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념 하시는 하나님

새벽예배 2022.08.15 | 창세기 8장 1-12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8장 1-12절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새벽 묵상


성경에서 요나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고 신기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 과연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실제로 있었을까? 요나가 얼마나 놀라고 또 놀랐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요나서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풍랑 이는 바다에 요나를 던졌고 풍랑이 잠잠해 졌는데 때마침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든지,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후에 니느웨에 토해서 밖으로 살아 나왔다든지, 갑자기 박넝쿨이 요나 머리위로 자라 그늘이 되었다든지 이런 신기한 일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 그 따뜻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요나서입니다. 내 앞에 드러난 여러 가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우리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오해하여 원망하기도 하고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겨 하나님을 찬양하고 좋아하지만 내가 원하는 하나님으로만 잘못 생각하기도 하는 연약한 우리들인데, 하나님은 흔들리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 즉 하나님의 깊으신 생각과 마음을 잘 묵상하시면서 어떤 형편에든지 하나님을 겸손히 신뢰하는 변함없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바로 오늘 창세기 8장 앞부분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본문입니다. 이제 노아와 가족들 그리고 방주에 있는 모든 짐승과 가축들을 제외하고 물로 세상을 다 멸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새로 시작하시는지를 살펴보시면서 따뜻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발견하시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1. 첫 번째로 하나님은 권념하시는 하나님이심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1절 보십쇼.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여기서 “기억하사”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자카르”입니다. 이 자카르라는 단어를 우리가 지금 쓰는 개역개정은 단순히 기억하사 라고 번역했지만 옛날 성경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권념하사” 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권념하사라는 표현이 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권념하사라는 것은 “돌아볼 권” 자에 “생각할 념”자를 써서 그 생각의 특별함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특히 “돌아볼 권”자에는 돌아본다는 뜻 말고 돌보다, 그리워하다, 심지어 은혜라는 뜻도 있습니다. 한글로 번역한 우리 옛 신앙의 선배님들이 이 자카르를 단순히 기억하다 이상으로 표현하고 싶으셨다는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실 뿐만이 아니라 인격과 자비가 있으시고 애정이 있으셔서 돌보시고, 그리워하시고, 은혜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 여러분 믿으십니까? 평생 동안 자카르의 하나님 권념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세상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 모든 생명체를 멸하시는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짐승과 가축들에 있었다는 사실.

