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새벽에 주시는 이슬같은 은혜

새벽예배 2023.05.19 | 사무엘하 19장 16-30절 | 구진모 목사




사무엘하 19장 16-30절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새벽 묵상


다윗을 계속 공부하면서 다윗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손길을 보면서, 도데체 다윗의 어떤 점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가만히 다윗을 보면 언제나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 또 때를 기다리는 인내, 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모습,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다윗에게는 남을 용서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아들 압살롬에 의해서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승자가 되어서 돌아 올 때입니다.



어제 묵상한 마지막 말씀에 보면, 삼하 19:15절입니다.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왕위에서 쫓겨나 피난 갈 때와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쫓겨 날 때는 맨 발로 울며 피난 갔습니다.


그 때에는 몇몇 충신들 외에는 아무도 환송하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 이제 다시 왕이 되어서 승자로 돌아오니까 사람들이 환영하러 나왔습니다. 그랬을 때 그를 맞으러 나온 사람들 가운데는 다윗이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습니다.



이 시므이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무엘하 16:5-6절을 보십시오. “다윗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시므이가 피를 흐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시므이는 원래 사울 왕가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이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 갈 때 나와서 그를 저주했습니다. 그는 이제 다윗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마음껏 저주를 했습니다.



그랬는데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다윗이 다시 왕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본문 16-17절에 보면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왕을 맞으러 내려 올 때에 /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이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다윗왕 앞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9-20절에 보면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21절에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 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이 아비새의 말은 그 당시로는 당연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 하였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말에 다윗이 무어라고 합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다윗은 오히려 아비새를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이에게 아량을 베풀어서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용서해 주어도 완전히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용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겁니다. 다윗이 그런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에 들어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용서를 베풀 수 있었을까요? 또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용서를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다윗은 자기도 죄인인 것을 늘 기억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 전에 시므이에게 저주를 받을 때 한 말에서 잘 나타납니다. 시므이가 자기에게 저주할 때에 다윗은 말했습니다.



사무엘하 16:10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그랬습니다.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시므이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뜻은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자기를 깨우쳐 주시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는 겁니다. 



무엇을 깨우쳐 주는 겁니까? 자기도 한 때 그런 저주를 받을 만한 죄인이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미워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를 원망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런 마음이 이번에는 승자가 되어서 돌아 올 때에도 작용했다는 겁니다. 전에는 자기를 저주하다가 다시 왕이 되어 돌아오는 자기에게 나아와서 용서를 비는 시므이를 볼 때, 자기도 한 때 그처럼 죄를 지었다가 용서 받은 자인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므이를 그렇게 용서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자기도 용서받은 자인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용서해 줄줄 압니다.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그 사람과 같이 죄인이었다가 용서받은 자인 것을 기억한다면, 남을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하기 힘들 때에 먼저 내가 용서받은 자인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다윗은 자기가 승자라는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 중반부 부터 다시 보십시오.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이 말은 내가 오늘 승자가 되었는데 어찌 보복적으로 사람을 죽이겠느냐는 말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는 법입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승리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그런 자신감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다윗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도 승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처음에는 우리들도 다윗처럼 죄를 지어 하나님께로부터 쫓겨 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떳떳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비록 과거에 죄지은 사람이지만 의인으로서 당당한 삶을 살게 된 겁니다. 이제 우리를 그 누구도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롬 8:34절에 “누가 우리를 정죄 하리요”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냐 칼이랴”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대적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믿고, 어떤 상황에서 항상 담대하기를 바랍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