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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회별 주관 새벽 예배

새벽예배 2022.11.26 | 시편 34편 1-10절 | 이선기 목사



시편 34편 1-10절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새벽 묵상


여러분,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어쩔 수 없이 아픈 척 해야만 했던, 피치 못하게 몸 아픈 연기를 해야만 했던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한국에서 22년 전 군대 훈련소에서 그랬던 적이 있습니다. 보통 한국 남자는 21살에 입대를 하는데 저는 늦은 나이 26살에 군 입대를 하다 보니, 원래 체육을 싫어해서도 몸이 둔했지만, 가장 팔팔한 때를 조금 지나 뒤늦게 사병으로 군입대해서 훈련소에서 안하던 훈련을 하다 보니 정말 몸이 안 따라 주더라고요. 지금도 기억나는 높은 3단 철봉, 제 키보다 두 배나 높은 철봉에 매달려 한 바퀴 돌아 체조선수처럼 내려오는 것은 정말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조교님! 어지럽습니다. 했더니 욕을 얼마나 하던지..그래서 2단 철봉에서 3단으로 뛰어오르기 직전에 하나님께 특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여기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뛰어 오르다 떨어지면 너무 빨리 하나님 앞에 가는 것 아닙니까? 살려 주시옵소서” 잠시 눈물로 기도하는데,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철봉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전심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호루라기가 불었습니다. 교육 끝!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또 한 번은 어느 날 너무 뜨거운 날씨에 정말 쓰러지기 직전이었습니다. 집합 휫슬이 불어 완전군장을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머리가 정말 어지럽더라고요. 쓰러질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일부러 딱 한번만 쓰러지자 했더니 정말 제가 봐도 쓰러지는 연기를 잘 했고 다행히 제 옆에 누가 봐도 거짓말 못할 것 같이 착하게 생긴 동기가 “189번 훈련병 쓰러졌습니다. 이 형 혈압 있습니다.”했더니 잘 보고가 되어 딱 30분간 의무실에서 잠깐 쉬었던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오늘 시편 34편이 바로 다윗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몸이 아픈 척 함으로 생명을 부지하게 된 직후 지은 시편입니다. 오늘 시편 34편 1절 앞에 써 있는 설명을 보십쇼.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다윗은 사울의 창칼을 피해 제사장들의 성읍인 놉에서 약 40km 떨어진 이방 땅 블레셋의 한 성읍 가드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블레셋의 “가드” 들어보지 않으셨습니까? 사무엘상 17장 4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드는 바로 다윗이 물맷돌을 던져 때려눕히고 죽인 블레셋 최고의 육척장수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가드 사람이 볼 때는 민족의 원수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고향이 나은 아들 최고의 군사 골리앗을 죽였으니 원수 중의 원수가 바로 다윗인데 다윗이 지금 가드로 왔다고 하니 이건 운명의 장난일 수 밖에 없고 가드사람에게는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다윗은 딱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음을 깨닫고 미친 사람 연기를 하게 됩니다. 침을 질질 수염에 흘리며 제정신이 아닌 말을 수도 없이 내뱉고 이상행동을 해야만 했던 다윗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 상황입니까? 당시의 왕 아비멜렉인 아기스는 다윗을 멀리 내쫓으라고 명합니다. 한편 사울의 군대는 다윗이 적진 블레셋으로 도망친 줄 알게 되고 철수를 하게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에서 나와 아둘람굴로 가서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가족,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합류를 하게 됩니다.

다윗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참한 상황,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을 겪으면서도 순발력을 발휘하는 지혜를 주시고 적진에서도 살아남도록 블레셋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34편을 아름다운 아크로스틱, 즉 답관체의 형식으로 지어 노래하게 됩니다. 아크로스틱, 즉 답관체는 무엇인가? 바로 히브리어 알파벳 22자를 첫 글자로 해서 지은 시를 의미합니다. 지난주에 추수감사절 14행시 지으신 것과 비슷한 방법이라고 할까요? 다윗이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도록 지은 시편 34편, 이 시편 34편은 후에 많은 신앙인들에게 애송이 되어 왔으며, 제롬에 의하면 특히 초대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성만찬을 할 때에 이 시편 34편을 많이 사용했다고 전해져 옵니다. 로마 정부가 기독교를 탄압할 때에 많은 경건한 이들이 이 시편 34편을 깊이 묵상하면서 순교자의 길을 담대히 걸어갈 수 있었다고도 전해집니다.

