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2.10.28 | 창세기 41장 1-16절 | 구진모 목사



창세기 41장 1-16절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새벽 묵상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로가 꿈을 꾸고 근심을 합니다. 그리고는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찾습니다.



요즘도 점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여행중, 점치는 곳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 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문에 오늘의 운세같은 걸 열심히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술가들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점쟁이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겁니다. 



바로는 인간적인 방법들을 모두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조할 때 발버둥칠땐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물을 먹어 기진맥진하여 늘어졌을 때 구조하는 겁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발버둥칠 땐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손 들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할 때 도우시는 분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사람은 일이 잘되어도 자기가 잘나서  잘 된 줄 압니다. 주변 사람들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능력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무능함을 철저히 깨달을 때 저런 한계가 있는 사람을 통해서 저런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인 것을 주변  사람들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 강해진다고 말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강할 때 하나님이 일하실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가 내 약함을 깨달을 때 하나님은 친히 일을 하시는 겁니다.



아무도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할 때, 그 때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 냅니다.


9절에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는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술 맡은 관원장에게 감옥 속에 있는 요셉을 생각나게 하신 겁니다. 그리고 요셉과의 약속을 기억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바로에게 요셉을 추천합니다.  



바로가 요셉을 만나자 마자 본문 15절 하반절에 보면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48절에 보면 바로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분야에서 인정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 13절에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고 요셉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다시 본문 15절에 바로도 요셉을 보고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고 인정을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잘 발견하고, 잘 관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을 받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해몽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사용을 합니다.   



술맡은 관원장 생각에 '꿈 해몽'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요셉이었습니다. 마치 옛날에 마라톤-황영조, 골프-박세리, 이런 식으로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까? 전도,봉사, 교사, 성가대, 심방, 위로, 새신자 정착...   나도 교회에서,  세상에서 내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은사를 구체적으로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최선을 다해 개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 해야 합니다. 



요셉이 옥중에서 두 관원장들의 꿈을 해몽해 줄  때, 바로가 꿈을 꿀 줄  알았습니까? 그래서 이런 결과가 있을 줄 알고 해몽해 준 겁니까? 아닙니다. 안그래도 바쁜데 그까짓 해몽을 해 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돈이 되지 않아도 자신의 은사를 다른 사람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최대한 활용할 때 이런 결과를 얻은 겁니다. 



여러분 기왕에 뭘 만드는 직업이라면 대충 밥벌이로 생각하지 말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기술을 연마하고 노력하십시오.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분야에서 자신만의 비법을 개발하십시오. 그리고 최고로 인정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16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꿈 해몽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실 것이는 겁니다. 따라서 “"내가 아니요 하나님”



확신있게 꿈 해석을 하면서도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말하는 겁니다. (25,28,32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결정적인 때에, 좋은 곳에 취직이 되었을 때,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니까? 연말이면 각 방송사에서 각 분야에서 대상을 수여합니다. 가끔 어떤 대상자들은 수상 소감에서 “먼저 이런 영예의 상을 받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고 하는 연예인을 보면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이런 감동적인 때가 우리에게도 옵니다. 그 때 내 명예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대게 겉으로는 “호호호  하나님 은혜지요” 그럽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내가 잘나서  그렇지” 그럽니다. ' 



아닙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요셉처럼 철저하게 모든 삶의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고,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 생활을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