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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축복이 아닙니다.

새벽예배 2022.09.27 | 창세기 28장 10-22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28장 10-22절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야곱의 축복이란 찬양을 아십니까? 예전까지는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이란 가사의 곡이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축복송이었는데 한 20년 전부터는 새로운 축복송이 등장하고 지금까지도 때로는 너의 앞에 보다 더 많이 불려지는 곡이 되었습니다. 김인식씨가 작곡가인데요. 가사가 이렇습니다.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가지의 푸른 열매처럼/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가득히 넘쳐날 거야/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언제나 함께 하시니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네 길을 축복할 거야 너는 하나님의 선물 사랑스런 하나님의 열매 주의 품에 꽃피운 나무가 되어줘. 아멘입니까? 제목이 야곱의 축복이라서 야곱이 받은 축복의 말씀인가보다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데 야곱이 받은 축복이 아니라 야곱이 했던 축복 즉 야곱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그토록 사랑했던 요셉에게 축복했던 예언의 말씀 창세기 49장 22절을 배경으로 지은 찬양이 바로 ”야곱의 축복“이란 찬양입니다. 저는 이 야곱의 축복을 부를 때마다 제 첫째 딸 태어날 때가 떠오릅니다. 첫째 딸아이를 출산할 때 경기도 안양에 샘 병원 가족분만실에서 출산했는데, 저도 같이 들어간 분만실, 가족 분만실에서 아이를 출산할 때에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바로 이 야곱의 축복이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 아름다운 하나님의 아 ~,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아 ~ 여러분 이게 보통 상황입니까? 첫 아이를 낳으면서 집사람은 그 아픈 와중에 우리 남편 마음이 약하니까 탯줄 그냥 선생님이 잘라 주세요. 부탁하고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눈물도 나고 신비롭기도 하고 너무 좋아 웃기도 하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상황이 생생합니다. 아 다른 게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귀한 생명 주시는 것이 축복이구나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과연 12아들들을 축복할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창세기 49장 25절과 26절을 보면 야곱이 축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요셉을 축복하면서 전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요약하면 뭡니까?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선조로부터 아버지까지 대대로 내려오는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그런 물질의 복, 명예와 권세를 얻게 되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의 근원되시고 하나님의 복이 믿음의 선조들을 통해서 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많이 가진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불행도 아픔도 고통도 복이 되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돈도 명예도 권력도 기쁨도 아무 축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소유의 풍성함은 옵션이고 진짜 메인 복은 바로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야곱은 창세기 49장에 마지막 유언으로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바로 오늘 본문 창세기 28장의 벧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이 순간을 떠올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10절 야곱은 홀로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면서 그 800km 이상 되는 거리를 가다가 해는 지고 잘 곳이 없어서 그냥 아무 돌이든지 베게삼아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12절 꿈에 보니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있고 하늘에 닿았는데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 13절에 여호와께서 위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13절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아까 창세기 49장에 요셉에게 주신 축복하고 비교해 보십시오. 똑같습니다.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야곱은 분명히 열두 자녀들에게 유언하고 축복기도 하면서 이 벧엘,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자신을 처음으로 만나주신 하나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내가 처음 벧엘에서 하나님을 꿈속에서 만나 사닥다리로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체험한 그 하나님이, 아버지의 하나님, 할아버지의 하나님이 너희들도 끝까지 지키시고 복주시리라. 하는 마음 간절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제일 먼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세상과 다르게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바로 1. 하나님과의 만남이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만난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체험한 하나님에 대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야곱은 직접적으로 본인이 하나님을 체험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하나님을 꿈속에서 만나게 되는데 지금 이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냥 지나가는 길가였습니다. 제대로 된 잠자리가 아니라 그냥 조금 큰 돌 하나 갔다가 놓고 덮는 이불도 없이 그냥 피곤해 쓰러져 자는 곳, 외롭고, 무섭고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그 삭막하고 황량한 길가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 교회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가 맞습니다. 그런데 교회만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아닙니다. 길가도, 여러분의 직장도, 집에서 설거지 하는 주방도, 어린아이 돌보는 그 곳도 어디든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소부재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기드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 타작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멀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는 이 자리에도 하나님이 여러분과 만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 바로 축복의 장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야곱에게 하나님과의 만남이 더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지금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소원해서 만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갑자기 야곱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원해서 만나는 것은 그냥 종교생활입니다.