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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기는 자는 다르게 산다.

새벽예배 2023.11.13 | 잠언 16장 1-19절 | 이선기 목사




잠언 16장 1-19절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들과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새벽 묵상


최용우 님의 “제 삶을 맡기나이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읽어드립니다.

오 주여! 저의 삶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저의 삶을 당신 손에 맡긴다는 말은 저의 삶이 형통할 때나, 곤고할 때나, 풍성할 때나, 기근에서나, 기뻐할 때나, 슬퍼할 때나, 잘 나갈 때든, 못나갈 때든 고통스러울 때든, 평화로울 때든 제 일평생의 모든 때와 모든 일과 상황을 주님께서 친히 이끄심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오 주여! 저의 삶을 당신 뜻대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저를 바다에 던졌다가 파도로 받아 주시든, 아니면 모래 위에 던지시든 아니면 요나처럼 어두움을 통과하게 하시더라도 좋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으라 하시면 그저 가만히 있겠나이다. 저는 그저 일어나라 하시면 일어나고 불속에 들어가라 하시면 거침없이 들어가겠나이다. 오 주여! 저의 삶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걱정이 없습니다. 곧 좌측 깜빡이를 켜야 하는데, 비상등을 켜야 하는데, 어떻게 차선을 바꿀지, 느리게 가는 앞에 차를 언제 어떻게 추월해야 할지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히 잠이 들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심을 잊지 마시고 차에 타고 있는 아이처럼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배하러 가노니” 내 아버지 집, 즉 죽음 이후의 거처까지 예비해 놓으신 분이 주님이신데, 여러분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죽는 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게 있습니까? 가장 괴로운 죽음의 문제를 이미 해결해 놓고 준비하고 계시는 분 주님을 의지하시고 전혀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주님의 손만 붙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죽음 이후의 삶까지 안전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잠언 16장입니다. 잠언 16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익숙한 성경구절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읽으시면서 ‘아 이 말씀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하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여러분 여기서 “맡기라”가 히브리어로 “골”이란 단어인데 무거운 돌을 굴려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거운 문제 괴로운 것들을 다 주님께 완전히 의탁하라. 9절 보십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두 구절 다 뭡니까? 내가 모든 것을 잘 해보려고 해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16절 보십쇼.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지혜의 가치가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지혜의 근원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지혜가 가장 귀하다. 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은 그냥 잘난 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내가 세상의 최고이고 중심이라는 착각이 교만 중에 교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네 구절을 종합하면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다. 즉 하나님보다 귀한 것이 없고 하나님 없이 사는 교만한 자가 되지 말고 주께 맡기면서 살아라 하시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잠언 16장이 모든 잠언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이 가장 강조된 잠언이다 하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권사님이 핸드폰 하시다 힘드시니까 저한테 물어보시면서 목사님 이거 왜 이렇게 복잡해요? 단순한 거 없나요? 하시던데 핸드폰만큼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시면서 너무 힘들어 하지 마시고 단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방법 즉 하나님께 맡기며 사는 것에서 기쁨을 회복하시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럼 하나님께 맡기는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가?

1. 첫 번째로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7절을 보십쇼.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우선 이 구절은 성도의 제일 목적,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삶의 목적을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을 보기를 원하신다는 것, 부모 앞에서 춤추는 4-5살짜리 자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가 좋아하고 박수쳐주고 기뻐하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서 몸이 넘어지는 줄도 모르고 기뻐하고 온 몸을 흔들어댑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것, 하나님이 내 곁에 오신다는 기쁨, 부모 앞에서 춤추는 어린 아이가 되어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아내인 사울의 딸 미갈이 놀리건 말건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그저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보시고 좋아하시는 그 기쁨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체면을 차리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왜 그렇게 우리의 시각이 다른 사람을 향해 있는지..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고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셨는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시선을 접고 그 시선을 하나님께로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즉 어떤 일을 하던지 누구를 만나든지 기준이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지.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 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 다시 7절 보십쇼. 뒷부분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심지어 원수진 사람과도 화목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신다. 인간의 얽히고설킨 문제들 내가 해결하려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집중하면 내 방법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해결하신다는 것,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수년 동안 쫓아오는 사울왕을 처치할 기회를 두 번이나 갖게 됩니다. 그런데도 자기의 인간적인 복수의 방법을 버리고 사울왕의 겉옷자락만 베어 나오고, 또 한 번은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고 사울왕을 죽이지 않습니다. 저 같으면 두 번째 기회에는 이건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하고 사울왕을 처치했을 텐데 다윗은 표현합니다. “내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죽일 수 있습니까” 다윗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특별한 고백이죠. 내가 앞서지 않겠습니다. 내 욕심이 앞서지 않겠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길보아산에서 사울왕은 스스로 칼에 엎드러져 죽으며 쓸쓸히 인생을 마감하게 되죠.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더니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 원수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이 대신 갚으시고 다윗을 더 존귀하게 세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데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사람 미워하지 말고 복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저는 그저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겠습니다. 그 마음가짐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예배에 집중하고 찬양하고, 영혼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기뻐하신다는 사실, 거기에만 우리의 시선을 집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입술로 의롭게 정직하게 말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께 맡기는 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동안도 계속 나왔는데 오늘 잠언에도 역시 입술과 말에 대한 교훈이 또 나와 있습니다. 잠언 전체에게 빠지지 않고 나오는 표현이 이 말에 대한 교훈입니다. 10절 보십쇼.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 왕이 자기의 욕심이나 이기심을 따르지 아니하고 정치적인 편견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위로부터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서 편견 없이 재판하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 즉 의로운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13절 보십쇼.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지도자는 의롭고 정직하게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결국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자는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말하기에 편견 없이 이리 저리 치우치지 않고 말하고, 의롭고 정직하게 말한다는 것, 여러분 혹시 미가야라는 이름의 선지자를 기억하십니까? 역대하 18장에 보면 아합과 여호사밧 연합군이 전쟁하러 갈 때에 아합이 선지자들을 모으고 전쟁에 대한 예언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려 400명의 선지자가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고 예언을 하죠. 심지어 시드기야라고 하는 이름의 선지자는 뿔을 가지고 나와서 이 뿔처럼 적군을 완전히 쳐부술 것입니다. 예언하는 가운데 딱 한명 미가야라는 선지자는 다르게 예언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예언하겠습니다. 결국 미가야는 400명의 예언자와는 다르게 왕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패망하게 된다고 예언하죠. 이 일로 미가야는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고 감옥에 갇히고 고난의 떡과 물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나 누구의 말이 옳았을까요? 결국 미가야에 예언대로 아합은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되고 전쟁에서는 패하고 아합은 죽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혼란스러울 때 우리가 할 일은 편한 길, 넓은 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 그 길을 택하면 됩니다. 내가 편한 길, 사람을 기쁘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준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시길 바랍니다. 입술을 지키시고 의롭고 정직하게 말하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셨습니다. 입술을 지키시면서 마지막 말씀까지 저주나 비난이나 원망이 아닌 정직하고 의로운 말씀으로 가상 칠언을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런 주님을 따라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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