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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를 쏙 빼 닮았구나. 큰 복을 주리라

새벽예배 2022.09.12 | 창세기 22장 15-24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22장 15-24절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자녀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신기하고 절로 미소가 나왔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저는 처음으로 태어난 제 첫째 딸이 엄마 젖을 빨아먹던 순간마다 그랬습니다. 특별히 엄마 젖을 빨면서 안간힘을 쓰며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것을 볼 때마다 참 신기했습니다. 집사람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여보 얘 어떡하지? 당신 닮아서 땀이 많으면 안 되는데 나중에 아가씨 되어 얼굴에 화장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땀이 많으면 어떻게 하니? 집사람은 진짜 걱정스러워서 했던 말인데 저는 왜 그렇게 흐뭇한지.. 넌 내 딸이 맞구나. 아빠의 땀 많은 것 그대로 닮았구나. 땀 많아서 어떤 놈이 안 데려가면 그냥 아빠랑 살면 되지.. 그게 제 속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성경에 나온 하나님이 하신 말씀 중에 가장 하나님이 흐뭇해서 하신 표현,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가장 흥분해서 하신 표현이 등장합니다. 제가 제 큰 딸을 보면서 신기하고 절로 미소가 나온 것하고 똑같이 하나님이 하나님을 닮은 아브라함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미소를 지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어디 있습니까? 16절과 17절이 바로 그 표현입니다.

같이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우선 16절에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히브리어로 “너훔 야훼”인데 이 표현은 예언자 선지자들만이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의 권세를 대신하는 이들만 쓰는 표현으로 모세오경에는 두 번만 나온 표현입니다. 오늘 창세기 22장 16절과 민수기 14장 28절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권세, 즉 가장 크신 분의 권위를 가지고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이 권위를 가지고 말하노니, 그 다음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러분 우리 인간은 어떻게 맹세합니까? 법정에서 법전을 놓고 맹세하기도 하고, 성경을 놓고 맹세하기도 하고 혹은 인간이기에 하나님께 맹세하기도 하는데, 즉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향해 맹세하는데 하나님은 누구에게 맹세해야 합니까? 하나님보다 가장 큰 존재가 있습니까? 없죠. 그래서 여기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맹세하고 계십니다. 아니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기에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맹세하고 말씀하시는가? 16절의 마지막 문장은 넘어가고 그 다음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여러분 이 문장은 성경에서 딱 한번 나오는 표현입니다. “바레크 아바레카” 히브리어 바락은 복이란 단어인데 그래서 전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인데 그 버락이 바로 복이란 뜻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바레크 아바레카는 바락이란 단어의 반복으로 가장 큰 복, 그 이상의 복이 없는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복,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이 바로 바레크 아바레카입니다. 얼마나 기쁘시고 좋으셨으면 그 이상의 복이 없는 가장 큰 복을 주신다고 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많이 아는 표현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자손을 번성케 하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오신 모든 분들이 이 16절과 17절의 복을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영상으로 말씀 듣고 예배하시는 분들도 한 분도 빠짐없이 이런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스스로 맹세하여 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복,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을 주신다고 하신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 16절 맨 뒷문장이죠.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즉 아들을 아끼지 않고 드리려고 했기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들을 아끼지 않고 드리려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하나님과 닮은 행동의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기에 복을 주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복을 누리시되 하나님을 꼭 닮으셔서 하나님께서 “너는 나를 쏙 빼 닮았구나. 큰 복을 주리라” 하시는 음성을 들으시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이 땅에 아브라함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 아들을 아끼지 않고 드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일까요?

