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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9.22| 히브리서 11장 8-16절 | 구진모 목사




히브리서 11장 8-16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새벽 묵상


스페인 격언에 “돈을 잃어버린 자는 큰 것을 잃은 자다. 친구를 잃어버린 자는 더 큰 것을 잃은 자다. 그러나 믿음을 버린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자다”란 말이 있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가면서 잃어버린 것이 많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잃었다고 해도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다면 사실상 잃은 것이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신앙인에게 믿음이  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오늘 본문 8절 끝 부분을 보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갈 곳이 확인이 되어서 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떠난 겁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안전제일의 삶을 살지 않았고, 믿음제일의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는 장면이 뭡니까?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장면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아들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한가지 단서가 있다면 창세기 22:1절과 히브리서 11:17에 있습니다. “시험”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런 명령을 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고, 그러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시험할 필요가 있으셨던 겁니다. 우리도 어떤 물건을 시험해 볼 때는 쓰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기 전에 시험을 통해 갈등속에 집어넣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백세에 축복의 씨로 준 자녀를 죽여서 드리라 하니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시험은 이해가 안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 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할 수는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려면 하나님의 시험의 특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시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를 묻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의지하고 세상을 의지하던 손을 놓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11: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했는데, 이 말은 아브라함은 이삭이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다는 겁니다. 



“링컨” 대통령은 “믿음은 하나님이 할 수 있음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우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22:12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잡아서 칼로 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제지시키면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내 자식보다도 더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면 믿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설명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선포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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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아벨과 가인의 믿음을 비교해 주었고, 에녹의 믿음을 말해주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간 29일이면 추석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습니다. 그런데 고향가는 사람들은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첫째는 이 길을 따라 어느 정도 가면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열차나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직접 자가용을 운전하여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우리의 영원한 고향, 하나님 앞에 가는 길도 예외는 아닙니다. 첫째로,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돌아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믿는 겁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항상 우리 마음속에 그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은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믿고, 그 예수를 통해서만 갈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성경을 통하여 예언된 말씀을 지금 현재 이루어진 것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처녀가 한 총각을 마음에 두고 흠모하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그 총각이 처녀에게 청혼을 해 왔습니다. 처녀는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결혼 날짜가 몇달이 남아 있지만 벌써 결혼해서 경험하는 행복감 보다 더 진한 행복감에 젖어 있습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을 마치 지금 이루어진 것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겁니다. 아직 고향에는 오지 않았지만, 얼마 후면 도착할 것을 믿고, 그 곳에서 부모님과 친구와 친척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서 벌써부터 기쁘고 즐거운 것처럼, 지금 현실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데레사 수녀가 수녀 후보생을 면접할 때 세 가지 기준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잘 웃는 사람, 둘째는 잘 먹는 사람, 셋째는 잘 자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잘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웃어야 남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웃지 못하면 남을 위로할 수 없고, 자기 자신도 불행해 집니다. 특히 대인 관계에서 웃음은 소속감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의심과 불신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 가슴을 터놓고 서로 대할 수 있게 하고 의논할 수 있게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을 때 비로소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게 되고 비록 부부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잠시 집을 나갔다가도 들어 올 때 씩 웃어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겁니다.



문제는 어떻게 웃을 수 있는가하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만이 웃을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잘 먹을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잘 잘 수 있습니다. 데레사 수녀가 지극히 단순한 것 같고, 조금은 엉뚱한 것같은 선발 기준을 제시한 것 같지만, 살면서 자기 관리와 인간관계, 사회 생활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천국가는 길에 주시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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