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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전화 선을 연결해 주라!

새벽예배 2023.08.02 | 사도행전 17장 16-34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17장 16-34절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새벽 묵상


얼마 전 대령으로 갓 진급한 한 장교가 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자기 어깨에 붙은 대령 계급장을 쳐다보면서 자랑스레 싱긋이 웃으며 으쓱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이등병 하나가 그의 사무실에 노크를 했습니다. 들어와! 이등병은 들어와서 큰 소리로 경례를 하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신참 대령은 그 사병의 말을 막으면서 먼저 말을 했습니다. “잠깐만, 사병 내가 지금 중요한 전화를 해야 하니까 거기서 기다려!”하고는 전화번호를 누르면서 전화통에 대고 말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박장군님, 장군님께서 다른 세분의 장군님과 함께 저를 만나기를 원하신다구요? 네 오늘 오후 2시예요? 물론이죠. 좋습니다. 장군님! 제가 곧 거기로 가겠습니다. 충성!”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대령은 아주 잘난 척하는 표정으로 이등병에게 근엄하게 말했습니다. “ 자 사병, 무슨 일로 왔는가?” 했더니 이등병은 대답했습니다. “예 대령님 여기에 전화선이 끊어졌다고 해서 급히 연결해 드리러 왔습니다.” 엥? 가짜로 전화통화까지 하면서 폼 잡고 잘난 체를 하던 신임 대령은 이등병 앞에서 큰 창피를 당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보기 민망하고 창피스런 행동입니까?

오늘은 이렇게 창피당한 대령과 같이 온갖 폼은 다 잡는데 그 속에 아무것도 없는 어리석은 이들이었던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혹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신 분 있으십니까? 한국 배우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 씨가 주연이었던 영화, 물론 이상한 놈 역할은 송강호씨가 맡았습니다. 저는 어제 본문과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그 영화 제목이랑 여기 세 군데 선교지와 어쩜 그렇게 딱 맞을까? 하고 혼자 웃었습니다. 어제 바울과 실라가 갔던 곳은 어디였습니까? 예 복음을 잘 받아들인 듯 했으나 결국 유대인들이 결탁하고 살기가 등등하여 바울을 죽이려 하고 바울이 한밤중에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지역 즉 나쁜 놈과 같은 지역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했었습니다. 두 번째 지역, 바울은 한밤중에 피신하여 어디로 갔습니까? 예 베뢰아로 갔습니다. 베뢰아는 어떤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까? 너그러운 사람, 신사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베뢰아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참 잘 받아들이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데 까지 이르는 정말 준비된 자들, 바울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준 좋은 놈과 같은 선교지였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좀더 베뢰아에 머무를 걸 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베뢰아를 떠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 지역 이상한 놈 같은 아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덴이 어디입니까? 아테네입니다. 헬라 철학의 중심지요. 모든 철학의 발생지 혹은 근원지라고 하겠습니다. 인간 이성의 최고를 추구하는 철학의 중심지에 갔어도 바울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18절에 보니까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을 벌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들어보셨죠? 창시자가 에피쿠로스입니다. 철저한 무신론입니다. 쾌락을 추구합니다.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래서 일종의 유물론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신이 없기에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영혼까지 소멸한다고 했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약간 다릅니다. 무신론이 아니라 범신론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성 지상 주의로 하나님을 그저 세계 정신이다. 그저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것이 최고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이렇게 엉뚱한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똑똑한 것 같으나 눈과 귀가 다 막히고 자신들이 가진 이성과 지성의 틀에 갇혀 자기도 모르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주의로 빠지게 된 자들. 그러니까 이들에게 오직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진리 되신 분을 설교해도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뭔소리여? 하면서 18절 보십쇼. 중간에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진리를 전해줘도 우물에 갇힌 개구리처럼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다 라고 생각하고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자들.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이방신”이라는 표현 속에 그저 아덴에서는 흔히 있는 일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가 보다 하고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혹시 관심을 가지고 듣는 이도 20절과 21절에 보면 그저 새로운 것을 말하기 때문에 호기심이 많은 이 아덴 사람들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 중에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19절과 22절에 보면 아레오바고 라고 하는 광장이름이 나오는데 거기서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사람들과 최고의 지식, 철학적 논쟁을 벌인 곳입니다. 제가 다닌 한국의 신학교에도 중간에 작은 운동장, 아레오바고 광장이라고 있었습니다. 철학적인 자유로운 사고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곳. 바울은 그 곳에서 담대히 서서 이 아덴 사람들의 죄를 정확히 지적합니다. 무신론도 아니고 범신론도 아니고 진짜 신이 누구인지를 담대하고 소개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아테네 신화를 생각해보십쇼. 정말 인간의 상상과 인간의 지성으로 최고의 업적을 이룬 최고 지성의 보고입니다. 거기서 과연 인간의 근본 문제의 해결을 찾았는가?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이들에게 아주 정확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돌려서 전하지 않았습니다. 눌려 있을 필요도 없었고 눈치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바울의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담대히 복음전하는 마음, 어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그대로 닮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 아덴 선교에서도 빠트릴 수 없는 바울의 선교적 교훈을 몇 가지 정리하려고 합니다.

