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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2.18 | 잠언 26장 13-28절 | 구진모 목사




잠언 26장 13-28절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13-16절을 보면, 게으른 사람의 모습에 대해서 기가 막히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13절을 보면,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15절에는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길에 사자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 사자를 본인이 길에서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듣고, 그대로 옮기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책임을 못하겠다고 회피하는 겁니다.

더 기가 막히는 표현은 15절인데, 밥상을 갖다 줘도, 밥을 뜬 숟가락을 들어 올리기가 귀찮아서 먹지 않습니다. 아마 떠서 입에 넣어주면 씹기가 힘들다고 먹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 16절 끝부분을 보면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른 사람들의 문제가 뭔가 하면,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게으른 행위를 지혜로운 줄로 착각을 하고 산다는 겁니다.

게으름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교만한 자가 대체로 게으릅니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고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을 무슨 일에서든지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개의 귀를 잡는 것이 남의 다툼에 간섭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길을 가다가 공연히 길에 있는 ‘핏불 테리어’, ‘로트 와일러’와 같은 개의 귀를 잡았다가 물리면, 큰 상처를 입게 될 겁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공연히, 알지 못하면서 끼어들면, 큰 상처가 남을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하지 말아야합니다. 남의 험담을 말하는 자는 결국 다툼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데 남을 잘 알 수 없습니다. 남을 잘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는 자가 싸움을 일으키고, 결국은 자신이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겁니다.

또 본문 18절을 보면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그랬습니다. 이 말은 이웃을 속이고 나서도 “그것은 농담이었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은 겁니다. 말로 다른 사람에게 실컷 큰 상처를 주고서도 “난 뒤끝이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미친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에도 아무 이유 없이 칼과 총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묻지마 살인”을 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자가 미친 자입니다. 그 속에 분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말쟁이가 다툼을 일으킵니다. 말쟁이는 불에 타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쟁이가 없으면 다툼이 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3-26에도 보면 모두 말에 대한 겁니다. 23절에도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고 했고, 24절에도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는다”고 했습니다.

살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다 압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것도 말이고, 우리와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도 말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사야 6:5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회개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내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위해서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다가 보면, 그 말이 나도 격려하고, 나도 세워주는 겁니다.

본문 27절도 보면,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고 했습니다. “함정을 판다”는 것은 남을 해하려고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즉, 그렇게 거짓말 하는 자는 결국 자기 말에 패망하게 될것이라는 겁니다.

여우가 제 꾀에 넘어간다는 말처럼, 사람도 자신의 꾀가 많으면 자신이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가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던 ‘하만’입니다. 결국 그는 모르드개를 잡기 위해서 만들었던 높은 장대에 하만 자신이 거기에 달려 죽었습니다.

우리가 게으르지 않고, 고약하지 않고, 위선을 떨지 않고 살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게으른 사람의 길, 고약한 사람의 길, 위선자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이 중요하지만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악한 마음으로 겉으로 온유하게 하는 말은 본문 23절 끝에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한 말씀처럼 언젠가는 그 악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말은 항상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마음에 없는 것, 마음과 다른 것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항상 말에 진실성(integrity)이 무너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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