저와 여러분도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동안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저와 여러분을 구해 주시고 도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시면서 나만 기억하고 좋아하시지 말고 시와 노래로 지어 찬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후배들에게 열심히 간증하며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순교는 아니더라도 죽을 것 같은 어려움의 순간이 찾아올 때에 이 시편 34편으로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극한 어려움에서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보호하심을 받았기에 다윗은 마음껏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며 찬양하게 되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1. 첫 번째로 다윗이 갑자기 잠깐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호와를 찬양하였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항상”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티미드”라고 하는데 계속적으로 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대로 계속 그렇게 할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바로 타미드입니다. 예전에도 여호와를 송축해 왔던 다윗이 지금도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을 송축할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늘 찬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확실한 증거는 왕이 되어서도 항상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았던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평상시가 중요합니다.

다니엘은 동쪽 창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항상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굶주린 사자들 가득한 굴 속에 들어가서도 털끝하나 상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벼락치기 하지 말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성실한 하나님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일 있을 때만 뭔가 부족해 져야만 뭔가 문제가 생겨야만 주 앞에 오지 마시고 항상 오시길 바랍니다.

제가 한국 떠난 지 13년 정도 되었는데 한국에서 하던 잊을 수 없는 기도회가 있습니다. 거의 목숨 걸고 하는 기도회 고 3 수험생 학부모 기도회 바로 지난 주에 11월 16일 즈음 전까지 각 교회마다 있는 고3 수험생 학부모 기도회는 얼마나 뜨거운지.. 죄송하지만 그동안은 기도생활 잘 안하셨던 분들도 자녀가 대학가는 문제로 너도 나도 와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시는지.. 제가 이제 한국 떠난 지 오래 되었으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건 너무 벼락치기 기도입니다. 제가 하나님이면 정말 그렇게 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네 자녀가 준비한 만큼 결과는 나오리라! 안타깝지만 시험 11월 16일쯤 시험 끝나면 그동안 그렇게 뜨거웠던 학부모님들이 이제는 기도 다했다 하시고 갑자기 확 안 나오십니다. 여러분 과연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그래도 안 나오는 것보다는 낫다. 기도 아예 안하는 부모보다는 낫구나 하실까요.

우리 신앙생활도 너무 벼락치기, 너무 몰아서 하는 급할 때만 뜨거워지는 필요할 때 필요한 것만 자판기 누르는 것 같은 신앙생활 기도생활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항상 찬송하고 항상 말씀 묵상하는 1년 내내 고3 수험생 학부모처럼 절실하고 열심인 저와 여러분들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다윗은 여호와를 자랑하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자랑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절 보십시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뒤에 4절부터 7절까지가 여호와를 자랑하는 내용인데 중요한 것은 다시 2절 뒷 문장입니다.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다윗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 다윗에게 모여들었던 모든 곤고한 자들이 다 함께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호와를 자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이었으면 이렇게 곤고한 자들이 듣고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건 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생각하셔서 가드 사람들의 눈에 내가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인 것이지. 바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이렇게 된 거야.”라고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떨떠름한 억지 기쁨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다윗의 일대기를 보면 두 가지 상반된 하나님 자랑의 모습이 비교되어 나타납니다. 우선 사무엘하 6장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이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어 하나님의 언약궤를 맞이하는 다윗, 이 다윗의 하나님의 언약궤를 맞이하는 기쁨이 얼마나 하나님을 자랑하는 일이었는지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반면 사무엘하 24장에서 다윗이 인구 조사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9달 스무날 만에 조사하여 다윗은 그 많은 군사 때문에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나님 자랑이 아니라 자기자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7만명이 전염병으로 죽게 되죠. 사무엘하 24장 어디에도 온 백성이 함께 기뻐했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은 모든 백성이 함께 기뻐하는, 특히 곤고한 백성이 함께 기뻐하는 기쁨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되 혹시라도 그 일이 내 자랑이 되지 않도록 선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시면서 내가 아닌 철저히 하나님만 자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다윗은 함께 완전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높였다는 사실입니다. 3절 보십시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다윗은 6절에서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하면서 자신도 2절 끝에 곤고한 자들의 기쁨 속에 자기도 포함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4절만 보면 내가 여호와께...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하고 자신만의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만 다시 5절에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하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앙망이요,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6절 7절에 다시 단수로서 자기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 같지만 8절과 9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9절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하고 다시 복수로 이 기쁨은 우리 모두 함께 하는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지막 10절도 끝에 역시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이시로다.

함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경외하고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여호와를 찾는 자가 될 때에 부족함이 없게 채워주시는 하나님.

여러분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들을 다 함께 40년을 돌고 돌아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대표로 몇 명만 뽑아서 돌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군사들이 다 함께 하루에 한 바퀴씩 돌게 하셨고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뿔 때에는 모든 백성이 다 큰소리로 함께 크게 외쳐 부르게 하셨습니다. 모두 다 함께 함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그 강력한 여리고성이 종이장처럼 무너짐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들 중에 있느니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함께 함으로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함으로 함께 감사함으로 추수감사의 기쁨이 계속되시고 구원받은 기쁨이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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