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새벽예배 2022.12.05| 시편 39편 1-13 절 | 이선기 목사




시편 39편 1-13 절


  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10.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새벽 묵상


이문희 님이 쓴 글 중에 우리의 인생에 관한 좋은 글이 있습니다. 읽어드립니다.

프랑스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날벌레들의 생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중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날벌레들이 앞에 있는 다른 놈이 돌기 시작하면 방향도 이유도 없이 앞에서 날고 있는 놈을 따라서 무턱대고 그냥 빙빙 돈다는 것이다. 빙빙 돌고 있는 날벌레들은 눈앞에 먹을 것을 주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돌기만 하는데, 무려 7일 동안 돌다가 결국은 굶어죽고 말더라는 것이다.

날벌레만 그렇겠는가?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파브르가 관찰한 날벌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전체 인류의 87%에 이른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 수치이다. 오늘도 그냥 하루해가 밝았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그냥 사는 거지 하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회가 부족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오늘도 타성에 젖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육체는 반드시 소멸되고 만다. 하지만 소멸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발자취를 만들 수 있다. 죽는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삶, 그것은 불필요한 곁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낼 수 있는 동기를 준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일에 나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지 말고,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것, 값진 것에 나의 가장 귀한 삶을 드리자. 그래서 나의 인생이 그분 앞에서 충성된 삶을 살았다고 인정받은 인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 아멘이십니까?

만인의 연인이요 세계 남성의 우상처럼 군림했던 미국의 최고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도 많고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았습니다. 수백 통의 팬레터도 매일 받습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너무나도 공허하고 불행합니다.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마릴린 먼로는 1962년 어느 날 밤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 닫는 해수욕장과 같다”는 글을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그냥 잘 모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무 의미 없이 살고 있습니까?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까? 인생의 의미를 꼭 발견하시고 하루하루 시간시간 의미 있고 귀한 삶을 살아가심으로 주님의 나라에서도 영광의 면류관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시편 39편이야 말로 다윗이 지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6절 보시면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라고 하면서 인생을 그림자 같다고 표현했는데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를 살펴보시면서 오늘부터라도 인생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힘 있게 가치 있게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인생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을 깨닫고 인생의 연약함과 이 세상에서 이룬 일들의 무상함을 통감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할 일은 죄의 용서와 구원을 호소하는 것임을 깊이 깨달으면서 애가, 슬픔의 노래를 짓게 되죠. 바로 이 시편 39편이 그 슬픔의 노래인데 모든 시편의 애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입니다. 특별한 것은 이 시편 39편을 회개하는 참회의 시라고 분류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물론 시편 39편을 살펴보시면 뉘우치는 심정이 나타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39편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는 죄책감보다는 인생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그림자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체가 없는 참 의미 없는 우리의 인생, 안개와 같은 인생, 다윗은 그렇게 유한한 인생이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다 허사라고 표현합니다. 솔로몬의 전도서의 표현처럼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하고 같은 허무함을 표현하는 다윗

주목할 만한 것은 다윗이 그냥 인생을 헛됨으로 표현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 중반부 7절부터는 대반전의 표현을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인생은 비록 헛되나 헛되지 않게 하시는 분, 한계가 없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니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왕 다윗이 표현했던 인생의 의미를 살펴 보시면서 교훈을 얻으시고 저와 여러분도 그냥 의미없는 그림자의 인생으로 끝나지 말고 찬송 부르시면서 소망의 인생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얻을 교훈이 무엇인가?


1. 첫 번째로 우리는 유한한 존재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5절 보십시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여기서 한 뼘은 히브리어로 “터파호우트”라고 발음하는데 아주 작은 것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겨우 한 뼘”이라고 할까요? 우리 표현 중에 “백년도 살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100년을 살기가 쉽지 않은 유한한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기자는 이사야 2장 22절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야고보는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 즉 진나라 시황제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보고자 동남 동녀를 동방으로 보내서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구했을까요? 여러분 세상에 불로초 늙지 않게 만드는 식물이 어디 있습니까? 성형 수술로 좀 늙지 않게 보이게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늙지 않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늙는 것을 돌이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려고 하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진시황은 겨우 5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제가 내일 모레면 50, 아니 그래도 한 2년 있어야 50인데 아무리 최고의 세상 권세를 가진 자도 50을 넘지 못했습니다. 여기 50넘으신 분들은요 지금 세계 역사 최고의 왕 진시왕보다도 더 오래 잘 살고 계신 것입니다.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우리는 철저히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중간에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아무리 든든하게 서 있어도 역시 연약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일 때문에 상처받고, 근심하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냥 교통사고로 순간적으로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돈이 너무 없어서 죽는 사람, 돈이 너무 많아서 엉뚱한 일 하다가 세상 떠나는 사람. 언제든지 우리의 인생은 죽음의 위험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62편 9절에 심지어 이런 표현까지 했습니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여러분 입김이 무게가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이 입김보다 가볍다니 얼마나 허무합니까?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 말에 죽겠네 라는 표현이 참 많이 있는데 부정적인 말이라고 하지 말라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워 주겠네, 배고파 죽겠네, 힘들어 죽겠네, 좋아 죽겠네 이런 죽겠네 들으실 때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정신 차리는 계기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맞아! 우리는 연약해서 죽을 존재임을 계속 기억하시고 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죽겠네 뒤에 이 말을 꼭 붙이셔서 같이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겠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갈 것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운 얼굴들 보고픈 얼굴들 다시 만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우리는 헛된 일로 소란하게 사는 존재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6절 보십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헛된 일 아무 의미도 없는 일 때문에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재물을 쌓고 명예 얻고 권력을 거머쥐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고 그렇게 살다가 세상에서 목표였던 모든 소유의 대표인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즉 열심히 모으기는 했는데 모은 것 본인이 거두지 못하고 누가 거둘는지 모르게 다 없어지고 후회하게 된다는 것, 열심히 아버지 어머니가 한푼 두푼 열심히 아끼고 모아 놨더니 자식이 하루 아침에 사업한다고 하다가 다 날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유한하고, 연약하고 헛된 일로 소란하게 사는 존재이기에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다윗은 무한하시고, 강하시고,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7절 보십쇼.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다윗은 8절 이후에서 앞에 5절과 6절의 한계 있는 인간의 모습과 너무 상반되도록 인간의 모든 한계와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8절은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간구합니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10절과 11절은 하나님의 능력, 강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12절에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13절에는 나를 용서하시되 심지어 내 육신의 건강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지도 않은 우리의 인생을 걸어가시면서 인간의 한계와 유한함과 덧없음과 헛됨을 철저히 느끼시고, 이 모든 한계를 극복하게 하시고 초월해 계신 주께 소망을 두시기를, 오직 주만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람을 보면,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신뢰할 존재, 소망을 둘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의 의지하고 살아가셔서 최후 승리를 거두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コメント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