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02.17 | 누가복음 13장 1-9절 | 구진모 목사



누가복음 13장 1-9절


1절.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절.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절.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절.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절.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2월 17일 새벽묵상


1. 형제의 죄를 가지고 나의 우월감을 확인하는데 이용하는 사람들.


어제 본문 12:56절을 보면,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 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며 야단을 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사람들을 야단하고 있을 때, 두어 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되"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당시에 로마 황제로부터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도록 명을 받은 총독이었습니다. 이 총독 빌라도가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갈릴리 사람을 죽여 그 피를 자신들의 제물에 섞었던 모양입니다.


지금은 그런 곳이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인신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사람을 제물로 드리지는 않았지만 죽여서 그 피를 동물 제물에 섞어 발랐으니 인신제사를 드린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예수님께 알린 두어 사람들은 누구의 일을 말하려고 이 사실을 예수님께 알린건가요? 빌라도의 잔인한 행위입니까? 아니면 빌라도의 손에 죽은 사람들의 일입니까? 오늘 본문 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누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2절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 찾아와서 말하는 그 두어 사람은 빌라도의 악행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빌라도의 손에 죽은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슨 의도로 빌라도의 손에 죽임 당하고 또 그 피까지 우상의 제물에 바쳐진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께 보고를 했을까요?


일반적으로 사형언도를 받으면 그 자체로 죄가 많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데 발리도의 손에 죽은 그 사람들의 경우는 그 피까지 우상을 위하여 드려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많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상의 제물에 자기 피까지 바쳐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그들의 죄가 정말 많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가 퇴근한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엄마가 오빠한테 나하고 같이 마켙에 갔다가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어요. 그런데 오빠는 안가고 친구하고 놀러갔어요. 그래서 나 혼자 갔다 왔는데, 오빠는 친구하고 놀다가 넘어져서 다리에 피가 났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어린 아이가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왜 아빠에게 했겠습니까? 오빠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말을 했을까요? 물론 그것도 있지만, 나쁜 오빠와 달리 자신은 착하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의도가 더 강한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어 사람이 예수님께 빌라도의 손에 죽임 당한 사람 이야기를 한 것은 그렇지 않은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도 은연중에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어떤 사람의 행실이 누가 보아도 문제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 형제나 이웃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갖는 습성은 없는지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두어 사람의 보고를 들은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의도를 아시고,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런 사건을 볼 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3절을 보면,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4-5절에도 보면, 주님께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덜명이 죽은 사건을 예로 들면서 “그 죽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보면 두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우리들도 이미 그렇게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임할 진노를 잠깐 멈추고 계실 뿐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도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우리가 먼저 간 사람들보다 더 의로운 사람들이어서 오늘까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고통스런 죽음을 대하면서 "나쁜 짓 하더니 드디어 죽었구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나도 저렇게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런 사건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며, 회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도 저렇게 죽어야 할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예로 들어 말씀해 주시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6-9절절에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는 비유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오늘도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우리가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각종 사건들이 매일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건들을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사건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 지적한 것 처럼 그들이 더 많은 죄를 지어서, 그런 아픔을 당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들 자신들도 언제든지 그 사건속의 희생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경고라 생각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할 것은 감사하며 사는 겁니다.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갑자기 자동차들이 속도를 죽이고 천천히 갈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나도 속도를 줄여야지 속도를 내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가다보면, 여지 없이 하이웨이 패트롤 자동차가 속도를 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두대가 티켓을 받고 있습니다. 그 티켓을 받는 자동차들 때문에 많은 운전자들이 정신을 차립니다. 티켓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표로 잡힌 겁니다.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차량들에게 경고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잔인해 보이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그 사건을 보면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고 안도의 숨을 쉬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사건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