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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인 곳이 진동 하더니!

새벽예배 2023.06.28 | 사도행전 4장 23-37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4장 23-37절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단학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한국에서 20-30년 전부터 유행했고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기” 훈련원입니다. 정신 건강이나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괜찮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이 있는데 육체나 정신이 아니라 종교성을 띠고 사람들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를 적대시하면서 지나치게 모든 세계의 중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리고 사람의 몸 중에서 아랫배 “단전”으로부터 모든 에너지가 발생한다고 하면서 무신론적 세계관을 강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관심 가지고 말씀드릴까요? 30여년 전에 저와 반 친구들을 가르친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 바로 이 단학 신봉자였기 때문입니다. 왜 단학 신봉자라고 말씀드리는가? 단학이 자기 인생의 중심이었기에 특히 기독교를 공격하는 표현을 자주 쓰시면서 학생들에게 단학을 강요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보통 미술 수업 시간이 2시간이었는데 한 시간은 미술 수업을 하시고 나머지 한 시간은 모든 학생들을 책상 위로 올라가게 해서 단학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한 번만 하신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이렇게 하셨습니다. 책상 위에 올라가서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서 지금도 기억납니다. 부처님 동상처럼 손을 계란 쥐듯이 동그랗게 하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모든 마음을 아랫배 단전이라는 곳에 모으게 되면 엄청난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외치는 구호가 있습니다. “천지기운 내기운 내기운 천지기운” 이렇게 하면 몸 전체에 기가 흐르게 되고 아주 강한 사람이 되며 우주까지 기가 흐르게 된다. 심지어 초능력을 갖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게 뭡니까? 미술 수업은 대충하고 이런 것에 집중을 했으니.. 다만 신기하기도 했던 것은 기가 흐르는 증거로 진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셨는데 실제로 친구 중에 몸을 많이 떨고 흔들며 진짜 진동을 체험하는 친구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이 선생님을 만나면 단학 진동이 아니라 진짜 진동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고 싶은데..

오늘 본문에는 바로 진짜 진동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31절 보십시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라고 되어 있는데 여러분 우리가 정말 관심 가져야 할 진동은 바로 이 진동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나타난 진동, 모인 모든 무리가 베드로와 요한이 잡혔다가 하나님 은혜로 인하여 풀려나고 이 일을 계기로 뜨거워져서 온 초대교회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게 될 때에, 모인 곳이 진동하며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했던 이 진동, 이 진동을 헬라어로는 “에살류데”라고 하는데, 저와 여러분이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역사로 이런 진짜 진동을 다 느끼게 되시고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강력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뜨거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5월 마지막 주에 빨강색 옷 입으시고 휘장도 빨강색 성령강림주일을 지켰는데 그리고 끝나는 절기가 성령강림절이 아닙니다. 이제 녹색으로 바뀌었는데 이 녹색은 성장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절기로는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이라고 합니다. 오는 주일은 성령강림절 후 다섯 째 주일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나서 매 주일마다 성령의 역사로 뜨겁게 성장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꾸 늘어져 있지 마시고 나이 많다고 못해 이것도 못해 저것도 못해 힘 빠져 있지 마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파도를 타시기 바랍니다. 진짜 성령의 진동을 경험하고 뜨겁게 움직이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성령의 진동을 경험하고서 거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 성장해 갔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 속에 계속해서 놀라운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성령의 역사와 성장이 나타났는가?

1. 첫 번째로 박해 속인데도 오히려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사도행전 3장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을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은 결국 공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어제 보신대로 협박과 경고를 듣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유대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고 오늘 본문 23절에 베드로와 요한은 동료들에게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고 자신들을 풀어주셨음을 전합니다. 그랬더니 24절 “그들이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이 겪은 이런 엄청난 위협과 협박 박해가 있었음을 들었으면 우린 몸조심하자 하고 슬금슬금 도망가고 흩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24절 그들이 듣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즉 한 명도 빠짐없이 할렐루야! 오히려 다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소리 높여 기도하게 됩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28절 하나님의 권능과 뜻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면서 29절의 기도가 참 특별한데 한마음이 되어 이렇게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박해가 일어나니 하나님 박해를 그쳐 주옵소서. 우리를 지켜주옵소서, 다시는 잡히지 않게 하옵소서가 아닙니다. 뭐라고 기도했다구요?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그들이 위협하니 다 물리쳐 주시옵고가 아니라 굽어보시옵소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입니다. 그 다음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여러분 이게 바로 성숙한 기도입니다. 박해받는 중에도 가장 원하는 것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박해 때문에 낙담하고 도망가지 말고 가장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아무리 어려워도 복음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장 내 사업 잘되게 하시고, 내 자녀 잘되게 하시고, 병들지 않게 하시고, 집값 올라가게 하시고, 육신적으로 잘 먹고 잘 살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는 누구나, 어느 종교나, 사람이 만든 종교에 가면 다 똑같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의 역사, 성령의 파도를 타는 사람,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초신자일 때는 그런 기도를 했어도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먹고 사는 문제, 내 필요한 것 달라는 기도에만 그치실 것입니까?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뒤에 나오는 이 모든 것을 구하는 기도가 먼저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기도,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의 기도, 그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32절 보십시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신기한 것은 하나도 없더라는 표현입니다. 얼마나 성령의 강한 역사와 진동이 있었으면 이렇게 한 사람도 벗어나지 않고 한마음으로 재물에 대한 사심이 없어졌을까요? 34절에는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여기서 “팔아 그 판 것의”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포룬테스 톤 피프라스코메논”이라고 발음하는데 시제가 현재 분사형입니다. 현재 분사형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진동을 느끼고 성경의 충만함을 경험하니까 끊임없이 믿는 자가 늘어나고 또 믿는 자들이 계속해서 하나 되어 신앙의 선배들처럼 똑같이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는 자가 하나도 없이 되었다는 것, 처음 모인 자들뿐만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번져서 계속해서 사심을 버리는 역사가 계속되었다는 것, 여러분 공산주의가 바로 이런 세상을 꿈꾸지 않았습니까?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다 잘사는 세상. 그런데 그건 꿈일 뿐 독재자를 지도자로 삼으니 독재자와 그 바로 밑에 있는 이들만 배부르고 다 못살고 굶주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35절 보십쇼.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개인적인 욕심과 집착을 벗어버리고 나누어주는 삶, 이 땅에 내가 가진 것들은 잠깐 주인이 맡겨 둔 것임을 깨닫고 이 땅에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두고 살게 된 이들, 이들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성령의 진동, 진짜 진동을 느끼고 살았던 이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집착과 욕심을 버리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타나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전서 6장 7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하셨습니다. 순간적인 것에 집착하다가 영원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해 순간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숙하고 성장하는 성령의 진동을 경험하는 사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3절 보십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성령의 충만, 성령의 진동이 결국 무엇과 연결되는가? 주님의 부활과 연결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이 어제 본문에 나온 베드로와 요한 같은 목격자들이 부활의 소망을 전할 때에 큰 은혜를 받게 되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한계 있는 삶에 다시 새로운 소망, 부활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가장 큰 기쁨의 소식, 복음 중에 복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자다가 깨서도 그냥 좋아해야 할 소식이 바로 이 부활의 소망 아닙니까?

영국의 한 젊은 변호사 프랭크 모리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은 자의 부활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해 세밀한 조사와 연구를 오랫동안 하다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완전히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쓴 책이 있는데 베스트셀러가 된 Who moved the stone?이란 책입니다. 누가 돌을 옮겼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지금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어도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아니 죽고 싶은 상황이어도 다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는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성령의 진동을 경험하게 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원히 부활의 삶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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