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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말고 성도되십시오

새벽예배 2023.08.28 | 사도행전 27장 27-44절 | 이선기 목사




사도행전 27장 27-44절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새벽 묵상

평생 동안 열심히 말을 타고 다니면서 죽어가는 영국 사회를 살려내고 복음을 증거한 감리교회의 창시자는 존 웨슬리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존 웨슬리 목사님을 하나님과 뜨겁게 만나 복음 전하는 전도자가 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친구 모라비안 목사인 피터 뵈일러와 고틀립 스팡겐버그로부터 받은 영적인 도전은 웨슬리 목사님을 올더스케잇 회심으로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뵈일러와 스팡겐버그 목사님은 웨슬리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강하게 던졌습니다. “웨슬리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랬더니 아직 회심하기 전인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분은 인류의 구세주이시다”, 친구 목사님은 다시 묻습니다. “웨슬리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당신의 구세주이심을 믿는가?” 그랬더니 당황한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발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이렇게 회심하기 전에 설교를 하긴 했지만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연약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설교할 수 있을까 깊이 회의감에 빠져 있을 때 피터 뵈일러 목사님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웨슬리, 믿음이 생길 때까지 설교하라” 웨슬리는 이 조언에 큰 감명을 받게 되고 결국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이건 감리교 목회자가 꼭 외워야 하는데요. 이 때에 드디어 회심하고, 복음의 불덩어리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향을 끼친 모라비안 친구들보다도 그 이전에 이미 웨슬리 목사님에게 큰 충격을 준 모라비안 교도들이 있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첫 선교지 미국 조지아 주 원주민 선교에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항해에서 큰 풍랑을 만났을 때 모든 배에 탄 이들이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을 때 전혀 요동하지 않고 찬송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있는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이 모라비안 교도들 평신도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 죽음의 위기에서도 전혀 요동하지 않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 모라비안 목사님들이나 평신도들처럼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끼치는 강한 그리스도인들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강한 믿음을 갖게 하고, 죽음의 순간이 올지라도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될 확신으로 크게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그게 바로 교인이 아닌 성도의 모습입니다. 교회에 가는 모든 분들이 다 믿음의 사람인 것 같지만 냉정해지십시오. 그냥 교인이 될 수도 있고, 성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냥 교인은 다른 종교인들과 큰 차이가 없는 그저 일주일에 한번, 주일 아침만 딱 한번 잠깐 하나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고 한 주간 전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과연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도는 그 단어의 뜻처럼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을 뜻합니다. 거룩함을 위해 점점 변화되어 가는 사람, 성장하는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뜻합니다. 세상에 강하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삶의 기준이 없는 이 세상에 주님의 기준을 굳건히 세워가는 이정표 같은 사람, 신학자 니버가 이야기한대로 세상의 변혁자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영혼구원에 불타오르는 사람이 바로 성도입니다. 수년이 지나도록 나만 교회 다녔지 다른 영혼에 대해 도무지 관심 없이 사는 사람은 교인일 뿐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교인되지 마시고 꼭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웨슬리 목사님이 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올 때 풍랑을 만나 모리비안 교도들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처럼, 그렇게 바울일행이 배타고 로마를 향해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죄수들과 함께 이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 절제절명의 위기가 찾아 왔을 때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가 말한 구원의 소식, 배에 탄 모든 이들, 37절 276명이 다 살게 될 것이라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며 희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오늘 본문 끝에 44절 모든 이들이 다 널조각이나 배 물건에 의지하여 한 명도 빠짐없이 정말 상륙하여 구조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과정에서 우리는 교인이 아닌 성도의 모습을 발견하며 교훈을 얻게 되는데

