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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8.31 | 사도행전 28장 23-31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28장 23-31절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없음)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새벽 묵상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옥은 일반 감옥이 아니라 황제의 사람들이 사는 친위대 안에 구금되어 있습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바울이 로마로 오면서 있었던 많은 사건들을 소문으로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위대 사람들은 바울에게 대단히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원만한 관계 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처음에는 친위대의 병영 내에 구금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아마도 시간이 흘러서는 병영 밖에서, 다시 말하면 일반 가정을 얻어서 거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그것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그랬습니다. 이 말은 바울보다 먼저 로마에 온 사람들, 또는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왔던 누가나, 아리스다고와 함께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 2 년 동안이라고 하는 긴 시간을 셋집에 유하게 됐는가 하는 건데, 그것은 아마 재판 날자가 그 만큼 연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로마는 큰 제국입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로마 시민도 많거니와 각 나라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재판에 불복하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하기 때문에 재판이 몇달씩, 몇년씩 늦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울도 언제 불려질 지 모르자 근처의 셋집을 얻어서 병영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일종의 가택연금 상태로 복음을 전하게 된겁니다.


지금 바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늘 본문 23절에 잘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고 했습니다.


날짜를 정해서 스케쥴을 짰다는 말입니다. 몇시에서 몇시까지는 김 아무개, 이 아무개는 몇 월 몇 일 몇 시에 만난다는 겁니다.


아마도 바울은 로마에 오기전까지만 해도 모든 일에 자신감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로마로 오면서 부터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봤을 겁니다. 로마로 오는 과정이 여러가지 일로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그리고 로마에 와서도 마음껏 복음을 전할 줄 알았는데, 2년 동안 갇혀 있는 몸으로 제한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성격에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바울은 깨달은 겁니다. 자기가 계획한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절대로 이제는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죄수로 갇혀있는 몸이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23절 하반절에는 그가 전한 복음을 두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예수에 대해 권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로마 전도 2 년간의 전도의 주제였습니다. 사실은 이 두가지가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원이 이 땅에서 다 이루어져도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영혼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영혼의 마지막 소망인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만족이 없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천국의 확신이 없는 인생은 아무리 많이 소원이 이루어져도 공허 할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말하기를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은 공허합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하바드 대학 총장을 만나러 가서, 총장실에서 둘이 대화를 하다가 밖을 보니까 흰 눈이 펄펄 내리는 겁니다. 그래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총장님! 이 학교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는 뭡니까?” 이렇게 물은 의도는 이런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최고의 수제들은 얼마나 행복할까?해서 물은 겁니다. 그런데 총장님이 밖을 한참 내다보더니 하는 말이 “공허감이지요”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어떤 지식으로도, 쾌락으로도 마음의 공허함은 메꿀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당장 죽어도 나는천국 간다”는 그런 확신이 없는 인생은 공허하게 되어 있습니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천국이 없는 인생은 공허한 겁니다. 이것이 로마에서 전하는 바울의 첫번째 핵심 주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권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고 하지 않고 “권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듣는 사람이들이 이해를 하든 말든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선포한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고, 성경적 근거를 통해서 자세히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이런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런데 그 위대한 사도, 바울의 이 뜨거운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듣고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이렇게 두 가지로 갈라집니다. 우리 생각에는 다 믿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가끔 예수 안 믿는 남편을 둔 아내들에게 주책맞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못났으면 남편하나 구원 못 시킬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절대로 그런 소리하면 안됩니다.


남편은 누가 구원시킵니까? 하나님 외에는 구원시킬 자가 없어요. 내가 어떻게 남편을 구원시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못나서 못시킨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포기는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진리에는 어떤 죄인에게도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그러므로 포기하면 안 되요. 끝까지 열심히 권면도 해야 되겠고, 성도로서의, 아내로서의 본을 보여야 하고, 그런 뒤에 문제는 주님께 맡기는 겁니다.


지금 홀로 믿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 안 믿는 것까지 십자가를 지고, 끙끙 앓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죄책감 갖지 말고 하나님께 깨끗하게 맡기십시오.


마지막 31절을 보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렇게 2년 동안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로마교회는 나중에 기독교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을 합니다.


지난 6월 18일부터 오늘까지 거의 두달 반 동안 새벽마다 예수님의 유언같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바울이라는 대 전도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모습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28장으로 사도행전은 끝납니다.


‘존 스토트’는 그런 말을 합니다. “바울 이후의 선교역사는 사도행전 29장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 29장을 써나가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prize가 아니라 price 다” prize는 상입니다. 보상입니다. Price는 댓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상이 아니라 댓가라는 겁니다. 즉, 사람들은 이 세상이 prize 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뭔가를 많이 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근본적으로 price 라는 겁니다. 댓가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하여 지불해야 될 댓가가 세상이라는 겁니다. 상은(Prize)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잠시 받는 수고와 환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도 작은 바울이 되어서 우리 현장에서 선교역사를 사도행전 29장에 새롭게 써 나아 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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