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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새벽예배 2023.08.15 | 사도행전 22장 1-16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22장 1-16절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새벽 묵상

오늘은 광복절 78주년 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이 일제 침략과 압제로부터 독립하여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된 날인 오늘, 이 광복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된 기쁨,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 지고 대신 죽으심으로 얻게 된 영혼의 광복, 영혼 구원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영혼의 자유를 얻은 구원받은 기쁨으로 행복한 하루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고 난 다음에 반신 마비,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반신마비가 오셨고 성한 반쪽도 점점 마비되어가는 그래서 결국 입만 반쪽을 움직이시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께서 시작하신 40일간의 특별 가족 기도는 저에게 아주 특별한 기도의 경험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토록 차도가 없던 아버지께서 반쪽 마비된 입으로 내 이 병 고쳐주면 교회 간다 하셨던 아버지의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신기하게도 특별기도 39일째 되는 날, 아버지의 손가락 한 개가 풀리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 무슨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얼마나 놀랐는지..결국 아버지는 현대 의학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시고 나서 정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고 저희 가족 중에 가장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분이 되셨습니다. 새벽 4시에 정확하게 일어나셔서 매일 새벽기도하는 새벽기도 용사가 되셨고 열심히 교회에서 수고하시다 보니까 집사님이 되셨고, 기적을 체험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또 쓰러지셔서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길게는 아니었지만 3년 동안 너무나 변화된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분명히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바로 저에게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2005년 가을에 제가 한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기 직전에 지금은 돌아가신 한 의사 장로님의 눈을 통하여 3만 원짜리 엑스레이를 찍다가 제 몸 깊숙이 척추신경에 붙은 계란만한 종양이 발견되었고 갈빗대 하나를 자르면서 하게 된 8시간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되었을 때의 감사함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지금도 왼쪽 옆구리에 있는 30cm 정도의 수술자국을 볼 때마다 그 때의 감동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을 만난 경험,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를 체험한 경험을 잊지 마시고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되새기시면서 열심히 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라는 찬양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 말없이 홀로 걸어가신 길은 영광을 다 버린 나그네. 정녕 그 분이 내 형제 구원했나, 나의 영혼도 구원하려나, 의심 많은 도마처럼 물었네 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후렴) 주 예수 따라 항상 살리로다 십자가 지고 따라가리라 할렐루야 주를 만난 이 기쁨 영광의 찬송을 돌리리..

이 옛날 찬양하고 딱 맞는 성경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난 그 때를 도저히 잊을 수 없어서 또 기억하고 감사하며 다시 뜨거워졌던 사람 바울, 우리가 잘 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의 회심 사건, 이 이야기는 이미 사도행전 9장 1-19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천부장의 도움으로 겨우 생명을 건지고 지금 사도 바울이 자신을 잡아 죽이겠다는 이들 앞에서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울은 여지없이 다시 한 번 담대히 자신을 만나 주신 부활의 주님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회심의 고백은 심지어 뒤에 26장 1-23절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또 다시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제 아버지가 변화되신 이야기와 제 몸 속에서 발견된 종양 이야기를 여러 번 여러분께 말씀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반복해서 또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은 또 전하고 싶은 복음 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저만의 특별한 경험,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아주 특별한 은혜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찬양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부활의 주님 이야기를 다시 상기하면서 확신과 감격에 차 있는 바울의 얼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얼굴도 그런 얼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난 이제 다 늙었구나 하고 늘어져 있거나 지쳐 있지 마시고 그동안 나를 만나시고 내게 역사하신 특별한 나만의 하나님을 다시 재발견하시고 다시 뜨거워지는 그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 열정이 회복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특별한 것들을 잘 기억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몇 가지를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1. 첫 번째로 아무리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 앞에서도 바울은 아주 예의 바르게, 효과적으로 설득력 있게 간증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1절 시작하는 단어를 보십시오. “부형들아” 이 부형들은 헬라어로 안드레스, 안드레포이, 카이 파테레스 라고 발음합니다. 