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빨 빠진 호랑이의 도망길

새벽예배 2023.05.08 | 사무엘하 15장 13-23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15장 13-23절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아십니까? "장자"의 '천지'편에 나오는 고사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나라 임금이 화라는 고장을 여행할 때 그곳 국경지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성인이시군요. 부디 성인을 위해 축복하게 해주십시오. 성인이 장수하시기를!" 그러자 요임금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성인이 부유하시기를!" 요임금은 역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성인께 아들이 많으시기를!" 요임금은 대답했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러자 국경지기가 말했습니다. "장수와 부유함과 아들이 많음은 누구나가 다 바라는 바입니다. 당신만 유독 바라지 않는다니 어째서입니까?" 그 때 요임금은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면 귀찮은 일이 많으며, 장수하면 욕된 일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는 무위의 참된 덕을 키우기 위한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사양하겠습니다." 바로 여기서 첫 번째 대답 자식이 많으면 걱정이 많으니, 차라리 자식이 없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운명을 가진 자라는 뜻으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5월 8일 바로 어버이날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더 높은 것 같애. 기억하지죠? 그런데 하필이면 어버이날에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본문이 자식 때문에 고통스러운 다윗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 가운데 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누구보다도 말하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다윗일 것입니다. 다윗은 외부적으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존경받고 있지만 실제 다윗의 내면적인 삶은 누구보다도 자식문제로 고통을 많이 겪었던 사람입니다. 기드온도 아들들이 70명이나 되고 그 중에 아비멜렉이 다른 아들들을 거의 다 살해해서 너무 큰 고통을 겪었는데요. 다윗도 우선 아들이 2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아서 통제가 안되서 그런지 지난 13장과 14장 본문을 통해서 아시겠지만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딸 다말을 강간하고 또 무참하게 내치는 일도 있었고 이 일로 인해 복수의 칼을 갈은 압살롬이 결국 암논을 살해하고 도망을 갔다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참 자식으로 인해 가슴 아픈 다윗인데, 더 나아가 다윗은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게 됩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은 왕궁을 떠나 이전에 사울의 칼날을 피하여 방랑 생활을 수년간 했던 것처럼 또 한 번 왕궁을 떠나 방랑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14절에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신하들에게 하는 안타까운 말을 들어보십쇼.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사람도 압살롬에게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여러분, 이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6척장수 골리앗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홀로 물맷돌 돌리며 달려 나가 때려눕혔던 다윗의 기개가 지금 다 어디로 갔습니까?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가장 초라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제목을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가 도망하는 것 같아 “이빨 빠진 호랑이의 도망길”이라고 지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하나님 앞에 멋지게 쓰임 받은 사람도 어느 한 순간에 이렇게 초라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늘 넘어질까? 늘 하나님 앞에 내가 바로 서 있나? 체크하시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왜 늘 넘어질까? 바로 서 있나? 체크해야 될 이유는 이 다윗의 초라한 도망길의 근본 원인이 바로 다윗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도대체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했는가? 그냥 자식들이 못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원인이 있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쇼. 다윗의 지금의 도망길은 마치 준비된 것 같습니다. 13절에서 전령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 돌아갔나이다. 하는 소식에, 다윗은 마치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13절과 14절에 아무런 한탄도 아무런 반항도 없이 바로 떠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일이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12장 10절에 보면 다윗이 왜 이 압살롬의 반역을 그냥 받아들였는지 이유가 나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고 우리아를 전쟁에서 죽게 한 것을 책망하면서 했던 예언이 있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다윗은 바로 이 말씀을 마음에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가 남의 아내를 빼앗고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한 것으로 인해 우리아의 아내를 통해서 낳은 첫 번째 아들이 죽는 것으로 다 끝나지 않겠구나 그 죗값을 더 치러야 하겠구나.