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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승리하는 자

새벽예배 2023.01.17 | 빌립보서 3장 10-21절 | 이선기 목사




빌립보서 3장 10-21절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새벽 묵상

여러분 인생이 무엇입니까? 삶은 무엇입니까? 빌게이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 이 말에 아멘하시고 공평하지 않은 인생을 계속 원망하며 살아가실 것입니까? 앨버트 허버트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지긋지긋한 일의 반복이다” 그저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다. 어제도 똑같았다. 하며 반복적인 삶이라고 한탄하고 지긋지긋하다 불평하면서 계속 살아가실 것입니까? 하먼 멜빌은 “인생은 집을 향한 여행이다” 라고 했는데 우리의 집, 영원한 집, 돌아갈 내 고향을 바라보고 준비하면서 이 여행길을 후회 없이 살아가시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인생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바울은 믿는 자의 인생을 여러 편지들을 통해서 몇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하면서 믿는 자의 삶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의 사는 것이다. 군인처럼 사는 것이라고 했고 혹은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면서 건축가와 건축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면서 농부와 그 열매로 즉 하나님은 농부시고 우리는 열매 맺는 나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바울이 표현하는 우리의 인생에 대한 표현, 우리는 운동경기 하는 선수다. 즉 인생은 경주다 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빌립보서 3장의 이 운동경기가 정확하게 뭘까?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이 말한 이 운동경기는 전차경주가 확실하다. 13절 보십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즉 말을 타고 달리면서 목표점의 깃발을 먼저 잡는 전차경주가 맞을 것이다. 14절 보십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전차경주이건 달리기이건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경주가 끝날 때에 마지막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급인가? 20절 보십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즉 하늘나라. 부활의 나라에 시민권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상급입니까? 21절 그토록 기다리는 구원하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자에게 21절 맨 뒤에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즉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몸, 주님의 영광의 몸처럼 변하게 하실 그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을 믿고 준비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부활의 나라에서 맨 뒤에서 2등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맨 뒤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지실 때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 한 명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옵소서”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주님께 부탁하여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대로 그래서 겨우 구원받은 강도가 분명히 마지막 턱걸이로 부활의 나라 맨 뒤에 있을 것이고, 그 사람보다 한 칸만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목사로 살았다고 하는데 겨우 구원받았구나...쯧쯧 이러면 얼마나 면목이 없겠습니까? 소망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가능하시면 맨 뒤쪽이 아니라 메달권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믿음의 아버지들은 아니어도, 베드로를 비롯한 순교한 주님의 제자들의 위치는 아니더라도 그 다음 정도 동메달 정도 딸 수 있는 영광의 주역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비록 감옥에서 이 빌립보서를 썼지만 승리자가 될 감격과 소망을 가졌기에 낙담할 수 없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가 기쁨의 편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감옥과 같을지라도 기쁨의 편지, 간증의 빌립보서를 쓰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바울이 바라는 경주의 승리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1. 첫째로 만족하지 않는 자가 경주에서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13절을 보십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지금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안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게 최고의 만족을 주신 주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자족하게 되었기에 어제 말씀드린 대로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저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과 일맥상통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만족합니다. 하고 고백은 해야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최종 목표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열왕기하 13장에 보면 엘리사가 죽기 전에 영적인 지도자를 잃어버리게 되어 눈물 흘리는 요아스왕에게 말합니다.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동쪽 창을 여소서 그리고 화살을 쏘소서 땅을 치소서” 했더니 요아스왕이 딱 세 번만 치고 그칩니다. 엘리사는 요아스왕에게 한탄합니다. 왕이여 이왕 치려면 대 여섯 번은 쳐야지 세 번이 뭡니까? 결국 왕은 세 번 만 승리하리이다. 요아스왕의 열정 없음을 지적하고 숨을 거둡니다. 이 엘리사의 예언대로 정말 요아스왕은 세 번만 아람을 치게 되죠. 여러분 믿음의 경주는 전력질주 하는 것입니다. 그저 쉬엄쉬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벌써 20년이 넘었는데도 2002년 월드컵 거스 히딩크의 명언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결국 그의 승리를 향한 열정이 대한민국을 월드컵 4강의 위치에 올려놓지 않았습니까? 월드컵을 위해서도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열정을 가지고 뛰는데 여러분 혹시 열정을 잃어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요한계시록 초반에 소아시아에 일곱 교회 중에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하고 책망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어딘가요? 예 라오디게아 교회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열정을 잃어버린데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약성경 원문 헬라어를 배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단어가 있습니다. “엔뚜지아스모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영어 단어 "Enthusiasm"이 된 거죠. “엔”은 in ~ 안에, “뚜”는 “떼오스”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 있는 자, 하나님 안에 있는 자가 바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열정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즉 열심히 모이셔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힘빠진 사람처럼 조는 사람처럼 찬송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열정적으로 찬송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내 기도를 들으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찌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기도할 수 있습니까? 열정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 열정적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정말 죽어가는 영혼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잃어버린 분 있습니까? 다시 불타오르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오직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경주에서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14절 보십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 42절에 일을 안 도와주고 말씀만 듣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비난하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다”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먹는 것 장사하시는 분들 중에 성공한 분들이 말하는 노하우의 공통점이 뭡니까? 맛있는 것 한 가지로 승부하라. 이것저것 하지 말고 딱 한 가지에 집중하라는 권면입니다. 심리학자 에릭슨의 “일만 시간의 법칙” 들어보셨습니까? 아마추어는 10년간 5천시간을 쓰는데 프로는 10년간 1만시간의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는 1년에 연습시간이 1700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5시간씩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훈련했더니 피겨의 여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 발견하셨습니까? 그 달란트에 집중하면서 하나님 한분 바라보고 뛰시길 바랍니다. 어제 이 14절을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는데 한국에서 했던 예비군 훈련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 약 7년 정도 예비군 훈련을 하게 되는데 군대에서 그렇게 열정적이고 열심히 했던 사람이 예비군복을 입으면 건들건들 아무데서나 소변보고 정말 가관입니다. 그렇게 엉망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건들건들하던 예비군이 딱 한마디 외침에 저마다 죽어라고 한 곳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뭘까요? 예 식사하십쇼. 하면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식당을 향해 달려갑니다. 저와 여러분이 혹시 예비군처럼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저 먹는 것, 육체적인 것 본능적인 데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살아있는 경주자로 중요한 푯대에 집중하시면서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방향을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13절 뒷부분 보십쇼. “오직 한 일 즉 뒤에 잊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즉 방향을 뒤로 하지 말라. 뒤를 돌아보지 말라. 앞만 향해 달려가라. 눈을 가려서 옆을 보지 못하게 한 경주마처럼 앞만 향해 달려가라. 방향을 분명히 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앞에 계신 주님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옆을 보다가 바다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상 13장에 보면 선지자가 여로보암이 벧엘에서 분향하는 것을 보고 지적은 잘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왔던 길로 돌아가지도 않음을 실천하다가 결국 벧엘의 한 늙은 선지자의 유혹에 넘어가 죽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패망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 인생의 방향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나도 모르겠다 하지 마시고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 인생의 방향은 위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은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 자리에 계신 분들 한분도 빠짐없이 우리 인생 경주에서 다 승리하셔서 영광의 얼굴로 다시 만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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