직역하면 사람들아, 형제들아, 아버지들아 인데, 이 표현은 유대인들이 존경과 친밀함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예의 바른 호칭입니다. 우리가 편지 쓸 때 누구누구 귀하 혹은 누구 누구 전상서, 혹은 친애하고 존경하는 여러분들이여 하고 시작하는 그런 표현이 바로 이 표현입니다. 예의 바르게 전해야 듣습니다. 이단들도 사람 만날 때 얼마나 정중한지 보십시오. 예의 바른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버릇없게 보이므로 복음이 전해지는 길이 막히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 마음의 열정은 알겠는데 너무 공격적으로 무섭게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면서 강력하게 전하는 분들을 보면 걱정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 하나 2절에 보면 “그들이 그가 히브리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그러니까 그렇게 죽이겠다고 흥분했던 무리들도 바울이 모국어 히브리어로 말할 때에 잠잠해졌다는 것입니다. 듣는 이들에게 잘 맞도록 복음 전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아무리 설교 잘 하는 유명한 목사님이시라도 어린이 부서나 youth 그룹에 설교하러 오시면 실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린이 부서에 오시면 절대 길게 설교하시면 안 됩니다. 말투도 어린들이 좋아하는 말투여야 합니다. youth도 마찬가지입니다. 혼내려고 하거나 잔소리 같은 설교는 학생들의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듣는 이들이 잘 듣도록 효과적이어야 합니다. 또 하나 3절 끝에 보면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여기서 너희 모든 사람처럼 이라는 표현, 즉 나도 너희와 똑같았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었다. 그런 표현입니다. 여러분 나병 환자를 전도하기 위해 자기도 나병 환자가 된 다미엔 선교사를 아십니까? 해외 선교에서 가장 효과적인 선교는 우리가 찾아가는 선교가 아니라 그 나라 사람을 데려다가 신학공부를 시키고 다시 자기 나라로 파송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예의 바르게 효과적으로 설득력 있게 간증함으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바울은 바로 내가 겪은 것, 내 경험을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16절까지 내가, 나는, 나와, 나에게, 즉 나라는 표현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관심 가지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몇 번입니까? 13번 정도 나왔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매 절마다 바울은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복음은 문제가 있지만 내가 겪은 복음은 가장 귀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도 내가 겪은 일을 예화로 드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모릅니다. 아까 말씀 시작할 때 제 아버지 이야기, 제가 수술하게 된 이야기를 말씀드린 것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시험 때마다 미역국을 끓여 주신 제 어머니, 심지어 대학 시험 학력고사 그 날도 역시 미역국을 끓여 주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아들아 미역국 먹고 시험 보러 간다고 시험 미끄러지지 않는다. 너는 세상과 다르게 살아라. 미역국 먹으면 오히려 머리회전이 잘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사실은 가난했기에 가장 싼 재료로 건강하게 오래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바로 미역이었습니다. 시험은 붙었을까요? 떨어졌을까요? 당연히 붙었죠. 여러분 이런 미역국 이야기는 저만이 가진 제가 겪은 신앙의 경험입니다. 우리 중에 속장 인도자님 계십니까? 속회 인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쓰여진 대로만 읽지 마시고 부끄러우셔도 바로 내 경험, 나의 하나님 경험을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 가지 고난과 고통을 겪게 하시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내 경험들 가지고 복음 전하는데 사용하라고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내게만 주신 은혜의 경험들을 기억해 내시면서 복음 전하는데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도, 어떤 누구라 할지라도 주님 만나면 변화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지금 자신을 죽이려 했던 이들을 앞에 두고서 이 이야기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나 이런 사람이니까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을까요? 나 잘못 건드리면 부활의 주님께서 너희들에게 저주 내리신다! 그런 것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나도 너희들 하고 똑같았는데 이렇게 변화되었다. 너희도 지금 엉뚱한 데 열심인 율법 고수자, 골수 유대주의자들이지만 너희도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다 나처럼 변화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누구라도 그 어떤 사람이라도 나를 변화시킨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나처럼 이렇게 인생이 360도 바뀌게 된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부활의 주님 만나면 인생 전체가 변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저와 여러분 중에 주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쯤 완전히 막가는 인생이 되었을 사람 있지 않습니까?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인생이 바뀌어 옛날 모습하고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왜 그 귀한 경험을 묻어두고 그냥 계십니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왕년에는 잘 나갔었어. 내가 무슨 유명한 대학을 다녔어. 얼마나 부잣집에서 살았는데.. 내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었는데. 왕년에는 정부에서 이런 요직을 하고 있었어. 여러분 이게 뭐가 중요합니까? 이런 것 자랑하시면 꼰대라고 뒤에서 놀림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왕년에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크게 역사하셨는지 전하시기 바랍니다. 왕년에 내가 이런 사람이었는데 예수 믿고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무한하시고 크신지를 담대히 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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