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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2.06 | 골로세서 3장 1-11절 | 구진모 목사




골로세서 3장 1-1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새벽 묵상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볼 때 성도로서 바라 볼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봐도 들리는 소리도 그리 탐탁치 않습니다. 정치,사회, 종교, 그 어느 한 곳도 우리의 눈을 돌려 볼만한 곳도, 귀를 기울여 들을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세상에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눈을 돌리고 바라 볼 곳, 세 곳을 지정하여 주셨습니다.


첫째로 위만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생각이 항상 위에만 있어야 하고, 눈도 위에만 바라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땅에 것만 바라보고 살아 왔지만 어디 한 곳 마음 둘만한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죄짓게 하는 유혹의 손길만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음을 봅니다. 이 땅을 밟고 살고, 땅의 소산을 먹으며 사는 우리로서는 ‘위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성도는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성경에 그런 실례가 많이 있다. 가령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출애굽 당시 홍해를 만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홍해를 만나 진퇴양난인 상황에서 모세는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홍해를 육지 같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위를 보는 눈이 없었다면, 원망과 불평의 소리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를 보면 절망 중에도 희망이 보이고,구원의 길이 보이고, 살길이 보이는 겁니다. 잘되는 길이 보이는 겁니다.


또 아브라함도 믿음의 눈으로 위를 바라 볼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날 수 있었고, 백세에 난 외 아들 이삭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사자 굴과 풀무불 속에 들어 갔으나 믿음의 눈으로 위를 바라 봄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위를 보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을 향하여 격려할 수 있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겁니다.


두번째로 소망을 가지고 앞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38~39을 보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39절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소망이라는 창을 통하여 앞만 바라보고 가야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산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항상 뒤를 돌아보고 그 때가 좋았다고, 다시 그리로 갔으면 좋겠다고, 늘 뒤를 돌아보고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던 겁니다.


하나님은 앞을 볼 줄 모르고, 뒤만 돌아 보는 사람을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지난 날 좋았던 일, 성공했던 일, 잘 한 일들, 잊고 앞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뒤를 돌아 보다가 실패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사람들의 예도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가령 창세기 19:26에 보면,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뒤를 돌아보고 앞을 보지 않는 다면 현대판 롯의 소금 기둥이 될 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도들이 뒤를 돌아보고 앞을 볼 줄 모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앞만 보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위를 볼 때는 믿음의 눈으로, 앞을 볼 때는 소망의 눈으로 보면 위도 볼 수 있고,앞도 볼 수 있는 겁니다.


세번째는 사랑의 눈으로 옆을 보라는 겁니다.


요한1서 3:18절을 보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눈으로 옆을 보면 우리의 이웃이 보입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불평이 쑥 들어갑니다.


옛말에 정승의 장례식보다 정승 집의 개가 죽으면 더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이웃을 볼 줄 모르는 정승을 빗대어 한 말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은 농사하여 수확 할 때에 이삭 주으러 올 사람의 몫으로 이삭을 남겨 두라고 율법에 명시하였습니다. (신명기 24:19~22) 얼마나 가난한 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입니까?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음식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잠언19:17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관심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대상인데, 그들이 누구입니까? 고아, 과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의 눈으로 옆을 바라 볼 때, 이런 성도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바라볼 곳은 오직 세 곳 뿐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위를 보는 것, 소망의 눈으로 앞을 바라 보는 것, 사랑의 눈으로 옆을 바라보는 겁니다. 위를 볼 때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사는 길로 이어지는 겁니다. 위를 바라 볼 때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하심의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앞만 바라 볼 때 앞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운 눈으로 옆을 바라 볼 때 나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될 겁니다.


지금 같이 혼탁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확히 바라 볼 곳을 지시 해 주셨습니다. 오직 세 곳 뿐입니다. 위와 앞과 옆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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