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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새벽예배 2023.09.04 | 히브리서 3장 1-11절 | 이선기 목사




히브리서 3장 1-11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는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한 8-9년 전에 나온 책인데요. 기독교의 본질 예수님께 집중하기 위한 가장 좋은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책 내용 중에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신앙의 본질을 짚어주는 부분이 있는데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너무 강해서이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내 고집, 내 자존심, 내 욕심 때문에 막혀 주님께서 일하시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 강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거나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철저히 죽고 내 안에 주님께서 사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 더 집중하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은 사람들 앞이니까 체면 때문에, 혹은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살피느라고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갈 때가 많다는 것,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 정작 혼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짓는 죄, 내 속에서 은밀하게 행하는 성경과 어긋난 것들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에 비로소 신앙의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나가 아니라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에 헛된 외로움은 없다” 주변 사람들이 정리되고, 위로를 주던 사람들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이제는 나 혼자라고 느낄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때라는 것,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롭게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외로움도 축복이니 오히려 외로움의 시간을 감사하라는 것, 하나님과 일대일로 깊이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것 말고 예수님 한 분께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9월 한 달 동안 묵상하는 이 히브리서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구약성경을 재해석함으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분명히 하기 위한 서신입니다.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신앙의 확신과 경고를 주기 위해 기록된 히브리서. 앞에 2장까지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성경의 예언에 기초하여 선지자와 천사와 비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신성과 어떤 피조물보다도 우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입증하였습니다.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즉 하나님과 한 분이시고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사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자는 이제 3장에 들어서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을 입증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와 비교했을까요? 여러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대면한 자였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등을 보았죠. 모세는 율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유대인의 대표 인물이었습니다. 최초의 율법인 십계명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모세였습니다. 율법의 원조일 뿐만이 아니라 출애굽의 영웅이 바로 모세 아닙니까? 요한복음 9장 29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했는데, 유대인들은 심지어 종교적으로 자신을 모세에게 속한 자로 생각하고 거의 숭배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 기자는 그게 아니다. 너희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고 숭배하는 모세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일개 피조물일 뿐이요 하나님의 집의 종에 불과하다. 모세가 아니라 주인공은 오직 그리스도시다. 하나님과 한분이시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우를 범하지 말라 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절 끝에 보십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금 미국 교회, 미국 기독교가 심각하게 쇠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인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되 주인공을 놓치고 지나치게 인간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자꾸 세상의 기준을 따라 인본주의로 흘러가면 다르지 않습니다. 소망하기는 다시 예수를 깊이 생각하시면서 기독교의 본질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면서 살아있는 교회를 이루시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주님과 내면적으로 깊은 교제를 나누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이신지를 좀 더 강하고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그 표현들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1. 첫째로 충성스럽다는 면에서는 그리스도와 모세가 같으나 충성하는 대상에 있어서는 다르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2절 보십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즉 그리스도께서도 모세와 같이 똑같이 신실하셨다. 여기서 기자가 그리스도와 모세가 같다는 표현을 먼저 제시한 것은 우선 유대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설교할 때도 설교자가 우선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습니다. 하고 표현하면 시작할 때부터 마음이 열립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설교하는데 그 교회는 과부이신 분들이 많은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설교 시작을 저희 어머니는 42살에 과부가 되셨습니다. 자식을 줄줄이 셋이나 두고 도망가고 싶으셨을텐데 공장 가서 일하시고 주말에는 파출부로 일하셨습니다. 했더니 이미 성도님들이 마음을 활짝 여시더라구요. 나도 여러분과 똑같다. 그래서 여러분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그런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으니 신실하게 충성하는 대상이 달랐다. 2절 다시 보십시오.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즉 그리스도는 바로 자기를 세우신 이, 즉 하나님께 충성하셨다. 한편 모세는 2절 뒤에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 즉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충성하였다. 이게 다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모세처럼 이스라엘 모든 백성, 즉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순서가 뒤바뀌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뜻을 기초로 하면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세상에서 대단한 사람 되고 시간이 되면 주의 일을 좀 해 주는 것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국회위원 분 중에 선거철 될 때만 표 얻으려고 교회 예배에 와서 인사시켜 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그럴싸하게 이야기하는 데 첫 번째가 하나님이 아닙니다. 첫 번째가 표입니다. 순서를 정확히 하시기 바랍니다. 주인공이신 하나님께 신실한 그리스도인 되시고 그걸 기초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그리스도는 모세가 섬기던 집을 지으신 건축자이시기 때문에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3절 보십시오.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즉 그리스도께서는 곧 하나님이시기에 집 지은 자와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4절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리스도께서는 집 정도가 아니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과 같으시다. 곧 하나님이시다 하는 표현입니다. 즉 모세는 이스라엘만 한 민족만 이끈 지도자였는데 그리스도는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온 민족을 이끄시는 분, 온 만물을 지으시고 이끄시는 하나님과 한 분이시다. 모든 권속을 부르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한 분이신 그리스도, 에베소서 1장 22절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예수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세상의 모든 만물 위에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여러분 믿으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시각을 넓혀야 할 이유가 여기서 발견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만물 위에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민족주의 국수주의라고 하죠 이것까지 넘어서야 합니다. 예를 들어 비록 일제 36년 민족의 압제를 당했기에 우리는 일본 하면 너무 싫어합니다. 운동경기에서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 자체를 증오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백인들이 흑인 차별하는 것이나 미국인들 중에 아시안 증오하는 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시각을 넓혀서 모든 민족, 모든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곧 나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좁은 나의 생각을 넘어서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종에 불과했으나 그리스도는 아들이셨다고 표현합니다. 5절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신실하였고” 6절 보십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즉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장래에 일을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즉 모세는 그리스도에 의해 최종적으로 선포될 복음의 진리와 기쁜 소식을 앞서 증거하는데 자기의 온 생애를 바쳤다. 즉 메시야의 선구자요 준비자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모세가 증거한 그 대상 그 주인공 메시야이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나님과 같은 분이셨다. 모세는 충성된 일꾼이나 그리스도는 주권자이셨다.

한 회사가 망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회사가 망하면 직원들은 어떻게 됩니까? 회사가 막 성장하고 잘 될 때는 직원이나 아들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망하면 직원들은 다 도망가고 맙니다. 아들은 어떻게 합니까? 도망가지 않습니다.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죽기까지 함께 하겠다던 제자들도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끝까지 그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직원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복음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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