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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된 남자

새벽예배 2022.03.15 | 누가복음 19장 1-10절 | 이선기 목사



누가복음 19장 1-10절


1절.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절.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절.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절.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절.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절.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3월 15일 새벽 묵상


여러분 자녀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으셨습니까? 저는 딸이 둘인데 이름을 지을 때 “빈”자가 유행인 시대여서 시대에 맞추어 큰 딸은 유빈, 부드러울 유 자에 빛날 빈 자를 써서 부드럽고 빛나는 사람이 되라 해서 유빈이라 지었고 둘째는 수빈, 빼어날 수 자에 빛날 빈 자를 써서 세상에서 빼어나고 빛나는 사람이 되라 해서 수빈이라 지었습니다. 참 잘 지었죠? 누가 지었을까요? 제가 지었습니다. 그런데 지을 때는 몰랐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알아들을 때쯤 이름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빈 수빈이란 이름이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지, 두 아이의 이름을 바꿔서 부르는 일들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유빈이를 수빈이라 부르고 수빈이를 유빈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딸들의 부모가 이름을 헷갈릴 정도니 다른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지금까지도 계속 잘못 부르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이름을 안 부르고 야! 하고 부르거나 귀염둥이 하고 애칭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르니까 제 둘째딸이 아빠를 이렇게 훈계하더라고요. 아빠! 이름을 불러야지. 야!가 뭐야 별명 말고 정확하게 이름을 불러야지. 난 아빠가 내 이름 부를 때 좋더라. 딸의 말을 들으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여러분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중요한 첫 단계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시대였던 한국 사회에서 특별히 어머니들, 중년의 여성을 상담하는 많은 분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하는 효과적인 상담의 첫 단계도 역시 이름을 불러주기, 이름을 찾아주기입니다. 그동안 누구의 엄마, 혹은 누구의 wife, 누구의 며느리로 불려지며 이름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한을 품고 살았던 중년의 여성들에게 이름을 찾아주는 일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의사 분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기억해 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혜범 선생님이 쓰신 글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 이름을 부르면 이후 30초 동안 환자가 의사에게 전적으로 집중한다. 그 만큼 환자 이름을 부르는 것은 환자를 존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칭찬보다 더 큰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이 아닌 타 교과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수많은 학생들 중에 나의 이름을 특별히 기억해주시는 것은 직접적으로 “넌 공부를 잘하는 구나”라고 칭찬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여러분 유명 피아니스트 겸 폴란드의 수상 파데레프스키는 전용기차의 요리사에게조차 늘 정중하게 `미스터 코파'라는 호칭을 써주었던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때문에 그 요리사는 자부심을 갖고 간단한 요리 하나를 만드는데도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고 합니다. 파데레프스키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람에게까지 호칭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음으로써 이름을 정중하게 불러줌으로써 역으로 자신의 품격을 유지했던 지도자라고 평가받고 있는데 여러분, 오늘부터라도 나와 만나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일에 신경을 쓰는 배려의 사람 되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시를 한 편 읽어드립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여러분 누구의 시인지 아십니까? 예 김춘수 님의 꽃이라는 시입니다.

존재의 본질과 의미, 그리고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탐구하는 시로, 동시에 다른 이에게 인식되고 싶은 인간의 갈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은 이름을 가짐으로써 그것으로 인식된다는 사실

