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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말고 기뻐 하라

새벽예배 2023.01.10 | 빌립보서 1장 1-11절 | 이선기 목사




빌립보서 1장 1-11절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새벽 묵상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장경동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 웃음과 기쁨은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어보셨습니까? 이런 표현입니다. “기쁨은 웃음을 주지만 웃는다고 다 기쁜 것이 아니다.” 마음이 기쁜 사람은 너무 좋아서 웃기도 하고 심지어 너무 좋아서 울기도 하는데 웃는 사람은 다릅니다. 웃는다고 꼭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죠. 즉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도 있고, 비웃는 경우도 있고, 속에는 원한을 가지고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웃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있죠.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복음은 웃는 걸까요? 기쁜 것일까요? 복음은 기쁜 것, 기쁨의 소식입니다. 영원한 기쁨의 소식입니다. 너무 기뻐서 웃음이 생기고 너무 기뻐서 눈물도 펑펑 흘리는 기쁨의 소식 그게 복음입니다.


장경동 목사님이 TV 코미디 프로그램 폭소클럽에 출연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절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사모님이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사모님이 이렇게 목사님께 제안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기쁨을 주는 사람이지 웃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웃기는 사람 되지 마시고 그저 사람들에게 순간적인 재미를 주는 사람 되지 마시고 기쁨을 주는 사람, 영원한 기쁨을 전해주는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바울이 보낸 어려 편지 중에서 빌립보서는 “기쁨의 편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비밀을 나누어주고자 기록한 편지인 빌립보서, 이 짧은 4장으로 이루어진 편지에 기쁨이란 표현 헬라어로 카이로, 카라라고 하는데 이 표현이 무려 19번이나 나옵니다. 오늘부터 이 빌립보서를 새벽에 묵상하시면서 어느 때보다도 영적인 기쁨으로 충만한 저와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우리를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 정도가 있는데 첫 번째는 환경이고 두 번째는 사람들, 세 번째는 일들, 마지막으로는 걱정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4장에 걸쳐 이 네 가지의 우리를 기뻐하지 못하게 하는 환경, 사람들, 일들, 걱정을 다 이기고 기쁨을 회복하는 방법들을 각각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장 1-11절은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들 중에서 가장 따뜻한 정과 기쁨이 노출되어 있는 본문이며 빌립보서의 서론인데 바로 교제, 복음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를 기뻐하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이 5절이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즉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으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함으로 기쁨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온 저와 여러분 한 분도 빠짐없이 복음에서 교제함으로 기쁨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바울은 이렇게 복음에서 교제함으로 기쁨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면서 본인이 직접 이렇게 교제해야 복음에서 교제하는 것이다 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표현에서 교훈을 얻게 되는데



1. 첫 번째로 함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착한 일을 생각할 때 복음에서 교제하는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3절 보십쇼.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의 생각 속에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생각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즉 기준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6절 보십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게 누구십니까?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착한 일은 무엇입니까? 적선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게 하는 일이 착한 일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에 착한 일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노라. 빌립보 교인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들을 생각하며 기대하며 꼭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노라


서로 생각을 같이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릴 통해 이루실 것들을 생각하며 기대할 때 이게 바로 복음에서 교제하는 것이다 표현하는 바울.


여러분 바울과 실라가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비록 몸은 감옥에 갇히고 손발은 착고에 차이고 몸은 맞아서 피멍이 들었어도 착한 일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당한 고난을 함께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도 우리 때문에 채찍에 맞으셨고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손발에 못이 박히셨는데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생각을 함께 하니까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밤이 새도록 찬송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결국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게 되지 않습니까? 간수의 가족이 다 구원받는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집사람과 같은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평생을 함께 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함께 동역하는 계획을 세우니까 참 기쁘더라고요. 당신은 반주하고 난 설교하고 또 당신도 신학했으니 내가 힘들 때는 당신이 대신 설교하고,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기쁨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기쁨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에서 교제함의 기쁨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마음이 하나가 되어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 복음에서 교제하는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사랑을 표현한 적이 있을까요? 7절과 8절을 보십쇼. 먼저 7절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 마음에 있음이며, 언젠가 드라마 대사에 “내 안에 너 있다” 그런 대사가 있어서 많은 여인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는데 바울이 지금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런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즉 내가 너희를 너무너무 사랑함이며, 왜 그렇게 사랑하는가?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즉 내가 복음 전하는 모든 부분에 나와 함께 함으로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실제적으로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내가 복음 전하는 일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빌립보 교인들이여, 8절에는 바울이 가장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의 최극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보십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여기서 심장은 스플랑크나라는 헬라어를 쓰고 있는데 내장이란 뜻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 사랑으로 너희를 사모한다. 여러분 혹시 연애하는 청년 있으면 이 표현 쓰면 최고의 연애편지가 된다고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맨 뒤에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내가 얼마나 깊이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는지 이 사랑은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


바울이 왜 이런 진한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있는가? 이렇게 함께 구원받은 형제자매가 깊이 사랑할 때에 이것이 바로 복음에서의 교제이고 이것이 바로 기쁨, 영원한 기쁨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최고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다” 하는 사랑결핍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진한 깊은 사랑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서로 사모하는 하나됨의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중보기도 할 때 복음에서 교제하는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9절 보십시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즉 바울을 도와 선교 사역을 하는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이 더욱 더 적극적이고 활발해져서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중보기도입니다. 10절 보십쇼. “너희를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즉 빌립보 교회의 각종 이단 사상들에 유혹되지 않고 올바른 복음을 성도들이 가지길 바라는 중보기도입니다. 11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의의 열매가 맺히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또 다른 중보기도입니다. 이렇게 중보기도 할 때 복음에서 교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의 손이 들려지면 이기게 되고 힘들어서 손이 내려가면 전쟁에서 지게 되는 장면 기억하십니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들 때에 끝까지 아말렉과 싸워 아말렉을 진멸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중보기도의 사람이 되시므로 복음에서 교제가 이루어질 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을 회복하고 누리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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