1. 첫째로 나 자신을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어제 본문이지만 창세기 22장 1절 보십쇼.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기 “그 일 후에”는 무슨 일 후에 일까요? 창세기 21장에 그랄 왕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후에 입니다. 여러분 그랄 왕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언약을 맺었습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하고 그랄왕 아비멜렉이 첩으로 삼으려고 했다가 그 밤에 하나님이 막으셔서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을 보고 맹세를 요청하며 신뢰관계를 쌓게 됩니다. 또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을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우물 판 증거로 삼습니다. 우물이 아브라함의 것이다. 즉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즉 자신은 실수투성이 이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고 만방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심을 체험한 그 일 후에 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일을 겪은 후에 너무 좋은데 하나님이 부르시니 대답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11절에도 하나님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순간은 무슨 순간입니까?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제단 위에 누운 이삭을 죽이려는 그 순간에 아마도 아브라함의 눈에 큰 눈물이 펑펑 흘러내리는 그 순간에 급하게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대답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일을 겪을 때 행복한 순간에도 교만하지 않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하나님께 보였고, 아들을 죽여서 바쳐야 하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원망없이 불평없이 그대로 자신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그대로 하나님께 솔직하게 자신을 내어 보이는 사람, 겸손히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내어놓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요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심지어 아들까지 아낌없이 바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이 찾으실 때에 했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 여러분 숨으면 하나님이 못 찾으십니까? 어디 숨었는지 다 아시는 하나님이신데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니까 숨어버리고 하나님과 멀어져 버린 아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아담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과의 거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혹시 다른 것 때문에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권력 때문에 다른 것이 좋아서 하나님과 멀어져 있습니까?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다른 것이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하말티아 그게 죄입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오시고 다 아뢰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55장 6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평상시에 항상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평상시에 항상 예배자의 삶을 살았던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들 이삭이 인정하는 예배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신앙의 본 모습은 자녀들에게 물어보면 정확합니다. 7절에 이삭이 아브라함에 묻는 질문을 보십쇼.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이 질문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항상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들이 제사드릴 때 필요한 것을 다 알 정도로 늘 예배자의 삶을 살았던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9절 10절에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나무 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해서 나무위에 올려놓고 칼로 잡으려 했을 때, 여러분 이 아들이 지금 몇 살입니까? 팔팔한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습니다. 110세 이상인 할아버지가 강합니까? 10대 20대가 강합니까? 당연히 10대 20대가 강하죠. 분명히 이삭이 아버지를 꺽고, 아버지가 대신 누우시죠. 하고 노인이 된 힘없는 아버지를 묶고 살해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은 순순히 결박되고 아버지의 행동을 받아들입니다. 얼마나 아버지를 신뢰했으면 이럴 수 있을까?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평상시에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예배자의 삶을 살았기에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한국교회의 아픔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삶이 다음 세대에게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심각합니다. 어디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부모님의 신앙생활에 오류를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에서의 모습과 세상에 나가서의 모습이 다른 것을 보고 부모님의 신앙생활을 믿지 못하는 자녀들이 많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나 하는 것보다, 내 자녀가 과연 나를 참 그리스도인으로 보고 있는가? 이걸 철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녀 앞에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 그게 참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저는 나중에 제 두 딸이 “아빠는 교회에서만 목사님이지, 집에서는 영- 아니야” 이러면 어쩌나? 고민이 많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그리스도인으로 보여지면 어쩌나? 여러분, 아낌없이 드리는 예배자는 주일 아침 시간만 드리는 예배자가 아니라, 내 삶 전체, 일주일 매 시간시간, 매 분마다. 매 초마다 모든 삶을 예배자로 살아서 삶 전체가 온전한 예배자인 사람, 내 자녀에게도 예배자로 인정받는 사람이 참 예배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그대로 하나님께 보일 수 있는 감출 것이 없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였기에, 그리고 항상 예배자의 삶을 살았던 예배자 아브라함이었기에 아들 이삭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말씀하신 대로 명하신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아브라함은 드리려고만 했는데도 그 이상이 없는 가장 큰 복을 누리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정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실제로 저와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나오시고 다 아뢰시며 기도하시고 또한 교회에서 뿐 아니라 어디서든지 항상 예배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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