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7.25 | 사도행전 14장 19-28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14장 19-28절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말씀을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 곳은 두 사도가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새벽 묵상
G.D. James의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년 전 한 아가씨가 스코틀랜드 주일학교에서 아주 속 썩이는 소년들만 모아 놓은 반의 담임을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속 썩이는 소년들 중에서 보비라는 소년은 그 반을 가장 힘들게 하는 골칫거리 문제아였습니다. 교회에 잘 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혹시 교회에 오게 되면 항상 예배를 방해하고 성경공부를 힘들게 했습니다.
어느 날 이 여선생님은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보비의 집을 심방하게 됩니다. 보비는 씻지 않아 땟물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진흙에 뒹굴어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습니다. 여선생님은 보비에게 새 옷을 갈아입히고 교회에 잘 나오고 잘 지내보자고 부드럽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뿐, 보비는 또 더러워졌고 교회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선생님은 다시 보비를 심방했습니다. 이미 새 옷은 다 망가졌고 걸레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 한 벌의 새 옷을 선물하고 또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보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몇 달을 수고한 여선생님은 지쳐서 이제는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주일학교 부장님을 찾아가 이제 보비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 부장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용기를 잃지 말고 딱 한번만 더 사랑해 보십시오. 분명히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선생님은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보비를 또 방문했습니다. 이 때부터 보비는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던 보비는 변화되고 또 변화되어 잘 성장하게 되었고 심지어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고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받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수백만 중국인의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한 로버트 스미슨 목사님이십니다. 한 여 선생님이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사랑했더니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보비 한 사람의 변화됨으로 수백만의 영혼의 길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적으로 되지 않습니다. 책망이나 잔소리나 호통이나 위협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변화됩니다. 사랑하면 변화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너무 멋있는 말 아닙니까? 사랑하고 조금 더 사랑하면서 사십시오.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 바나바와 바울이 루스드라에 사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바나바와 바울을 신이 보낸 사람으로 제사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저희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선포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실 이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에게 몰려들어 제사하려고 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우상 숭배와 미신에 길들여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강하게 설교함으로 이들의 잘못된 신관을 고치고 복음을 영접하게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루스드라에서도 바울은 그리 오래 전도하지 못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바울 일행을 추격해 온 유대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만나 돌로 치며 죽이려 했습니다. 19절 보십쇼.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죽은 줄로 알고”라는 표현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심하게 돌로 맞았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초죽음이 되어 성 밖에 버려지기까지 한 바울은 제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채 발걸음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1차 선교 여행의 마지막 지역인 더베로 가서 전도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더베에서는 핍박없이 많은 신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한편 더베는 다소와도 가깝고 안디옥까지 가기 쉬운 지점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비록 그동안 거센 반대와 핍박과 죽음의 위협이 있었지만 마지막 더베에서는 은혜롭게 전도하고 영혼구원의 역사를 보았으니 이제 마음 놓고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은혜롭게 선교 보고만 잘 하면 됩니다. 아마도 더베 사람들은 바울에게 바울의 고향 다소를 지나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가는 길을 추천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 고향인 다소 근처에 지리에 대해서는 바울이 모를 리 없고 일행도 전부 다 이제는 좀 쉬자 하고 있었을 텐데, 바울은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쉬운 길, 고향길, 배타고 가는 길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온 길을 걸어서 되돌아가는 여정을 택합니다.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의 안디옥 등으로 향하는 역방향의 길을 선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복음 전하는 바울을 심하게 박해했던 그 길, 한국 남자들은 지긋지긋한 군대 생활을 떠올리며 군생활 했던 지역으로는 소피도 안 본다는 말이 있는데, 바울은 왜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했을까요? 1. 자신이 받은 핍박의 기억보다 부당하게 핍박받고 있을 성도들을 더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초신자와도 같은 전도된 교회들의 연약한 성도들이 각종 박해와 우상 숭배 등으로 인하여 동요되거나 믿음에서 떠나는 일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다른 사람이 안 하는 불편한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서 믿음의 선배들, 연장자들이 앞장서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바깥에서 전도해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에서도 믿음의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이며 불편한 일, 힘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남이 안 하는 일, 손과 몸이 더러워질 수 있는 지저분한 일 하는 것에 서로 앞장서는 것 이게 중요합니다. 남이 다 보는 데서 일하는 것, 누가 봐도 박수 받고 내가 드러나는 위치에서 일하는 것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들은 그냥 성도님들이나 집사님이 하시도록 양보하시고 더 힘든 일, 고된 일, 남들이 잘 몰라주는 일, 그 일에 권사님들, 장로님들이 앞장서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지저분하여 꺼리는 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선생 되어 너희의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합당하니라.” 야고보서 4장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죄인인데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마이크 잡기를 자기 얼굴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직 연약한 분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 만드시길 바랍니다.
