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자세가 중요하다

새벽예배 2022.04.04 | 마가복음 12장 38-44절 | 이선기 목사



마가복음 12장 38-44절


38절.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절.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절.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41절.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절.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절.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사순절 새벽 묵상


여러분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래도 이것만큼은 내가 자신있게 가르칠 수 있다. 그게 바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입니다. 썩히지 마시고 복음 전하는 도구로 잘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생각해 보니까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치기 시작한 이 통기타를 완전 초보자나 치다가 중간에 그만 두신 분들을 가르치는데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단독목회하면서 동네에 통기타 교실을 열었더니 생각보다 굉장히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개척교회 그냥 오라고 하시면 안 오시는 분들도 통기타 가르쳐 드린다고 하니까 꽤 오시더라고요.


통기타를 가르치면서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발견했는데 첫 번째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그래도 통기타를 빨리 배우신다는 사실입니다. 입으로 부르는 노래를 손이 따라가려고 하면서 기타 치는 스킬이 빨리 늘더라구요. 두 번째는 기본 코드 C D E G A를 잘 외워 오시는 분이 빨리 성장합니다. 기본 코드를 다 외우셨으면 4분의 3박자를 위해 딱 맞는 곡, 기본 곡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걸 빨리 익히시는 분들이 빨리 성장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이 보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성실하게 열심히 부단히 연습하시는 분들이 결국 해 내시더라고요. 제가 조지아주에서 5년 살면서 이 통기타 교실을 했었는데 어떤 분이 통기타를 5000불 짜리를 사가지고 배우러 오셨습니다. 놀랐습니다. 그리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지금 초보자신데 다른 사람이 보는데 너무 신경 써서 그러신지 지나치게 비싼 고급기타를 사가지고 오셔서 저거 많이 망가질텐데 얼마나 아깝던지..제가 가진 기타랑 바꾸고 싶더라구요. 원래 초보자가 시작하는 모든 악기들은 기본자세 익히느라고 다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자기에게 맞는 적절한 악기를 준비하시는 게 좋은데... 여하튼 이렇게 종합해 보니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본자세가 중요하구나. 노래에 대한 열정, 기초 숙제를 충실히,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하시던지 기본자세를 잘 갖추시면서 결국 성장하고 성숙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신앙의 기본자세를 잘 갖추셔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신앙의 기본자세를 잘 갖추셔서 든든한 대들보 신앙인으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40일 사순절 묵상집에서도 읽으셨겠지만 이 마가복음 12장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무슨 이야기로 끝이 나는가? 바로 이 가난한 과부의 두렙돈 헌금 이야기를 마무리로 납니다. 공생애는 공적인 생애로, 예수님께서 누구에게나 다 드러나 보이는 자신의 공생애의 끝에 주님의 자녀라면 바로 이런 기본자세를 늘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시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인의 기본이다. 교훈하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을 묵상하시면서 이 사순절에 우리의 기본자세를 점검하시고 기초가 든든하여 크고 웅장하게 성장하는 멋진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첫 번째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인가? 한 분께만 집중하고 있는가? 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이 참 교훈적인 것은 앞에 38,39,40절의 서기관들의 모습과 41절 이후에 두렙돈 넣은 과부의 이야기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8절과 39절 보십쇼.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원래 긴 옷은 서기관들이 예배 때에 입는 옷으로 하나님 앞에 선 봉사자의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앞치마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일하는 종입니다. 봉사자입니다. 이 의미인데 서기관들은 이걸 왜곡시켜서 옷술을 길게 하고 풍채와 권세의 위세를 강조하며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원했다. 시장은 당시 유대 사회의 중심지였습니다. 완전한 시장 경제를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인 시장, 거기에서 목을 곧게 세우고 시장 한가운데서 다 보도록 폼 잡고 서 있는 모습 참 꼴불견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존경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경받기를 원하는 서기관들,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 높은 자리는 회당의 율법을 넣어두는 하나님의 언약궤 앞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되었던 교만한 이들, 여기까지만 봐도 꼴보기 싫을 정도인데 40절 보십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과부와 고아는 율법으로 보호받는 사회적 약자인데 서기관들은 이 사회적 약자들의 가산까지 삼켜버렸다. 이 놀부 같은 탐욕스러운 모습, 심지어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인데 “나는 많은 기도문을 다 알고 외우고 있다”하는 것을 티내기 위해서 길게 했던 이들.


