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없이 가르치지 마십시오

새벽예배 2022.05.30 | 고린도전서 12장 31절 - 13장 7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전서 12장 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린도전서 13장 7절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새벽 묵상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있는 한 작은 도시에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고아원이 있었습니다. 한 고아원은 연합군의 도움을 받아 시설도 좋았고 영양도 충분하게 공급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 건너편 다른 고아원은 시설도 열악하고 기본 영양공급도 제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설이 좋았던 고아원보다 시설이 열악한 건너편 고아원 아이들의 발병률이나 사망률이 크게 낮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전쟁이 끝나고 몇몇 학자들이 이 두 고아원을 다시 자세히 조사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특이한 결과의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전쟁이 한창일 때 시설이 안 좋았던 고아원에 어느 날 전쟁에서 자기 아이를 잃어버리고 정신이 나간 한 여인이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이 여인은 고아원 아이들을 자기 아이로 착각하여 날마다 아이들을 번갈아 안아주며 쓰다듬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여인의 사랑 때문에 두 고아원의 결정적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친 엄마는 아니지만 고아들은 자신을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여인에게서 엄마의 사랑을 느끼면서 비록 잘 먹지는 못하지만 병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UCLA 대학에서 조사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매일 8-10번 정도의 의미 있는 접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의미있는 접촉은 남편이나 아내, 부모 혹은 가까운 친구들과 같은 귀중한 사람과 가볍게 두드리기, 쓰다듬기, 입을 맞추거나 포옹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단순한 접촉만으로도 수용과 확신, 놀랄 만한 사랑의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8번이나 10번은 아니어도 하루에 한 번 만이라도 의미 있는 접촉으로 혹은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여러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감정이 바로 사랑입니다. 기회 있을 때 많이 사랑하시고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카리스마, 은사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져 있습니다. 파벌이 나누어져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각종 교회의 귀한 은사를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어지면서 상처 받고 교회를 떠나는 일까지 생긴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은사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으며 다양할 뿐만이 아니라 서로 유기체를 이루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 쓸데없다고 무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하는 다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라고 권면했습니다. 이제 13장에 들어오면서 바울은 딱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 한참 12장까지 열심히 은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바울이 왜 사랑 이야기를 꺼내들었을까요? 그것도 13장 전체를 왜 다 사랑 이야기로 채웠을까요?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이 의문에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려서 이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이 최고의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최고의 은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12장 31절을 보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오늘 생명의 삶과 다르게 12장 31절부터 읽은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12장 31절을 보실까요?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여기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를 원문으로 보면 “카리스마” 단수가 아니라 “카리스마타”라고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라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큰 은사는 딱 하나다 사랑뿐이다. 이것은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더욱 큰 은사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오히려 앞에 29절부터 나와 있는 은사들의 순서에서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랑이 아니라 사도가 첫 번째 은사, 선지자가 두 번째, 교사가 세 번째 은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더욱 큰 은사들은 바로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의 은사가 가장 큰 은사들인데 그것들을 사모하면서 31절 뒤에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즉 이 사도, 선지자, 교사와 같은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을 보여주리라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고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가장 큰 은사들을 사용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하면서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바울.