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어떤 형상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면 산속 깊은 곳에 가서 만나는 어떤 형상이나 물체가 아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먼저 존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고,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찾아오신 분이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서 잘 살게 하셨는데 자유를 주었더니 불순종하여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죄성을 가진 인간, 가능성이 없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 다시 먼저 찾아오셨는데 이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또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 이걸 Prevenient Grace 선재적 은총 이라고 합니다. 먼저 지으셨고 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 그 분이 원하신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빈번하게 만나시고 늘 우리와 함께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과의 만남의 축복을 놓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네 가지 축복, 사복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야곱을 사랑하시는지 잘 표현된 구절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잠시 사는 동안 이런 복을 사모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가나안 땅의 축복입니다. 약속의 땅을 주시는 축복,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지금 이 땅이 아니라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 가나안땅을 사모하며 살고 계십니까? 두 번째 14절입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자손들이 동서남북 사방 곳곳에 두루두루 퍼져나가는 자손 편만의 복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100살이 돼서야 얻은 이삭을 통해서 그 아들 야곱을 통해서 12지파를 통해서 전국 곳곳으로 자손들이 퍼져나가는 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자녀들이 믿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이 곳곳에 전해지는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다시 14절입니다. 맨 끝 문장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네 자손은 히브리어로 “우버자레카”인데 네 씨로 말미암아 로도 번역됩니다. 신기한 것은 단수형입니다. 그러니까 네 자손, 네 씨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입니다. 네 한 명의 자손 네 씨가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 한 분으로 인하여 온 자손들이 복을 받으리라 구원을 받게 된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아멘입니까? 네 번째는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1인칭과 2인칭을 긴밀하게 쓰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야곱과 가깝기를 원하시는지 그리고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인지 약속하시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참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네 가지 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눈에 보이는 소유에 대한 복은 복의 차원에도 들지를 않습니다. 만물을 지으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신데 겨우 물질 주시는 것이 축복이겠습니까? 진짜 복 진짜 축복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약속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또한 축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 야곱의 꿈에 찾아오셔서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하나님의 네 가지 축복을 다 알려주시고 보여주셨는데 야곱은 얼마나 감동했겠습니까? 야곱은 너무 감격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16절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18절 19절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벧엘, 하나님의 집이다 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나서 20절 이후에 하나님께 서원을 하죠. 21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즉 여호와만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약속입니다. 22절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즉 벧엘을 거룩한 성소로 삼겠다는 약속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22절 뒷부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것도 아닌 야곱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여기를 하나님의 성소가 되게 하겠습니다. 내 것 중에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가 아빠에게 종이로 돈을 만들어서 자기가 쓸 수 있는 숫자 0자를 셀 수 있을 만큼만 써서 아빠의 생일날 내어밉니다. 아빠 생일 선물, 아이는 그렇게 쓰면 그게 진짜 큰 돈인 줄 알고 최고의 것으로 아빠에게 드릴 때에 아빠는 아무 것도 아닌 줄 알면서도 기뻐하죠. 우와 이렇게나 많이..너무 고마워 눈물나게 고마워. 하나님도 이 야곱의 서원을 들으면서 그러셨을 것입니다. 너무 고맙구나 눈물나게 고맙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게 바로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죄많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드린다고 해서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드리는 마음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해 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께서 가장 큰 축복을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는데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독생자 주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살려주셨습니다. 영생을 주셨고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이 말하는 그런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축복에 집중하면서 감사하면서 감격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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