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새벽예배 2022.03.22 | 누가복음 6장 20-26절 | 이선기 목사



누가복음 6장 20-26절


20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절.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절.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절.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절.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절.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절.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사순절 새벽 묵상


여러분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는 지난 몇 일 동안 참 여러 가지 일을 겪었습니다. 우선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를 가까이에서 보신 분들은 얼굴이 좀 이상하다 느끼셨을 것입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 오후에 운동을 하려고 교회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너무 땀이 나서 안경을 고쳐 쓰려고 한 손으로 안경을 빼다가 중심을 잃고 자전거 브레이크를 앞 브레이크를 잡는 바람에 자전거 뒷바퀴가 공중에 뜨면서 앞으로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주차장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부딪히게 되었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얼굴 다친지는 모르겠고 너무 창피해서 얼른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닦다 보니 이마에 큰 혹이 생기며 찢어졌고 입술 위에가 엄지 손가락만큼 빨갛게 긁혔고 다행히 코는 살짝 긁혔습니다. 안경은 심하게 긁혔더라고요. ‘큰일났다 이 얼굴로 주일에 예배 사회자석에 설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를 어쩌나요? 참 다행인 것은 지금도 살짝 붙이고 나왔는데 이 듀오덤이라는 알로에 같은 치료하는 살색 밴드를 붙이게 되어 성도님들이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셨고 마스크를 써서 코와 입술 위를 가려져 이마에만 살짝 종기가 터졌나보다 생각하시더라고요. 주일 예배 사회 보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얼굴을 다치고 난 뒤 한 시간 후에 제가 참 좋아하는 부부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 남편 분께서 제 얼굴을 보시더니 이 말을 해서 함께 웃음이 빵 터지게 되었는데 이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맨 땅에 헤딩하셨네요”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얼굴이 아프면서도 웃음이 나는데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 일이 생겼는데 집에 왔더니 집사람이 이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여보 미안해 내가 오늘 stop 싸인에서 경찰을 만나 처음으로 딱지를 끊었어. 한 200불 벌금 나올 것 같애. 어쩌지?” “아니 내가 당신 운전 급하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당신 내가 운전 가르칠 때 Stop Sign에서 1, 2, 3 숫자 세라고 했어? 안했어?” 하고 화난 얼굴로 집사람을 혼내려고 하던 찰나에 갑자기, 방금 전 식사할 때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목사님! 맨 땅에 헤딩하셨네요. 또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집사람도 같이 웃었습니다. 한참 웃다가 제가 이렇게 말하게 되더라구요. 돈은 또 벌면 되지.. 사람 안 다쳤으면 됐어. 내 얼굴 봐봐 우리 그냥 웃자 하하하. 작은 딸이 제 얼굴을 보더니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빠 얼굴이 이게 뭐야? 못생긴 얼굴 더 못 생겨졌네. 이 말이 또 얼마나 웃기던지.. 집사람과 아이 둘이 제 얼굴을 보면서 걱정과 함께 웃음이 끊임없이 계속 섞여 나오는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두 가지 속상한 일만 있고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다음 날 토요일 새벽 예배를 잘 마치고 성도님들 못 알아 보도록 마스크 잘 가려서 쓰고 아침에 잠깐 운전해서 기독교 백화점에 가는데 강남회관 조금 지나 모빌 주유소 앞에서 주유하고 나오는 승용차가 저를 보지 못하고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왼쪽으로 유턴을 하려고 훅 들어오면서 제 차와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제 차 오른쪽 앞바퀴부터 앞 문 뒷문까지 푹 들어가고 긁히고 저는 갑자기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차를 피하여 왼쪽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중앙선을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참 다행인 것은 반대편에 차가 오고 있지 않아서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쇼. 지금 어제 자전거에서 넘어져 얼굴을 맨땅에 헤딩하고 팔 다리가 아픈 상황인데 또 자동차 사고까지... 세상 사람들은 이 정도 되면 뭐라고 할 까요? 참 재수가 없다. 무슨 마가 꼈다. 엎친데 덮친격 뭐 이랬을 텐데... 감사한 것은 대시카메라가 사고 영상을 그대로 촬영하고 있어서 실갱이 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라장로님께서 갑자기 부딪히고 온 차를 몰아보시고 더 이상 운전하면 안 되겠다고 빨리 차 맡기라고 조언해 주시고 자동차 바디 고치는 데보라 집사님이 출근 안하시는 날인데 일부러 출근하셔서 차를 맡아 주시고 렌트카 연결해 주시고 참 얼마나 고마운지...

주일에는 역시 주의 날이라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안식일이라서 쉬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당분간 타게 될 렌터카 타고 새벽 예배 인도하려고 나왔는데요. 원래 새벽 예배 끝나고 집사람은 아이들 학교 픽업해 주느라고 저에게 잘 전화하지 않는데 갑자기 전화를 하더라고요. 집사람 왈 “여보 네 번째 또 일이 생겼어. 차가 안 움직여요. 그래서 아침에 애들 다 학교 지각하고 우버 택시 부르고 고생했어” 아니 또 차 문제가 생겼다고? 자전차, 자동차 티켓, 자동차 사고, 자동차 시동 안 걸림까지. 네 가지 일이 이렇게 줄지어 생기다니 신기하다. 신기해.

