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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러셨고 그런 분 이시고 그럴 분 이 십니다

새벽예배 2022.11.23 | 창세기 50장 15-26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50장 15-26절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온 세상을 지으시고 특별히 나를 지으셔서 이 땅에 사는 동안 꼭 필요한 사명을 주신 것을 감사하시고 열심히 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공간들만 지으신 하나님이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하나님은 공간뿐만이 아니라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으신 분이심을 고백하는 표현을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발견하고 더욱 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시간의 창조자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간을 지으신 분이요 창조자이신 당신이온데, 어찌 당신께서 만드시지 아니한 무수한 시간이 흘러갈 수 있나이까?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고, 모든 시간 이전에 당신은 계셨기에 시간이 없었을 때는 그 무슨 시간이 없었나이다. 시간 자체를 당신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어느 것도 만드시지 않은 시간은 없는 것이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흘러가는 이 현재의 시간도,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시간도, 앞으로 올 미래의 시간도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창세기 50장 맨 마지막 부분에서는 요셉이 창세기를 마무리하면서 자기의 인생도 마무리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함으로 창세기 50장의 대 역사를 종결짓고 있습니다. 즉 요셉의 삶 전체를 돌아보면서 과거에 역사하셔서 요셉의 삶을 이끌어 오시고 모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해 오셨던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고, 지금 오늘 현재의 시간을 다스리시고 섭리해 가시는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직 모르는 미래의 삶까지도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인정하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런 폭넓은 하나님의 표현, 시간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표현이 곧 저와 여러분의 표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아버지 야곱이 죽어 선조의 땅 마므레 막벨라굴의 장사되는 모든 장례의 과정이 이제 다 끝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 장사지내고 돌아오면 요즘에 한국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 예 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유산 문제가 붉어져서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오늘 본문 야곱의 아들들에게는 무슨 문제가 일어났는가? 유산 돈 때문이 아니라 요셉의 형들이 갑자기 마음이 이상해졌습니다. 15절 보십쇼.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의 형들은 갑자기 걱정과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즉 그동안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었기에 참았던 것이지 분명히 요셉은 우리를 미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고 애굽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는데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우리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걱정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옛 말에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딱 맞습니다. 지금 요셉은 아무 원한이 없는데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죽이려 하고 애굽가는 상인에게 팔아버린 형들이 오히려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면서 잠도 못 이루는 안타까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형들은 얼마나 두려웠던지 16절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강조하면서 요셉에게 당부합니다. 16절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절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형들의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느껴지십니까? 이 다음 표현은 아주 초라하고 간절한 표현입니다.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이란 표현, 당신은 2인칭의 극대화의 표현이요, 당신 아버지의 즉, 요셉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 그러니까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이런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귀하신 국무총리님의 아버님, 그 아버님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노예들이 된 우리들이오니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요셉은 이 표현을 듣고서 또 울게 됩니다. 17절 맨 끝에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저 같으면 웃었을 텐데, 아주 통쾌해서 웃었을 텐데, 요셉은 왜 울었을까요? 이미 용서를 했는데도 불안해하고 보복할까봐 마음이 두려운 형들의 초라한 모습이 참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저 울기만 하니까 이제 조금 화가 풀리나 보다, 그런데 행여나 저러다가 갑자기 분노하면 어쩌지? 드디어 본심이 드러나면 어쩌지? 걱정하는 형들 이제는 찾아 와서 아예 몸을 노예처럼 낮추어 다시 한 번 용서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18절 보십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은 이렇게 불안해하는 형들의 초라하고 불쌍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면서 우선 시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현재의 하나님이심을 강하게 표현합니다. 19절 보십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요셉의 형들은 인간의 복수심, 인간의 원한에 집중하고 있는데 반해 정작 요셉은 사람의 마음, 원한, 분노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사람에 대한 미움, 사람에 대한 복수심을 현재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요셉은 복수하는 것,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임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인간적인 감정에 사로 잡혀 있었다면 분명히 자기 자신이 고생했던 것, 형들에 대한 서운함, 보디발 아내가 누명 씌운 것, 술관원장이 3년동안 자신을 잊어버리고 있던 것 다 갚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 국무총리가 된 입장에서 원수 갚아도 뭐라 그럴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지금 그런 인간적인 감정에 대한 분노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했더니 지금 현재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집중했더니 인간적인 욕심이나 미움, 원한을 다 이길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지금 이 시간 나와 함께 하셔서 순간순간 나와 동행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시면 인간적인 감정을 넘어설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나님이 다 갚으시고 판단하시는 지금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십니다. 그 표현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아직도 미워하고 용서 안 되는 분 있으시면 요셉처럼 하나님, 현재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시면서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철저히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의 권한이 아닙니다. 하시고 맡기시길 바랍니다.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고 심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요셉은 과거의 시간을 주관하셨던 하나님, 악을 선으로 바꾸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0절 보십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옛날 요셉을 물 없는 구덩이에 던질 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즉 형들은 내가 미워 질투하여 구덩이에 쳐넣고 나를 죽이려 했으나 나도 너무 괴로웠으나 하나님은 더 큰 뜻이 있으셨습니다. 그 형들의 악한 행실을 선으로 바꾸셔서 이제 와 보니 우리 민족에게도 가뭄이 올 것을 미리 아시고 나를 형님들 앞서 이 풍요의 땅 애굽에 먼저 보내셔서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와서 보니 이렇게 과거의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저는요 우리 이민 1세대 분들이 처음 70년대 80년대 미국에 와서 고생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참 나는 새발에 피구나! 저희 가족이 처음 미국에 와서 저기 조지아 시골에 가서 고생한 것은 정말 고생이라고 할 수 없는 고생이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지금 와서 보니까 고생했지만 여기까지 지내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여러분 지금 천국 다음으로 좋은 미국에 어쨌든 잘 살고 계신 것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과거에 특별한 뜻이 있으셔서 고생하게 하셨지만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추억하며 감사를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과거의 최고의 은혜는 무엇이겠습니까? 예 이 죄인을 이 가능성 없는 죄인을 위해 2022년 전에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은혜 이것보다 더 큰 과거의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장 큰 감사는 구원받은 감사임을 절대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요셉은 미래의 역사하실 하나님을 “돌보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4절과 25절에는 돌보신다는 표현이 두 번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입고드”라고 발음하는데 왜 두 번이나 표현했을까요?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미래의 삶까지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24절의 돌보시고는 미래까지 민족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하나님 ,이 땅에서 이 애굽 땅에서 430년 포로 생활이 다 끝날 때까지 돌보시고 출애굽 하게 하실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25절도 역시 미래의 역사하실 하나님 요셉이 곧 죽을 텐데 내가 없어도 당신들을, 우리 가족들을 잘 돌보아 주실 것이니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즉 나를 여기 애굽 땅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가서 묻으라. 실제로 이 유언을 따라 에브라임 지파 소속의 가나안 땅 세겜에 요셉의 시신이 안치되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요셉의 가족들의 미래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저와 여러분의 미래, 죽음 이후의 삶까지 영원토록 지키시고 돌보실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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