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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7.13 | 사도행전 10장 1-16절 | 구진모 목사




사도행전 10장 1-16절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새벽 묵상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가야 할 가정의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고넬료의 가정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러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을 빌려본다면 이 가정은 한 마디로 경건한 가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경건한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오늘 본문에 사용된 경건하다는 말의 뜻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용된 경건하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보면 ‘유세베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헬라어 동사 ‘세보마이’에서 왔는데, 이 ‘세보마이’는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경건하다고 번역한 이 유세베스라는 말은 예배드리는 사람의 모습을 말합니다. 예배 드릴 때의 마음가짐, 예배 드릴 때의 태도, 예배 드릴 때의 행동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경건하다는 것은 평소에도 예배 드릴 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 드릴 때의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구분됩니다. 예배 드릴 때는 예배 드릴 때고, 놀 때는 놀 때다라고 구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예배 드릴 때도 평소처럼, 평소에도 예배 드릴 때 처럼 삽니다.


지금은 세대가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옛날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가정은 온 가족들이 매사에 조심했습니다. 부부가 부부 싸움할 일이 있어도 언성을 높일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 야단칠 일이 있어도 큰 소리를 낼 수 없었습니다. 걸음 걸이도 조심하고, 행동도 신중하게 했습니다. 어른이 집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가정이 바로 이런 가정입니다. 집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입니다. 지금 우리 집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사는 가정입니다. 그래서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매사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가정입니다.


오늘의 현대 가정에는 어른이 계시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어른이 계셔도 어른을 어려워할 줄 모릅니다. 제 멋대로 소리를 지릅니다. 제 멋대로 행동합니다. 어려운 것을 모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계시지만,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습니다. 제 멋대로 행동하고 제 멋대로 살아갑니다.


우리 가정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가정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우리 가정의 어른으로 모셔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모신 경건한 가정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본문 2절을 보면 “온 집안과 더불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말은 “온 가족이 함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고넬료의 가정은 예배를 드려도 온 가족이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도와도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해도 온 가족이 함께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진정 경건한 가정입니다.


가족들 중에 한 두 사람이 경건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가족들 모두가 경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족들 각자가 예수를 잘 믿는다고, 곧 그 가정이 경건한 가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족들이 모두 하나를 이루어 신앙생활 할 때 그 가정이 경건한 가정이 되는 겁니다.


오늘날 현대 가정의 위기가 여기 있습니다. 가족들이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


첫째는 가족들 간의 세대차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세대차를 몇십년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쌍둥이들도 세대차를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서로 세대 차를 느낍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서로 사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래서 가정이 하나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가족들 모두가 너무 바쁩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저마다 너무 바쁩니다. 서로 얼굴 볼 시간도 없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하나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경건한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 가족들이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 이해하고 그 세대차이를 줄여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바쁘더라도 가족들이 만나야 합니다. 만남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을 키워갈 수 있는 겁니다.


또 본문 2절 끝부분에, “항상 기도하더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항상 기도하는 가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경건한 가정입니다.


가족 모두가 서로 뿔뿔이 흩어져 기도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의 제단을 쌓기는 어렵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는 가족을 하나로 묶어줍니다. 가족의 신앙을 하나되게 해 줍니다. 부모의 아름다운 신앙이 자녀들에게 전수되게 해 줍니다.


저는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만종’이란 그림을 참 좋아합니다. 그 그림을 보면 경건한 가정, 경건한 부부의 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녁 노을이 온 대지를 뒤덮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 교회당에서 저녁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밭을 일구던 부부가 그 소리에 일손을 멈춥니다. 옷깃을 여미고 그 교회당을 향하여 두 손을 모아 저녁 기도를 드립니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일하다가 일을 멈추고 부부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오늘 고넬료의 가정처럼 온 식구가 기도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가 가정을 지켜줍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가 가족들 간의 사랑을 키워줍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를 꿈꾸시고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또 본문 2절을 보면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고 베풀어줍니다.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습니다. 아이들도 거듭니다. 아이들이 생각합니다. “아!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이구나.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구나. 나도 커서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이것이 바로 산 교육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부모들이 앞장서서 자식들을 이기주의자로 만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돼도 너만 잘 살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함께 잘살기보다는 우선 자기 생각만 하도록 가르칩니다. 이것이 세상을 잘 사는 지혜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있다는 사람들도 자기 자식들을 이기주의자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서도 실천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빛이요 소금이면서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짠맛을 내지 못하며 삽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작은 실천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해 보십시오. 온 가족이 함께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실천해 보십시오. 이것이 경건한 가정입니다.


여러분,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달라야 합니다. 경건한 가정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한 가장으로 모셔야 합니다. 가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온 가족이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말씀의 실천이 있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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