성경에도 잊혀진 그의 이름을 주님께서 불러주심으로 마음을 열고 인생이 180도 변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오늘 본문의 삭개오입니다. 주님께서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욕먹는 세리가 아니라 이제는 꽃이 되었던 사람 삭개오, 삭개오라는 이름은 그 뜻이 pure 순수하다 라는 의미인데 참 신기한 것은 원래 이 삭개오의 순수하다는 의미는 혈통적으로 순수한 유대인 혈통 유대인 중의 유대인을 뜻하는 의미였는데 삭개오가 이름을 불러주시는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순수 혈통 유대인이 아니라 순수한 영적 유대인이 되었다는 사실, 영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순전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꽃이 된 남자 삭개오. 저와 여러분도 꽃이 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직 예수 유일한 구원자 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 자체가 꽃이 된 인생인데, 거기다가 더하여 아름다운 꽃, 꽃중의 꽃 되시기를 즉, 하나님 나라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두고두고 욕먹는 세리 그 세리 중에서도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를 5절에 삭개오야 하고 이름을 불러주신 것이 삭개오 인생 변화의 첫 번째 원인이었다면 두 번째 원인은 바로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는 표현이었습니다. 다시 5절 보십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은 너 왜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있느냐? 묻지 않으셨습니다. 너 왜 욕먹는 세리장의 인생을 살아가느냐? 하고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 한 마디로 그동안 삭개오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한마디의 말씀으로 그의 곁으로 훅 다가가셨습니다. 너와 함께 있고 싶다. 유하여야 하겠다는 표현은 같이 밥 먹자. 같이 있자 그 표현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세리장 삭개오는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 거머리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세금을 뜯어가되 자기가 뒤로 빼돌릴 것까지 더 얹어서 빼앗아가는 파렴치한 존재, 눈물도 없는 착취하는 자였기에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는 자가 없었을 세리장 삭개오. 6절의 삭개오가 했던 행동의 표현은 그가 얼마나 주님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는지 잘 나타내 줍니다.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부자였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욕만 먹는 삭개오의 삶 속으로 거리낌 없이 훅 들어오시는 주님이시기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급히 내려왔다는 것, 즐거워하며 삭개오는 이 짧은 순간에 눈물이 울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울컥의 순간이 바로 삭개오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할 일은 주님처럼 삭개오를 찾고 삭개오를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가는 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욕하는 삭개오가 우리 가까이에 있을 수 있습니다. 나의 다가옴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가장 큰 관심은 잘 믿는 우리가 아니라 잃어버린 탕자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특별한 도전이 있는데 오늘 이란 단어입니다. 다시 5절 끝 문장 보십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여러분 여기서 오늘 이란 단어 헬라어로 세메론 이란 단어인데 이 단어가 없어도 그냥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셔도 말이 됩니다. 없어도 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오늘을 왜 끼워 넣으셔서 말씀하셨는가? 지금 바로 이 순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 바로 오늘이었습니다. 구원의 즉각성을 나타내는 단어, 내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즉시 일어나기를 갈망하고 기대하고 바라는 단어 오늘, 그래서 오늘 본문 마지막에도 삭개오가 완전히 변화되어 놀라운 8절의 고백을 하게 될 때에 마무리 하시는 주님의 마지막 표현도 바로 오늘 이란 표현이었습니다. 9절 보십쇼.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즉 바로 이 순간 이 놀라운 역사가 이르렀으니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즉 삭개오, 세리장 삭개오의 마음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임하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 표현은 육체적 아브라함의 자손 즉 혈통적 유대인이란 표현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 믿음의 대표 아브라함의 신앙의 후손이 드디어 되었다 라는 표현입니다. 영적 믿음의 계보를 이어갈 후계자가 되었다 하는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또 강조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만들기 프로젝트, 아브라함의 영적 믿음의 계보를 이을 후계자 찾는 프로젝트에 함께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40일 동안 주님이 금식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40일 금식하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똑같이 질 수 있는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사순절의 의미를 제대로 기념하며 사순절을 사순절 되게 하는 방법은 바로 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가 주님 만나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구원이 그에게 이르도록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도록 초청하는 일입니다.

마지막 10절은 다시 주님께서 온 목적을 더 확실하게 표현하십니다. 10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이 사순절에 최소한 한 명에게라도 복음 전하시길 바랍니다. 아! 이 사람이 바로 삭개오구나 찾아내시고 그에게 먼저 다가가시고 기회를 얻게 될 때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 기도하시고 예수 안 믿는 다는 사람도 다 아는 계란 나눠주는 부활절 잔치에 초청하시길 바랍니다. 안 믿는 남편도 초청하시길 바랍니다. 안 믿는 자녀도 안 믿는 부모님도 초청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순간에 어떤 역사가 일어날 줄 모릅니다. 주님의 놀라운 변화시키심의 역사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잭 밀러라는 농부는 하나님을 아주 열심히 믿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매주 교회에 갔다 올 때마다 전도하라는 설교에 마음에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전도의 중요성도 알고, 하고도 싶지만 타고난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어서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비록 전도를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잭의 머릿속은 언제나 ‘전도를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농장 근처에 큰 호수에 날아오는 거위를 이용하는 전도였습니다. 그는 철 따라 날아오는 거위를 그물로 잡아 다리에 성경구절과 간단한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물에 젖지 않도록 봉지에 싸고 끈으로 묶어서 풀어주었습니다. 거위는 철을 따라 남아메리카로 건너갔고, 또 에스키모가 사는 북극까지 날아갔습니다. 잭은 매년 200마리 정도의 거위를 잡아 말씀을 이렇게 묶는 방법으로 전도를 했는데 놀랍게도 그가 적은 메시지를 통해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자꾸만 생기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무려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종이를 하나님이 보내신 편지로 알고 믿게 됐다고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나의 삶도,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 사순절이 전도의 열정이 살아나는 절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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