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압살롬이 반역하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간음죄와 살인죄를 철저히 기억하고 회개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첫 번째로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오래 전에 한 약속이라도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것, 심지어 25년 전에 약속하신 아들 아브라함과 사라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모든 경수가 끊어졌어도 말씀하신 그대로 나이가 90세가 된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게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요셉에게 어릴 때 꿈을 꾸게 하신 것, 애굽에 팔려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응답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아도 이상한 방법으로라도 결국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셔서 꿈에 보여주신 약속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잊어도 결코 잊지 않으신 분, 시편 121편 3-4절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늘 깨어 계시고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분이심을 늘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에 대하여 아주 철저히 죗값을 치르게 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심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그대로 심은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갈라디아서 6장 7절 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하셨습니다. 마지막에 반드시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실 신실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임을 기억하시고 코람데오 늘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다윗의 애매하고 인간적인 자식사랑의 방법이 무서운 반역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난 14장에서 보셨겠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요압 장군의 정치적인 야심 때문에, 압살롬을 애매하게 예루살렘에 데려와서 2년 동안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윗과 압살롬 간의 진실한 대화나 형을 죽인데 대한 진심어린 압살롬의 통곡의 회개가 없이 서로 뻘쭘하게. 가까이 있어도 안 보는 채로 시간을 애매하게 보냈습니다. 14장 28절에 나옵니다. 이렇게 2년 동안 아버지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다윗은 압살롬에 대한 징계를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리겠지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못이기는 척하고 오게 한 다윗의 애매한 자식 사랑이요, 압살롬에게 불만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다윗은 암논 때도 그러더니, 압살롬을 돌아오게 할 때도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고 단호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가까운 자식이어서 그런지 주저주저하고 애매하고 분명하지 못했습니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 마다 항상 기도했던 다윗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상반된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전쟁보다도 아들문제는 더 심각하고 더 중요한 전쟁일 수 있는데, 다윗은 이걸 간과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이정도면 되겠지? 이렇게 하면 아들이니까 아버지의 사랑 알겠지? 이게 다 다윗의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 자식은 저와 여러분이 낳았을지라도 시편 127편 3절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분명히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 내가 맘대로 해도 되는 내 것이 아니라 내게 하나님이 잠깐 특별히 맡기신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할 것이 아니라 맡기신 분 하나님께 묻고 잘 양육하고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내게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결국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 입 맞추었던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했다는 것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과 자식들 너무 정 주지 말라고 다 도망갈 거니까 소용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접목이 되어 이런 다짐을 어제 해보게 되었습니다. 떠나갈 자식에게 정 주지 말고 눈 딱 감고 하나님께 묻고 자식에게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나님 전하자. 애매하고 인간적인 자식사랑 내려놓으시고 하나님 제대로 아는 자녀 되도록 기도하시고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이렇게 다윗의 죄와 애매한 인간적인 방법 때문에 도망자의 위치가 되었어도 잇대를 통해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도망길에서도 18절에 모든 그렛 사람, 블렛 사람 즉 블레셋 족속의 일파들뿐만 아니라 가드에서 온 즉 피난 시절에 블레셋의 가드에서 온 600명과 동행할 뿐 아니라 19절에서 23절까지 블레셋 가드 출신으로 이스라엘에 귀화한 장수, 나중에 다윗의 최고 3명의 용사 중 하나가 된 잇대를 만나게 되어 잇대가 다윗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듣게 됩니다. 21절 중간 보십쇼.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마치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피난길에 목숨을 걸고 동행하겠다는 잇대를 만났을 때 다윗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잇대라는 이름의 뜻이 “짝하다”인데 다윗의 위로의 짝이 되고자 했던 잇대, 내일 묵상할 본문 24-29절은 아비아달과 사독, 30-37절은 친구요 모사인 후새까지 동행하게 되었는데 이 모두가 물론 다윗의 인격적인 영향도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어렵고 힘든 고생길에 답답하고 혼자인 것 같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돕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에게 형 아론이 함께 했고, 바울에게 바나바와 실라가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편에 서 있으면 반드시 돕는 자를 준비하시고 결국은 승리케 하신다는 사실 기억하시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