그냥 사랑이 최고의 은사다 하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은사 즉 더욱 큰 은사들은 바로 말씀을 전하는 사도, 선지자, 교사의 은사들인데 이런 것들을 전할 때에 꼭 사랑의 마음으로 전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하고 배우면서 건강한 고린도교회로 회복하라 하는 바울의 마음을 헤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독일 개신교의 역사 신학자 하르낙은 이 고린도전서 13장을 가리켜 “신약에 기록된 바울의 서신 중 가장 강력하고 힘차게 바울의 사상을 대변한 장”이라 했는데 바울이 그토록 중요시여기고 강조하고 강조한 말씀 전하는데 필수적인 이 사랑을 묵상하시면서 저와 여러분들이 다 아는 것 같으나 잘 모르는 사랑을 정확히 깨닫게 되시고 깨달을 뿐만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바탕으로 말씀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하나님의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럼 도대체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데 필수적인 이 사랑을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1. 첫 번째로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랑이 곧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1절 보십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이 표현은 사실 듣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비한 소리인 방언이나 심지어 오묘한 천사의 말을 해도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를 들어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사랑받아야 하는 대상에게 그저 소음이 될 뿐이라는 표현입니다. 2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최고의 지성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예언, 헬라어로 프로페테이안은 미래를 점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에 가져다 놓다. 즉 가장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 모든 지혜와 지식을 가진 최고의 은사를 가진 자가 되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 최고의 지성인 이어령 교수님이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뇌에 아무리 대단한 지식과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지식으로 넘쳐나도, 박사학위 몇 개를 가지고 있어도 아무 것도 아니다. 다시 2절 중간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믿음이 대단하여 산을 옮기는 기적을 체험하여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예수님께서 문둥병, 나병 환자 10명을 고치셨어도 1명 외에는 감사하러 오지 않았던 일을 기억해 보십쇼. 예수님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즉 육신의 질병에서 나음을 입었지만 영혼의 구원받는 길을 찾지 못한 영혼들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어도 사랑이 없으면 즉 하나님의 본질이신 사랑,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그 위대한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저 놀라운 일 기적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3절은 구제와 돌봄에 대한 표현입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즉, 내 재산을 모두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 다음 내 몸을 불사르게 가 헬라어로 “카우세소마이”라는 단어인데 이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재산을 풀어 구제하는데 자랑하면서 남들 다 알도록 그렇게 보이는데서 나누어줘도 그 안에 나누어주는 물질들 먹을 것, 소유물들보다 더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말입니다. 우리가 구제할 때에 빵만 줄 것이 아니라 복음이 효과적으로 같이 전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 육신의 굶주림 말고 영적인 양식 생명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길 하나님의 아들 십자가에서 죽으신 독생자의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다 종합하면 듣는 것, 아는 것, 기적, 나누어 줌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들 중에서 본질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히려 신비한 것은 잘 보지 못하고 기적을 체험하지는 못해도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잘 못하고 특별한 아무 것도 없어도 복음의 본질 하나님의 너무 큰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므로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본질을 붙드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꼭 그런 자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연수가 더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더욱더 껍데기는 벗어지고 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더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바울은 사랑은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뭐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이것저것 다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4절부터 7절까지 보십쇼. 여러분 책 읽을 때도 사실 처음 이 책을 쓰게 된 서언과 마지막 책 뒷부분 결론의 부분을 먼저 읽으면 전체 내용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작과 끝이 중요합니다. 4절부터 7절까지 시작과 끝에 사랑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4절 “사랑은 오래참고” 마지막 7절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시작도 참는 것이었고 마지막도 참는 것, 견디는 것, 그러니까 사랑의 핵심은 바로 참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참지 못하고 조금만 어려우면 계속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던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무려 40년간을 참고 또 참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그게 사랑입니다. 이 참는, 참아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라 하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고린도교회에 교훈하고 있는 바울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은 아실 것입니다. 이 질풍노도의 시기의 사춘기 자녀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를 저희 딸들만 그런가 했더니 다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좋았다 싫었다를 반복하는 자녀, 그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참는 것이더라고요. 참고 참고 참다가 폭발해도 또 참고 참고, 자녀가 변화되는 게 아니고 부모가 그 자녀에 대해 분노를 참는 능력이 더 늘어나면서 정말 부모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제 사랑을 할 줄 아는 잘 참는 참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참고 또 참아주면서 결국 자녀가 이 참는 사랑을 깨닫는 날이 오기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하나님 닮은 부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가장 오래 참는 사랑을 하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인간이 가장 큰 고통을 느끼도록 가장 오래 동안 고통스럽게 만드는 형 집행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온 몸이 벌거벗겨지는 수치를 수치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 육체의 고통이 너무 크고 손목뼈와 발목뼈가 다 으스러지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매달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그 주님의 오랜 참으심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사실 감사하고 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오래 참으심의 이유는 딱 하나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조금도 참아줄 수 없는지..


3. 마지막으로 바울은 사랑은 나를 버리고 의와 진리와 함께 기뻐함이라고 했습니다. 4절 다시 보십쇼. 시기, 자랑, 교만하지 않는 것, 5절 무례히 행하지 않고 내 유익 구하지 않고 화내지 않는 것 전부 다 나를 버리는 행동입니다. 내 자존심, 내 욕심, 내 고집 다 버리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버려야 하는가? 5절 끝에 가만히 놔둬도 악한 생각을 하는 우리의 생각까지 버려야 한다는 것 6절 악한 생각으로 인해 나타나는 불의함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 진리, 진실함, 깨끗함, 온전함, 올바름 이런 것들 때문에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원칙은 아주 simple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순간순간 아주 작은 것까지도 주님께 묻고 행동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웨슬리 목사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책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늘 그리스도를 본받아, 즉 매순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랑의 본질을 붙드는 그래서 사랑의 마음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