1. 첫 번째로 바울은 아덴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16절 보십쇼.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여기서 이 격분은 헬라어로 “파록스네토”라고 하는데 그냥 화내는 것이 아닙니다. 격하게 화내는 것, 견딜 수 없이 분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즉 하나님 아닌 것들이 성에 가득한 것을 보고 화가 났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요즘 무엇 때문에 화가 나 있으십니까? 혹시 돈 때문에 아닙니까? 혹시 말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너무 미워서 화내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소망하기는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말 때문에 화나는 것을 다 내려놓고 거룩한 분노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무시당하는 것 때문에 나타나는 분노, 마치 골리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조롱할 때 다윗의 속에서 차오른 분노, 그런 분노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혹시 먹는 것 때문에 분노하고 계신 분 있습니까? 광야에서 먹을 것 때문에 분노한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유아기적 분노를 다 내려놓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분노하는 아덴의 바울과 같은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참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취급하는 곳에서는 분노해야 합니다. 거룩한 분노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17절의 “장터”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을 또한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은 대중적이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복음이어야 함을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너무 세련되게 혹은 너무 복잡하게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아주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전파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만나는 사람들, 지금 내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복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도 일반 대중이 알아들을 정도로 simple하고 강하게 전해져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중학교 2학년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쉽고 분명한 언어를 사용하라 하고 배웠습니다. 너무 무슨 학적으로 하는 예화가 많이 나오는 설교는 청중 모두를 하품하게 하거나 도대체 뭘 하라는 것인지 난해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쉬워야 합니다. 분명해야 합니다. 대표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모든 이들의 마음의 소원과 사모함을 담아서 드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거룩하시고 존귀영광 세세 무궁토록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라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시면 됩니다. 예수님도 어렵게 복잡하게 말씀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로 비유로 아주 쉽게 전하셨습니다. 장터에서 복음 전한 바울처럼 저와 여러분도 아주 대중적이고 분명한 복음 전도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구원자이심을 전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교훈이 가장 중요합니다. 23절 보십쇼. 아덴에 복음 전한 바울에게서 나온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아덴에는 얼마나 신이 많았던지 학자들은 공식적으로 아덴의 신 종류가 300여개 신상은 3만여 개 정도가 되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신이 많았으면 바울이 내가 보니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쓰여진 제단도 보았다고 했겠습니까? 실제로 이 제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신성하도다! 그 신이 남신이든 여신이든! ” 이 얼마나 웃기는 제단입니까? 일본에도 그렇게 신이 많다고 하는데 이런 신이 아주 발에 차일 듯이 많은 우상의 본거지 아덴에서 바울은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너희가 알지 못하는 그것을 내가 알게 하리라”그게 무엇입니까?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 그 삼위일체의 하나님, 유일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당당하게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왕 예수 믿은 것, 여기 저기 양다리 걸치지 마시고 정확하게 하나님 한 분만 붙드시길 바랍니다. 유일한 구원자 참 신이신 분, 인간이 만든 신이 아닌 스스로 계시며, 우리를 지으신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 그분만이 나의 창조주요. 나는 그의 피조물임을 정확히 깨닫고 정확히 전하심으로, 엉뚱하게 폼 잡고 거짓 전화통화, 소통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끊어진 전화선을 연결해 주는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과 소통하게 하는 생명선을 연결해 주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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