여러분 우리 신앙이 지금 이렇게 꼴불견 서기관처럼 되어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봉사를 위한 앞치마를 입어야 하는데 보이기 위한 긴 옷으로 변했거나, 하나님 보다 내가 앞서 있는 것들, 내가 드러나 있는 것들, 저는 목사 까운 흰색 입을 때마다 참 두렵습니다. 검은색은 좀 괜찮은데 내가 그렇게 깨끗하지 못한데 깨끗한 흰색으로 감추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다른 분이 기도해 달라고 특히 안수기도 해 달라고 부탁하면 참 힘이 듭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시는 분이 있습니다. 내가 이럴 자격이 안 되는데 목사 안수 받은 지 16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두렵습니다. 대표기도를 그렇게 많이 오래 했는데도 너무 미사여구로 다른 사람 보기에 목사처럼 목사답게 목사로 보이도록 너무 폼잡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제 가난한 과부의 헌금하는 모습을 보십쇼. 41절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 새”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헌금함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41절 맨 뒷부분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절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여러 부자가 많이 넣는데 라고 된 부분을 보니까 이 가난한 과부는 분명히 앞에 부자들이 넣는 헌금 쿵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헌금하는 것에 위축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가난한 과부라면 이렇게 앞에 부자들이 헌금했으면 안 했을 것입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없는 밤에 몰래 와서 헌금했을 텐데 이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 동전을 그대로 넣었다는 사실. 사람들보다 하나님이 보신다. 내 가난함, 내 연약함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 그 마음이 이 과부에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께 집중하는 것, 그게 바로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은 경주마처럼 해야 잘 하는 것입니다. 경주마들은 눈을 가립니다. 옆에 못 보도록 앞만 보도록 말 안경을 씁니다. 앞에만 보도록 결승점만 보도록,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사야 40장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주님만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신앙인의 기본자세, 하나님의 계산법은 다르니 내 계산법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통기타 배우는 것 말씀드렸는데 기본 코드 C D E G A 이렇게 다섯 개만 꼭 외워 오시라면 이걸 안 외워 오시고 오른손 주법 연습해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투브로 보니까 오른손도 같이 익혀야 한다고 하더라, 코드를 이렇게 잡으면 편하더라. 다른 생각, 다르게 쉽게 하는 내 계산에 사로 잡혀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내 계산, 내 생각을 못 내려놓으시는 분들 이런 분들은 배우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그냥 해 오시라는 대로 내 생각을 내려놓고 5개 코드만 꼭 외워 오셔야 통기타가 시작이 된다는 사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교훈하시면서 네 계산을 내려놓으라 하셨습니다. 43절 보십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즉 너희들은 부자의 헌금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다 내가 볼 때는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내 기준은 다르다. 내 계산은 너희와 다르다. 여러분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시면 사실 부자들의 많은 헌금과 과부의 두 렙돈이나 하나님 보실 때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집이 몇 스퀘어 feet이니 방이 몇 개니 이자가 몇 %이 전전긍긍 하고 있지만 끝도 모르는 우주를 지으신 분이 볼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의 달란트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볼 때는 너무 큰 차이였습니다. 자기가 받은 한 달란트의 2배요 5배나 되었습니다. 주인이 볼 때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두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 남긴 자나, 다섯 달란트 받고 다섯 달란트 남긴 자나 상급이 똑같았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책망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 시선의 크기를 넓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쫌스럽고 쪼잔한 분이 아니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내 생각을 뛰어 넘어 계신 분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계산법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일부인가? 아니면 전부인가? 묵상하시고 전부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44절 보십쇼.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부자들은 일부를 넣었고 이 과부는 전부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판타 호사 에이켄”이라고 발음하는 “모든 소유”라는 단어와 “홀론 톤 비온 아우테스”라고 발음하는 “전부”라는 단어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과부가 가진 것들을 다 넣었다 한번만 표현해도 되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또 표현하면서 그녀가 가진 것을 다 드렸다. 모두 드렸다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 뒤에 13장부터 나오는 이제 공생애를 다 끝내고 모든 것, 정말 전부를 다 드린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처럼 자기의 전부를 내어준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걸 상징하고 있습니다. 왜 자기의 전부를 내어주셨는가? 저와 여러분을 너무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도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실 정도로 모든 것 전부를 내어주신 그 사랑, 여러분 이런 전부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여기 있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영생을 소망하고 부활의 나라를 소망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전부를 받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쩨쩨하고 쫌스럽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지.. 전부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는 평생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