틴에이져 두 딸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데 아무래도 딸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얼마나 애들이 섬세하고 예민한지. 어쩔 땐 칭찬을 해줘도 화낼 때가 있고, 나무라고 야단치면 울며 용서를 구할 때도 있고.. 남성인 아빠로서 참 다루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마음에 용기를 주려고 작은 것에도 놓치지 않고 격려와 칭찬을 해주면 ‘아빠, 나 지금 놀려?'하고 방으로 도망가 버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단호히 야단 좀 쳐야겠다 맘먹고 말하면 금새 받아들이고 눈물 뚝뚝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하면 제가 또 마음이 약해져서 괜히 야단쳤나보다 그냥 부드럽게 얘기할걸... 후회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보다는 같은 여성인 엄마가 아이들과 케미가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집사람을 보면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지나가는 말로라도 한 마디만 하면 늘 그 다음날 바로 그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엄마,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었네?‘ ’와. 엄마 이거 내가 먹고 싶은 거 어떻게 알았어?' 하며 감동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집사람이 말합니다. ‘작은 소리라도 말하면 엄마는 잘 들었다가 꼭 기억하고 다음 날 바로 만들어주지. 그게 바로 자식과 부모인거야.’ 이걸 보면서 깨닫습니다. 하나님, 권념하시는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이런 분이시겠구나.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얼마나 은혜 되는 구절입니까. 아이들이 ‘휴~ ’하고 한숨 쉬면 엄마는 그 때부터 벌써 마음이 쓰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럴까. 직접 물어보면 말해주려나. 내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벌써 머릿속이 이러한 생각들로 가득찹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고 우리를 더 사랑하시니 오죽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눈물 한 방울에 가슴이 쿵 내려앉으시는 분. 우리의 작은 신음, 한숨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마음 아파하시는 분. 그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은 부드러운 회복의 하나님이심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1절 중반부터 보십시오.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절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5절까지 계속해서 이제 모든 것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표현들입니다. 특별히 끝에 동사들을 보면 회복하시는 하나님께서 아주 부드럽게 섬세하게 이 회복의 과정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절 끝에가 줄어들었고, 2절 끝단어가 그치매 였는데 3절에는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점점 물러가서 얼마나 부드러운 표현입니까?)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절 “일곱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여기서 우리는 쉽게 아 드디어 방주가 아라랏산에 멈추었구나 생각하는데 여러분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만들라고 하신 방주는 지금의 배 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그냥 큰 사각형 모양, 즉 직육면체 모양이고 재료는 잣나무였습니다. 3층 구조로 되어 있고 창문과 출입문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추진 장치도 없었고 방향 잡는 키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조종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혹시나 방주가 깨어지지은 않을까 생각도 들고 어떻게 멈추게 될지 전혀 알 수도 없는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몇 달이 지나 드디어 어느 순간 방주를 부드럽게 움직이지 않게 정박시키셨을 때 얼마나 마음이 놓였겠습니까? 5절에 또 부드러운 회복의 표현입니다.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날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이제 구체적으로 물로 가득찬 세상을 다시 산과 바다로 구분시키시는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한 7년 전에 저희 가족이 조지아에서 이 곳 southern california 로 이사 온 후 사역지가 없어서 기도하던 중이었습니다. 6개월이 넘어가면서 저도 집사람도 많이 답답해하던 중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20살에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전도사가 되어 보기 드물게 어린 나이부터 사역을 시작했고, 심지어 군대에 있으면서도 빡빡머리를 한 채 민간인 교회의 사역을 했을 정도로 한 순간도 사역을 쉬지 않았습니다. 4대째 모태신앙인 저와는 달리 집안에서 혼자 믿고 신학까지 공부하게 되었던 집사람은 무엇을 하던지 늘 저보다는 뜨겁고 열정적입니다. 찬양도 기도도 저보다 뜨겁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6개월 넘어가는 기다림의 시간을 얼마 전 집사람과 함께 회상을 하는데, 집사람이 말하길 그래도 모태신앙이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제가 매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다 왔어. 조금만 더 기다리자.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 거의 다왔어.” 그 말에 집사람은 그래도 모태신앙이 낫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때의 그 시간을 겪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지금 윌셔에 없었을 것입니다. 항상 사역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제가 잠시 잊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개월 이상 되는 시간을 저에게 기다림의 시간으로 허락하셨고, 그 때 깨달았습니다. ‘아. 사역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나님의 일에 대한 감격, 하나님의 일에 대한 감사를 다시 회복하시게 하는데, 은혜로 일하는 회복의 시간 6개월 이상의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했던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기다림 속에 혹시 지쳐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시 광야에 나 혼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으로 하나님이 지금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시는가...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안심하시라고 꼭 권면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회복시키시는 시간입니다. 걱정 근심 염려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힘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기다리십시오. 어차피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시되 기쁘게 기다리십시오. 결국 놀라운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3. 마지막으로 권념하시는 하나님 부드럽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썩을 것에 집착하지 말고 새 땅을 바라보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6절에 보니까 40일이 지나서 드디어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게 됩니다. 새로운 세상에 맑은 공기를 맞이했을 때 얼마나 상쾌했을까요? 창문을 열고 노아가 한 일은 7절 보십쇼.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노아는 제일 먼저 까마귀를 새로운 세상에 날려 보냅니다. 7절에 왕래하였더라 하고 다른 구절이 없는 것을 보니 까마귀는 다시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8절 보십쇼.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절에 보니까 온 지면에 아직도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10절에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더니 11절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옵니다. 드디어 땅에 물이 많이 줄었구나. 12절 또 일주일을 기다렸더니 다시 내보낸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7절에 돌아오지 않은 까마귀, 까마귀는 식량이 썩은 고기입니다. 방주를 떠나 새로운 세상에 나가보니 물 위에 혹은 마른 땅위에 죽은 고기들이 널려 있었을 것입니다. 까마귀 특성상 진흙더미 위에서 생활할 수 있기에 굳이 다시 방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 비둘기는 다릅니다. 비둘기는 마른 곳만 앉는 새입니다. 까마귀랑 다르게 썩은 고기는 절대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둘기가 9절에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11절에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은 저지대 식물인 감람나무가 살 정도로 식물이 살 정도로 세상이 거의 회복되었다는 사실. 그래서 세 번째 비둘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를 권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세상을 다시 살 수 있도록 회복시키셨을지라도 까마귀 같은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썩고야 말 고기에 집착하여 방주를 까맣게 잊어버린 이들, 그 놀라운 구원의 대 역사를 체험했음에도 난 몰라 난 관심 없고 당장 눈 앞에 썩은 고기로 만족하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새로운 세상 마른 땅, 새 언약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그 땅을 향해 날아가는 비둘기의 삶,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셔서 구원받게 된 새로운 인생, 영원을 바라보도록 마른 땅, 새 하늘과 새 땅, 부활의 나라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감사하시면서, 이 땅에 집착을 버리고 사시길 바랍니다. 썩은 고기를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하시면 영광중에 나아가리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가 세상짐을 내려 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새 땅을 바라보며 준비하며 이 땅에 살고 있으나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