 정도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라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구원의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은 그 문이 언젠가는 닫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뒤로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너무 늦지 않도록 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왜 실패하는지 아십니까?  내일로 자꾸 미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했는데, 앞으로 영적 태만에 빠져 구원얻는 일을 게을리 하게 될 때 구원의 문이 닫힐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금 이 시간부터 힘쓰십시오. 과거 어떻게 믿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간 어떻게 믿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구원의 문은 언제까지나 활짝 열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은혜에 무감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하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시간부터 다시 시작하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십시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힘써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은 귀한 문입니다. 아무나 들어가는 문이 아닙니다.  안일하게 영적인 태만과 게으름을 가지고 들어 갈 수 있는 문이 아닙니다.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힘써 준비하고 힘써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애쓰고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을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실 주실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