22절 보십시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바울은 믿음의 선배로서 후배들의 마음을 굳게 하는 일, 즉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말라고 권합니다. 핍박 받는 것 환난을 겪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권면하고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몇 십 년을 교회 다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믿음의 후배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핍박 속에서도 잘 이겨내라고 격려하는 일입니다. 교회를 몇 십년을 다녔어도 아직도 마음이 흔들리고, 조그만 환난에도 흔들리면 아직도 믿음의 선배가 되기를 기다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장성한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 강한 믿음의 선배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바울이 이렇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가며 믿음이 약한 이들을 돌보면서 했던 것 중에 아주 특별히 잘 했던 일이 있습니다. 23절 보십쇼.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 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의탁하고” 즉 2. 장로들을 택한 일입니다. 믿음의 지도자들을 각 지역에 세웠습니다. 여기서 장로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로즈비테로스” 여기서 프레즈비테리안 장로교회가 나온거죠. 그런데 프로즈비테로스는 본 뜻이 연장자, 나이 드신 분이란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인격과 덕망을 갖추고 신앙이 깊은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어른으로 불려지는 성숙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 다음 “택하여” 라는 헬라어는 “케이로토네산테스”라고 발음하는데 손을 뻗치다 라는 표현으로 학자 중에는 이를 안수 행위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모범이 되는 분들을 택하고 지명하고 안수하여 장로로 지도자로 세우는 일, 바울이 이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이렇게 다시 온 길을 돌아보며 믿음의 사람들을 격려해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계속 지속적인 돌봄이 없이는 연약하여 금방 신앙에서 돌아설 이들이 많았기에 지속적으로 돌보고 영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들 장로로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구약의 모세 최고의 지도자 모세에게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서 했던 권면이 뭐였습니까? 모세에게 혼자 그 많은 일 200만이나 되는 백성들을 직접 혼자서 다 관리하고 지도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지도자를 세워 지혜롭게 일하라고 권면하고 모세가 순종합니다. 여기 바울도 똑같이 인원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여기 저기 떨어져 있는 각 교회들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 지도자 장로를 세우는 일을 했다는 것을 쉽게 지나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회 일은 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함께 다른 지도자들을 세우면서 해야 합니다. 나보다 내 다음 지도자가 더 잘 세워지고 더 잘 이끌어가도록 청출어람, 다음 지도자를 위해 내가 뒤에서 support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 빛나시도록 하는 일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목회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속장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가장 엄격했고 속장은 영적 지도자로 속원들의 영적 상태를 수시로 점검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수님도 혼자 끝까지 다 사역하시지 않았습니다. 12제자들을 세우시고 길러내셨습니다. 비록 가롯 유다같이 실패한 제자도 있었지만 모든 제자들이 견고한 믿음의 지도자가 되었고 다 순교자가 되었고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습니다. 지도자 세우는 일, 나만 다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것보다 내 뒤에가 더 잘되도록 기꺼이 support 하면서 잘 감당하는 신앙의 선배 지도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24절 비시디아, 밤빌리아, 25절 버가, 앗달리아 까지 가서 26절 배 타고 드디어 안디옥으로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 27절에 보면 이 모든 1차 선교여행의 보고의 주인공은 역시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27절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을 하며 돌에 맞고 죽을 뻔 했던 일, 내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믿음 약한 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권면하는 세심한 선교자라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하나님” 3.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했던 바울과 바나바 참 멋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아닙니까? 저는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국에 있을 때 제가 존경했던 목사님이 은퇴하시면서 성역 몇 십 주년 하시면서 너무 스스로를, 사람을 높이면서 은퇴하시는 것을 보면서 좀 은혜가 안 될 때가 있었습니다. 은퇴사도 얼마나 길게 하시는지 하나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너무 인간적인 모습에 실망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너나 나중에 잘 하세요. 하시면 드릴 말씀이 없는데.. 정말 하나님만 영광받으시도록 잘 은퇴하고 싶습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국에 김동호 목사님은 은퇴하시면서 아주 짧게 누가복음 17장 9절과 10절을 인용하시고 그냥 은퇴사를 끝내셨습니다. 저도 나중에 이렇게 해 보고 싶은데 목회는 제대로 시작도 안 하고 벌써 은퇴사 준비하는가 하시는 분이 있는데 어쨌든 누가복음 17장 9절과 10절을 읽어드립니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저 용서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주인공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인 자들임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만 주인 되시는 삶을 사는 주의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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