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1.30 | 사무엘상 4장 12-22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4장 12-22절
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9.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새벽 묵상
여러분 혹시 촉법소년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범할 촉 자에 법 법 자를 써서 법을 범한 소년이란 뜻입니다. 범행 당시 형사책임연령인 만 14세가 되지 아니한 소년범으로, 대한민국 소년법에서는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촉법소년의 행동으로 실제 일어난 끔직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2015년 10월 8일,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서홍마을 한일 아파트 104동 5-6라인 옥상에서 초등학생들이 벽돌을 떨어뜨려 길고양이의 집을 짓고 있던 55세 여인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그 아들은 두개골이 함몰되는 상해를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벽돌을 던진 소년은 결국 자백하면서 '중력실험을 하려고 던졌다' 혹은 '놀래키려고 던졌다', '벽돌이 어떻게 깨지는지 궁금해서 그랬다', 하는 자백을 했는데요. 이런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작년에 공개된 드라마가 바로 “소년 심판”이라는 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에 보면 주인공 판사 역할을 했던 김혜수 씨가 벽돌을 던져 죄없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아이들이 촉법소년으로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지 않고 성장하여 결국 더 큰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하는 것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법이 과연 제 역할을 하는가? 촉법소년이라고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하는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이런 약점 때문에 한국에서는 촉법소년의 나이를 더 낮추어야 한다.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죠.
여러분 성경에서도 이렇게 자녀에 대한 약한 체벌이 결국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하는 슬픈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 오늘 본문 읽으시면서 알아차리셨겠지만 바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냥 오늘 본문만 보면 아니 어제 본문인 4장 앞부분 까지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억울하게 블레셋에 패한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블레셋과 전투를 벌여 4000명 정도를 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지고 와서 홉니와 비느하스와 함께 전쟁터에 가지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장로들과 군사들의 예상과 달리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겨 버리고 이스라엘 군사들은 삼만명이나 전사하고 말았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게 된 전쟁의 결과는 참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우리가 우선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가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물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일 뿐이지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쟁에 대해 하나님께 겸손히 물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의 언약궤만 가지고 가면 승리할 줄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인데,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인가가 더 중요했는데 이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이방신들과 똑같이 어떤 보이는 형체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우둔했던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모습. 광야에서 불순종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사 물게 하시는 하나님, 백성들이 회개하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대에 뱀을 달아라 하시면서 장대에 달린 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 하셨습니다. 정말 장대에 달린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장대에 달린 뱀 자체에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히스기야 왕 때에 이르러서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히스기야는 우상을 제거하면서 장대에 달린 뱀 리워야단을 다 태워 느후스단 쓸데없는 놋조각으로 없애버립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또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궤만 가지고 나가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에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줄 제사장이 등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선지자요 사사요 제사장이었던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러 사람들이 실로에 왔을 때에 왜 말리지 않았을까요? 15절을 보니까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러니까 실제 엘리 제사장이 육체적으로 100세에 가까운 때라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고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는 무시하고 찾아온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그냥 무조건 출전했겠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는지 왜 하나님의 언약궤가 빼앗길 수밖에 없었는지 왜 엘리 집안이 다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깨닫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에 사무엘상 2장 12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엘리와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제사장의 아들들이, 가장 하나님에 대해 분명히 알고 백성들을 영적으로 인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에 언약궤는 빼앗기고 군사들은 패망하고 제사장의 가족도 전부 몰살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나서 아이성을 쳐들어 간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견고하고 강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은 하나님의 능력,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루에 한 바퀴씩 성을 돌고 마지막 날 7바퀴 돌고 소리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니까 그 견고한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어도 금방 잊어버린 까마귀 같은 백성들 아이성 쳐들어 갈 때는 교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그냥 쳐들어가서 어이없이 패배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제대로 전해주는 선배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전쟁이 힘이 강한 사람, 권력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 같아도, 그 위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저와 여러분은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좀 더 넓게 보는 눈, 세상에 전쟁 그 위에 영적 전쟁의 승리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칼과 창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역사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엘리가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하나님은 홉니와 비느하스를 치시고 결국 엘리도 둘째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도 죽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8절 보십쇼.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19절 보십쇼.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절 죽어갈 때에” 여러분 얼마나 무서운 결과입니까? 이 가정파탄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아들들을 지나치게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장 29절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예언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즉 홉니와 비느하스 두 아들의 결정적인 죄에 대한 책망입니다.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먼저 손을 대어 가장 좋은 것을 갈취하는 일, 하나님의 성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강제로 동침하는 일, 이 아들들이 이런 엄청난 죄를 저지르는데도 왜 책망하지 않고 벌주지 않았느냐?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들이라고 해도 죄를 지었을 때에 정확하게 체벌하지 않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책망을 들었는데도 이런 엄청난 꾸지람을 들었는데도 사무엘상 2장 3장 4장 앞부분까지 엘리 제사장이 회개했다거나 그 아들들을 체벌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100살에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아들들의 죄를 보고서도 벌도 주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아버지 엘리가 있는가 하면, 아무 죄없이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아무리 100살에 얻은 귀한 아들일지라도 아낌없이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모습,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모습과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저 내 아들, 내 딸,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끔찍하여 하나님보다 신앙보다 더 중요시 여기지는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고 3 수험생 되면 부모님이 앞장서서 공부해야지 어딜 가냐? 교회가지 말라고 하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부모님이 권사님이거나 장로님이어도 똑같습니다. 위기의 순간, 고통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찾지 내 이득을 위해서 언제든지 하나님을 뒷전으로 미루는 부모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이기적인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아들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듯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대속의 제물로 바치려고 하신 분이 아니라 정말 내어주신 분, 죽는데까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 되시기까지 그 생명까지 내어주신 하나님, 여러분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어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나도 엘리 제사장이랑 다를 바 없이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중요시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히 아닌 것을 아니라고 교훈하고 있는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알려주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정말 없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없는지 진지하게 내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움켜쥔 손을 놓으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은 아닌지 순간순간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1절 보십쇼. 둘째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죽게 되는데 그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가봇 글자 옆에 쓰여진 번호를 밑에서 찾으시면 뜻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영광이 없다 함, 즉 하나님의 영광이 없어졌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엘리 제사장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는데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 버렸다 하는 뜻입니다. 18절 맨 끝에 보시면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기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40년동안 영적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 왔는데 결국 아들들을 제 때 가르치고 깨우쳐 주었어야 할 텐데 방관함으로,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김으로 영광이 그 가정에서 떠났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다 몰살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를 통해 영광 받으실 하나님이 나를 떠나가시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벌은 “하나님의 버려두심”입니다.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함을 가장 기뻐하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이가봇의 삶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과 늘 가까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