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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리 밑에서 주워 왔나?

새벽예배 2022.09.05 | 창세기 19장 23 -29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19장 23 -29절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새벽 묵상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가면 소백산에서 발원한 죽계천이 소수서원과 선비촌 사이를 흐르는데 이 사이에 놓여진 청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를 사람들이 특별하게 부르는데 바로 아기를 주워와 키운 다리입니다. 예, 맞습니다. 이 순흥의 청다리에서 나온 우리 말이 바로 “너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라는 표현, 그 표현의 진원지가 바로 이 순흥 청다리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순흥 청다리는 참 참혹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수양대군(1417~68)이 단종(1441~68)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의 동생 금성대군(1426~57)이 소백산 남쪽 자락 순흥으로 유배를 옵니다. 금성대군은 유배지에서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돼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모의에 가담한 사람만 죽은 게 아니었습니다. 순흥 사람 수백 명이 청다리 아래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죠. 순흥 30리 안에는 사람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으며, 청다리 아래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10리 밖 마을까지 흘렀다고 합니다. 피가 비로소 멈춘 마을, 안정면 동촌 1리는 아직도 ‘피끝마을’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런 슬픈 역사 때문에 순흥의 청다리 밑에는 실제로 혼자 남겨진 아기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자 남은 아기들을 다른 어른들이 데려가서 기르게 되었기에 생긴 말 “너 다리 밑에서 데려왔지”입니다.

저희 둘째가 7살 때 저희 부부한테 실제로 질문했습니다. 아빠 나는 아빠도 안 닮고 엄마도 안 닮은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생긴거야? 엄마는 조금도 지체 없이 바로 대답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했던 말 그대로.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정말?

여러분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라는 답변은 아이가 생각하기에 자기의 모습이 부모님과 너무 닮지 않다고 여겨지기에 생긴 부모님이 하는 농담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정말 부모님의 모습과 아이의 모습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부모 자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특징과는 너무 달리 제 멋대로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합니다. 정말 저런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건가? 의심되는 너무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도 많습니다. 넌 다리 밑에서 주워 왔구나 확실하다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똑바로 알고 그 하나님의 형상을 전하고 그 형상으로의 회복운동이 일어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과 너무 차이 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아주 잘 발견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불타는 소돔 고모라 성에서 롯과 아내와 딸들이 도망 나오면서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게 되어 안타깝게도 거의 다 와서 소금 기둥이 되고 마는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됨과 동시에 다시 하나님 닮는 하나님의 형상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첫 번째로 하나님은 강력한 심판의 주관자이신데 인간은 겁 많고 게으르고 제 멋대로입니다. 24절 보십쇼. 처음 문장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히브리어로 “야훼 민 하싸마임”이라고 발음하는데 일부학자들은 이것은 앞에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고 뒤에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잘못 해석하는 몇몇 학자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런 구별의 표현보다는 심판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는 장로교 칼빈의 의견에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뒤에 “유황과 불을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라는 표현도 마치 화산 터질 때의 그런 엄청난 용암 같은 것을 하늘에서 비같이 내리신다. 여러분 이런 엄청난 능력, 자연까지 다스리시는 능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능력입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미스바에서 블레셋에 큰 우레를 내리셔서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애굽에 포로생활 할 때 지도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보십쇼. 온갖 자연재해를 통해서 하나님의 강력하심을 바로와 애굽인들에게 직접 내리시는 하나님. 문제는 이런 엄청난 자연현상을 보았으면 정신 차리고 강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할 텐데, 이스라엘을 보내야 할 텐데 버티고 또 말바꾸고 그러다가 애굽에 모든 맏아들이 죽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죠.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강력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반대로 겁 많고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인간의 모습은 오늘 본문 가장 첫 번째 절 23절에서 보여집니다. 23절 보십쇼.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당장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23절 앞부분 어제 본문을 잠깐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제 묵상할 본문 창세기 19장 15절과 16에 소돔성에서 롯의 집에 온 천사들을 끌어내라. 안 된다. 여기 딸들이 있다 뭐 옥신각신 하는 중에 15절에 보면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여러분 “동틀 때에”는 해가 뜨는 새벽 6시 정도를 나타낸다고 하면 오늘 본문 23절 끝에 해가 돋았더라. 해가 막 다 뜬 것을 표현합니다. 짧은 시간입니다. 왜 이렇게 짧은 시간의 표현을 하고 있는가? 즉 롯과 그의 가족이 도망간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장 16절에는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곧 유황과 불이 소돔성에 내릴 것을 알고 급해서 재촉해도 롯은 느긋합니다. 얼마나 게으른 모습입니까? 천사들이 롯과 가족들을 밖으로 이끌어 산으로 도망하라 했는데 롯은 산은 무섭습니다. 하면서 가까운 소알 성을 가리킵니다. 저 성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니 나를 그곳으로 도망가게 하소서. 쉽게 가려고 하고, 편하려고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안하려고 하고 이렇게 어리석고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존재, 이런 존재가 바로 롯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게으름 때문에 거의 불심판 직전에 도망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조금만 더 일찍 더 멀리 피할 길을 갔다면 혹시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분 롯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하면 미루고 연기하고, 겁내고 쉬운 방법을 찾고 내 맘대로인 우리들 아닙니까? 자꾸만 잔머리를 씁니다. 사라가 10년을 기다리다가 몸종 하갈을 들여보냈다가 덜컥 임신하여 주인 업신여겨 난리가 난 것 쉬운 방법 찾으려고 잔머리 쓰다가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잔머리 때문에 지금까지도 중동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거다 말씀드렸습니다. 조금만 서두르고 미리 준비했으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텐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시기 바랍니다.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곤핍이 군사같이 이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처럼 강력한 존재가 되는 방법 미리 준비하는 부지런함에 있습니다. 게으름과 잘 싸워 이기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 하나님은 철저하신 분 확실하신 분이신데 인간은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존재입니다. 24절에는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셨다고 했는데 25절 보십쇼.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여기서 “다 엎어 멸하셨더라”는 히브리어로 “와야하폭”입니다. 완전히 전체를 뒤집어엎어 버린다. 모든 것을 아주 조금도 쓸모없게 만든다는 표현입니다. 그냥 유황과 불만 내려도 패망하는데 백성과 땅에 난 모든 것을 아주 멸절시키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얼마나 철저하고 확실하게 멸하셨는지..하나님의 특징을 아주 잘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고 기다리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시지만 심판하실 때는 아주 에누리없이 확실하게 초전박살 내시는 철저하신 하나님, 여러분 이런 철저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신데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걱정하고 계십니까?

