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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11.11 | 잠언 15장 1-15절 | 구진모 목사




잠언 15장 1-15절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새벽 묵상


조선시대에 유명한 제상이었던 황희 정승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황희 정승이 집에 들어오는데 두 하인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다투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한 하인이 다른 하인의 잘못을 말해 주자, 황희 정승이 "네 말이 옳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자 다른 하인이 다툰 하인의 잘못을 말해 줍니다. 그러자 황희 정승 말이 "네 말도 옳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인이 "둘다 옳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까, "부인 말도 맞소?" 라고 했다는 겁니다.


말이란 무서운 무기도 될 수 있고, 치료하는 약도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말을 함부로 하면 무기가 되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되고, 말을 겸손하게 사용하면 상처난 사람을 치료하는 약도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큰 복이 되기도 하고, 큰 화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속담입니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말을 합니다. 더 넓게 보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말을 하고 삽니다. 인간의 언어는 손과 발처럼 일평생 쉬지 않고 사용하는 보이지 않는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사용하는 도구 중에 말만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없을 것이며, 가장 소중한 것도 없을 겁니다.


오늘날의 모든 문명과 문화는 말을 통해서 발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을 글로 옮기면 책이 되는 것이고, 소리로 옮기면 노래가 되는 것이고, 몸짓으로 옮기면 연극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말은 자기 자신의 필요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통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생활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말을 잘못 사용하면 무기가 됩니다. 말로 인해서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치유 받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 그랬습니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패역하다고 하는 것은 거칠고 사납다는 뜻입니다.


역사에 훌륭한 이름을 낸 사람들을 보면, 부모의 칭찬 한마디에,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온순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생명나무인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호 받고 위로 받아야 하는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런데 언어폭력이 가장 많은 곳이 가정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언어폭력은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언어폭력이 꼭 말로만이 아닙니다. 아무 말도 없는 무관심도 언어폭력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때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무언의 폭력입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교회에 나와서도 옆자리에 않아 있는 성도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위로받기 위해서 찾아오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나무 같은 언어로 사람들을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해야 합니다.


좋은 말 생명나무 같은 말만 사용하며 살기 위해서는 자기의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자동차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서 드라이브 연습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생 사용하는 말을 잘 운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몇가지만 소개하면, 1)잘못된 언어습관을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2)그리고 이 잘못된 언어습관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도와 주실 겁니다. 꾸준히 기도하십시오. 3)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잘못된 말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용서를 구하는 겁니다.


요즘 분을 내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톡’ 건드리면 ‘팍’ 터집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보면 금새 느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빵 빵’거리고, 손가락질하고, 쌍소리가 막 나옵니다. 왜 이렇게 분노가 많습니까?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맺힌 한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한이 분노로 분출이 되는 겁니다.


그럼 이런 분노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본문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유순한 말은 분노를 쉬게한다”는 겁니다. 분노는 굉장한 에너지 입니다. 그런데 부드러운 말은 그보다 더 강한 힘이 있어서 분노를 가라앉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하듯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 하나 하나에 대하여 심판 받을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가장 큰 심판의 대상, 가장 많은 죄의 목록은 도적질도 아니고, 폭력도 아닐 겁니다. 오히려 입으로 지은 죄가 가장 많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 아프게 한 죄, 낙심케 한 죄, 공동체의 화목을 파괴한 죄, 전부가 다 입으로 지은 죄입니다.


닐 암스트롱이라는 우주인이 달에 발을 내리면서 이런 멋진 말을 했습니다. “내게는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 칭찬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드러운 말은 내게는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듣는 자에게는 엄청난 도약의 계기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따라서 여러분의 말을 점검하고 여러분의 언어 환경이 신앙인의 언어 환경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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