여러분 이렇게 네 가지 속상한 일이 생겼는데도 왜 그렇게 화가 나지 않고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런 결론이 스스로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사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다는 확신, 그리고 더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 즉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 바울이 했던 고백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고백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있지 않은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최종 목적지가 여기가 아닌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복이 무엇인지 화가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복과 화가 무엇인지를 묵상하시고 재확인하시면서 다시 자족함의 고백이 확실해지는 이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오늘 설교제목을 “네 가지”라고 한 것은 제가 겪은 네 가지 일 때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본문에 보니까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에 대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 첫 번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네 가지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시면서 진짜 복을 깨달으시고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 누가복음 6장 20-26절은 마태복음의 8복 산상수훈과 같은 내용을 보이며 차이를 보이는 본문입니다. 마태복음에는 8복을 이야기 했는데 오늘 누가복음의 본문은 4복을 이야기 합니다.

20절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라 하십니다. 21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웃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2절 주님 때문에 미움 당하고 욕먹을 때에는 복이 있나니 23절 기뻐하고 뛰놀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 하셨습니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사실 마태복음의 8복이 누가복음의 4복보다 늦게 쓰여졌고 누가복음을 참조하여 마태복음이 쓰여졌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이란 표현이 진짜 주님이 하신 표현이 아니고 원래 예수님의 말씀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 가운데 계셔서 힘없고 사회적인 핍박과 환란 속에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직접적인 말씀은 가난한 자들아 너희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배고픈 자들아 하나님께서 배부르게 하실 것이다. 울며 슬퍼하는 자들아 지금 울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받게 되고 너희는 결국은 웃는 자가 될 것이다. 핍박받는 자들아 나 때문에 핍박당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이 크다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이라 하면 꼭 이 땅에서 뭔가를 많이 누리며 소유하는 것으로만 주로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땅은 잠깐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 그들이 이미 바로 복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 사람에 전통에 익숙해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옷에 이불에 문에 전부 다 복, 복 자가 쓰여 있어서 그런지 자꾸만 무엇인가를 얻는 것 받는 것, 지금 가진 것보다 더 풍성해지는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가 복이다 그저 기복적인 복에 익숙해 있는데 주님의 메시지는 원래부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 그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자가 되었고 복 있는 자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이미 복있는 자임을 기억하시고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욥기를 묵상하기 시작하면 초반에 욥기 1장 21절에 욥의 고백에서 너무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재산이고 재물이고 심지어 자녀 10명까지 다 잃어버린 욥의 입술에서 나온 고백이 이랬습니다. 욥기 1장 21절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어다” 즉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은 빈손으로 온 인생이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리며 살면서도 잊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 다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제가 무슨 불평을 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잠깐 동안이라도 이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복된 사람입니다. 복을 알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욥의 고백이 바로 이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에 우리의 생각이 통째로 바뀌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의 복 눈에 보이는 복을 우선적으로 구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오리지날 복, 진짜 복을 마음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특권 주신 주님, 십자가의 은혜로 부활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누리게 된 진짜 복 있는 자가 된 것을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순절에 절제한다고 얼굴을 일부러 침울하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더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보이는 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네 가지 진짜 복을 누리게 된 것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네 가지 복과 함께 네 가지 화를 말씀하심으로 미리 경계하신 것 이것 또한 은혜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요. 사업 잘 되구요. 병 다 낫구요. 자녀 좋은 대학 잘 붙구요. 여러분 이건 사실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정말 이런 식으로 몰아가면 우리랑 다른 종교랑 뭐가 다릅니까? 우리도 그냥 종교들 중에 하나입니까? 열심히 손금이 없어지도록 빌어서 절을 천배 해서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건 진짜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네 가지 화를 한번 보십쇼. 24절 부요한 자가 이미 위로를 받았으니 화 있다고 하십니다. 25절 지금 배부른 자여 화 있어 주리게 될 것이다.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게 되는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26절 너희를 사람들이 칭찬하면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부요한 자 하나님이 주신 부요함을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깨닫지 못하니 화 있는 자다. 24절 스스로 너만 위로를 받고 있으니 즉 너무 만족하여 하나님도 필요 없을 정도로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으니 부요함이 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배부른 자여 지금 풍족한 것 누가 주신 것인지 모르고 배부를 정도로 너무 풍요하여 주릴 때가 있음을 전혀 모르고 살면 결국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하고 기근의 때가 오게 될 것이니 화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지금 웃는 자라는 말 이 땅의 쾌락과 즐거움에 파묻혀 영적인 기쁨과 영생의 즐거움에 대한 관심이 없는 자는 마지막 심판 때에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여기 26절에 모든 사람은 성도를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세상 사람들이 칭찬하는 세상의 명예와 힘만 추구하면 결국 마지막 심판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 그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하나님께서 생명책을 펼치실 때에 네 가지 화 받은 자의 명단에 오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네 가지 복을 누린 자의 명단에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올라가는 복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자족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사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