문제는 우리 인간입니다. 26절 보십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앞에 17절에 분명히 돌아보거나 머물지도 말라고 하셨는데 방금 했던 그 말씀을 어기고 결국 돌아서고 만 롯의 아내. 오죽하면 이름도 안 밝히고 그냥 롯의 아내라고 했겠습니까? 이름도 기억할 필요가 없는 가치 없는 인생을 살다 간 여인. 주목해 볼 것은 뒤를 돌아보다는 단어에 쓰인 히브리어 “나바트”라는 단어의 뜻이 골똘히 바라보다는 뜻과 함께 마음속에 간직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라는 사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대로 롯의 아내가 뒤돌아 본 것은 한 쪽 눈으로 잠깐 보았다는 의미보다는 이건 아니지 하면서 완전히 등을 돌려 골똘히 바라보았거나 천사들이 말한 것을 마음속에 두지 않았기에 즉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천사들의 말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전도해도 아예 무관심한 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고 한 곳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여 그것을 놓지 못하는 이들 유한한 것들을 놓지 못하는 이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결국 썩어 없어질 것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장 철저하신 분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고 계신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못 믿어 하는 사람 결국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게 될 사람일 뿐이고, 이거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하는 분들 짜장면이나 먹으라 하시기 바랍니다. 믿을 존재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은 유혹에 넘어갈 존재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불순종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29절 보십쇼.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은 비록 아내는 놓치고 말았지만 두 딸들과 소알 성에 들어갔을 때에 크게 안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혹은 역시 나는 순발력이 있어 하고 자신을 칭찬하고 위로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겨우 구원받은 것은 누구 때문이라고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즉 롯보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였다는 사실입니다. 즉 앞에 창세기 18장 23-32절에 나오는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바로 그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브라함의 기도대로 롯에게 구원의 길을 결국 여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고보서 5장 14-16절이 이렇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죠지 뮬러의 조언입니다. “늙어 갈수록 기도를 더 많이 하라. 그러해야 신령한 일에 냉랭해 지지 않는다.” 스펄젼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 마른 눈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물리쳐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고 끝까지 지고 가게 해 달라는 기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거룩한 하나님 닮은 하나님의 자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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