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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8.04 | 사도행전 18장 9-17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18장 9-17절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새벽 묵상


우리가 잘 아는대로 고린도 지역은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있어서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화로운 생활들을 했고, 결국 이런 윤택한 생활로 인해서 사람들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을 했습니다. 결국 고린도 지역은 성적으로도 부도덕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고 하시면서, 본문 10절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 하시기로 작정한 영혼들이 그 타락한 고린도 지역에도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늘 자녀들에게 있듯이, 하나님의 모든 관심도 구원받을 사람에게 가 계신 겁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발길에 하나님께서 더욱 축복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잘 아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적으로 타락한 음란의 도시, 우상의 도시 고린도를 보시고 “이 음란의 도성 고린도를 불로 멸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대신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를 살리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은 고린도에 살고 있는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그들을 주시하고 계셨습니다.


구약의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패역한 성, 니느웨를 생각하시며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나 4:10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툴을 아꼈거든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일으켜서라도 다시스로 가는 요나를 막으셨던 겁니다. 요나는 능력있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성중에 사는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나가 보기에 그 성의 사람들은 모두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사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채 지금 다시스로 가는 배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환상가운데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아무도 너를 대적하거나 해롭게 할 자가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담대하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린도에서 강하게 전했던 겁니다.


누가 복음을 받아들일 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바울은 요나가 니느웨 성에서 외치듯이 “예수가 메시야이고, 구원자라는 복음을 외쳤던 겁니다.


그곳에서 한 번만 외친 것이 아닙니다. 한 주일, 한 달도 아니고, 무려 일년 육개월동안 외쳤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위기가 늘 있습니다. 사회 생활에서도, 가정생활에서도, 교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위기가 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아덴에서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고린도로 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또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와서도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8:6절을 보면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그랬습니다. 고린도에서 일년 반 동안 복음을 전할 때에 고린도에서도 유대인들의 무서운 음모와 핍박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바울을 재판해 달라고 총독 갈리오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또 한 번 위기가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14절에 보니까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15절에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본문 16절에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었다”고 했습니다. 혹을 떼러 갔던 유대인들은 오히려 혹을 붙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다시 한 번 본문 9절을 보십시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10절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빈말로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빈말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아무 사람도 우리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성령과 악령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두 가지 구분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유함과 기쁨이 있습니다.


로마서 8:2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들은 사탄의 사슬에서 벗어나니 자유함과 기쁨이 넘칩니다. 그러나 악령을 받은 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유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점쟁이나 무당의 얼굴 등, 미신을 많이 섬기는 사람의 얼굴을 보십시오. 얼굴에 어둠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 성령을 받은 자들은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조금도 두려움이 없고 담대합니다. 무슨 큰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나아와 “아버지”라고 부르짖고 맡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분들은 가면 갈수록 그 얼굴과 눈에서 평화가 가득 찹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극심하던 초대교회의 일입니다. 로마의 한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순교한 한 성도가 남긴 시 한 편이 모든 신앙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나를 저주하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나는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내게 침을 뱉어 보십시오. 나를 때려 보십시오. 나를 찔러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절규할 겁니다.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겁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겁니다”


죽음의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 맹수에게 찢겨 죽어가고, 검투사들의 칼에 갈기갈기 찢겨 죽어가는 그런 참담함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찬송을 부르면서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죽을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결코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힘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이제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언제나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함과 평안, 기쁨과 담대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두번째로 성령과 악령의 구분은 그 인도함을 보면 압니다.


성령은 우리를 어찌든지 좋은 길로 인도하여 영생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악령은 자기를 위해 섬길 때는 무엇인가 도와주는 것처럼 같다가도 조금만 수틀리면 점점 벌을 줍니다. 마치 깡패와 같습니다. 깡패는 무엇을 주면 어느 만큼은 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얼마 지나면 또 와서 트집을 잡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굿도 하고 무슨 고사를 지내면 어느 만큼 봐주는가 싶다가도 수틀리면 또 재앙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더 큰 굿을 하게 만듭니다. 결국 나중에 보면 건강이나 재산이나 자녀나 다 망쳐놓습니다. 집안을 다 말아먹을 때까지 끈덕지게 뺏어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언제든지 선한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때로 사랑의 매를 때리시는 것도 부모님처럼 좋은 길로 가게 하시려는 선한 분입니다.


여러분, 결단코 악령의 인도를 받아서 결국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 그 길이 좁고,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 길을 따라 가시므로 영생의 소망이 있는 복된 삶을 모두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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