1. 첫 번째로 욕심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바로 성도의 사명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큰 풍랑을 만난 지 이제 14일이 지나 27절 감사하게도 이제 거의 육지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공들은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이제 육지에 가까이 이르게 됨을 느끼고 28절 물 길이도 재어보고 29절 닻을 내리며 암초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30절 사공들은 자기들끼리 짜고 다른 방법으로 자기들만이 아는 탈출을 시도합니다. 30절 “거룻배” 즉 비상용 보트로 오직 자기들만 살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자기들만 도망하여 육지에 가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31절 이 사공들의 얄팍하고 이기적인 욕심을 알아차리고 사공들만의 탈출을 막습니다. 결국 32절 군인들이 그 비상용 보트들의 줄 거룻줄들을 다 끊어버리죠.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기심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욕심이 팽배한 이 땅에서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과 탐심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는 일,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도록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성도되시길 바랍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라는 말씀을 외우지만 말고 실제로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서로를 이용하고 속이는 세상의 잘못된 가치, 약육강식의 가치가 기준되지 않도록 거룩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되게 하는 일,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잘려진 귀를 고쳐주시면서 베드로를 향해 하신 말씀이 뭐였습니까? 검으로 일어선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욕심과 이기심을 대표하는 양육강식의 기준의 위험성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서로 높은 자리 차지하려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철저히 욕심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라. 권력이 갑질이 함부로 힘쓰지 못하게 하라. 섬김의 힘이 가장 바람직한 권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사시대가 다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신본주의를 버리고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세워달라고 애원할 때도 하나님이 반대하신 이유는 바로 이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권력의 위험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처음 왕 사울은 욕심과 이기심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처음의 겸손의 모습은 다 잃어버리고 욕심과 이기심의 결과물 자신의 권력에 위협된다고 생각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수년을 허비하다가 길보아산에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욕심이, 이기심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영적인 싸움을 잘 싸우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도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는 기도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나만 위한 기도, 내 소유, 내 자식, 내 것들을 위한 기도 언제까지 그런 기도만 계속 하실 것입니까?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다른 이를 위한 기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거룩한 성도의 기도를 드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위로하고 사랑을 베푸는 일이 바로 성도가 할 일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33절 보십시오.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35절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절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바울이 친히 떡을 가져다가 먹게 한 일, 마치 낙담했던 엘리야에게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게 하심으로 큰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바울이 떡을 가져다가 베푼 일은 배에 타서 풍랑을 만나 공포에 빠진 이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또 하나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위로하고 사랑을 베푸는 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몸과 피를 나누어주신 예수님처럼 그렇게 빵과 포도주를 베푸는 일, 자신을 희생하여 나누어주는데 인색하지 않는 희생의 그리스도인 바로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는 동정과는 다릅니다. 그냥 불쌍해서 적선하는 일, 착한 사람 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정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갚을 수 없는 너무 큰 위로와 사랑을 먼저 너무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죽게 하신 그 크신 사랑, 그 사랑의 빚진 마음, 우리는 그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의 마음으로 육십만배 탕감받은 그 감격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평생동안 자는 시간도 아끼며 보통 2시간 자면서 그것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잠도 줄여가며 가난한 이들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어떤 기자가 테레사 수녀에게 왜 이런 인생을 선택했냐고 질문하니까 테레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나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성도는 이미 받은 너무 큰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위로하고 사랑을 베푸는 성숙한 성도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 바로 꼭 성도가 할 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배 안에 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냥 떡을 가져다가 베푼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십쇼.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35절 다시 보십쇼.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이 “하나님께 축사하는 일” 뭐가 생각나십니까? 예,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때 하나님께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셨을 때 5000명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은 것처럼, 단순한 음식에 대한 감사기도가 아니라 이 하나님께 축사함은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드러내는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큰 풍랑 유라굴로를 만나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배에 탄 276명 한 사람도 상하지 않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요. 지금까지 안전하게 온 것은 우연이나 선장이나 사공들의 노련한 항해술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철저한 구원의 은혜임을 모든 이들에게 드러내는 표현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신 말씀대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사랑, 너무 큰 사랑 큰 빚짐을 기억하십시오. 이미 너무 큰 부활의 나라에 들어갈 특권을 받을 자라면 이미 가장 큰 것을 받은 성도인데, 여러분 너무 소유에 집착하지 마시고 하나님 드러내는데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1달러, 1센트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내가 가진 소유 가지고 하나님 영광 드러낸 내 모습만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미 예비된 찬란한 부활의 나라 바라보시고 오늘도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는 평생동안 성도의 삶을 힘있게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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