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5.10 | 사무엘하 16장 1-14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16장 1-14절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감사에는 세 가지가 있다는 것. 세 가지 감사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if ~ 한다면의 감사,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 병을 고쳐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이 사업을 번창케 하셔서 돈 많이 벌게 해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런 감사는 사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런 감사는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감사는 because ~ 때문에 감사, 자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좋은 학교에 합격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 문제 때문에 참 힘들었는데 기도했고 기도대로 잘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이 감사는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한 대로 과연 될까? 어쩌다 운이 좋았던 거지, 아니면 당사자가 노력했으니까 된 거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감사는 In spite of 감사 ~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감사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지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결국에는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에 드리는 감사. 가장 성숙한 감사의 모습입니다. 전라도 여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손양원 목사님의 감사의 기도는 가장 성숙한 감사의 기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 삼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 미국 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가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 가장 귀한 장자 그리고 차자까지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 여러분 어느 누가 이렇게까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나이 드실수록,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첫 번째 if ~ 해 주시면의 감사나 because ~ 해 주셨기 때문에 하는 감사보다도 In spit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 가장 심각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성숙한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지금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자의 길을 가고 있는 다윗이지만,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다윗은 마지막 세 번째 감사 In spite of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드린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크게 다윗이 두 명의 사람을 만난 이야기인데 우선 첫 번째 사람은 1-4절까지에 보이는 “시바”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이 시바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예 므비보셋의 종이었습니다. 제가 아주 나쁜 놈이라고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다윗이 요나단 일가의 남은 소생을 찾으려 할 때에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다윗왕에게 소개한 사람. 그래서 다윗은 두발 절름발이가 된 므비보셋을 긍휼히 여기고 사울의 밭을 다 돌려주고 항상 다윗의 상에서 친 아들처럼 함께 밥을 먹는 영광을 누리게 해 주었습니다. 그 므비보셋의 종이 된 사람이 바로 이 시바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 시바가 많은 식량을 가지고 도망가는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1절 보십쇼.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도망자 생활에 가장 필요한 음식을 이렇게 가득 준비하여 왔으니 다윗왕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2절에 다윗왕이 어찌 된 일인지 묻습니다. 2절 보십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여러분 여기서 다 먹을 것 이야기인데 특별히 나귀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나귀는 두 다리가 다 절름발이인 므비보셋이 이동할 때 쓰는 필수 교통수단입니다. 그 중요한 나귀를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 다음 절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래도 궁금했는지 3절에 다윗은 므비보셋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여러분 이 시바의 대답은 100% 거짓말이었습니다. 뒤에 사무엘하 19장 24절 이후에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므비보셋이 왕을 맞이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사실이 밝혀집니다. 므비보셋은 아버지의 나라를 돌리리라 한 적이 없고 두 발 절름발이라 나귀를 타고 다윗을 따르려고 하는 순간 시바가 므비보셋을 속이고 밀쳐냈다는 것. 그리고 므비보셋을 모함했다는 것.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시바와 므비보셋이 도로 찾은 밭을 반반 나누라 제안했더니 므비보셋은 사양하고 시바에게 전부 다 주라고 부탁합니다. 므비보셋은 사실 이렇게 선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진실을 자세히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오늘 본문 보십쇼. 시바의 말을 그대로 다 믿고 므비보셋에게 있는 모든 재산을 시바가 가지라고 명합니다. 오늘 본문 4절 보십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로 1. 인간은 참 받는 것에 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 말씀드린대로 감사하는데 있어서 if ~해 주시면 감사하는 존재,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 주어져야만 감사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당장 다윗과 함께 도망길을 가는 600여명 무리에게 급한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시바에게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아주 쉽게 시바의 말을 그대로 다 믿어버린 경솔한 다윗왕.
삼손의 머리털을 밀어버린 들릴라를 떠올려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들이 들릴라에게 말합니다.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내면 은 일천일백개를 네게 주리라. 들릴라는 당장 손에 들어오게 될 은 일천 일백개 생각나서 온 힘을 다해 눈물 흘리고 애원하고 총동원해서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아내고 맙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뻐하고 있을 때 아간이란 사람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를 훔쳐 빼돌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참 약한 존재 보통 인간의 모습입니다.
나병 환자 10명을 다 고쳐주신 주님 앞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온 사람은 딱 한명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내 손에 들어온 것에만 마음 약해져서 집착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다윗왕은 시바가 가져다 준 음식을 넙죽 받으며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속아 넘어가고 이제 5절 바후림이란 곳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도 또 사울일가의 사람 두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시므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냥 시므이가 아니라 욕쟁이 시므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5절 보십쇼. “다윗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욕쟁이 할머니 식당은 정감이라도 있지 이 시므이는 아예 각오하고 다윗왕을 향하여 욕을 퍼붓게 됩니다. 그냥 욕이 아니라 저주의 욕이요, 6절에 보면 돌까지 던지면서 욕을 하고 있습니다. 7절에는 이 시므이의 욕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7절 중간에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피흘린 자여”라는 표현은 지금 시므이가 사울의 친족이었기에 사울을 죽게 만든 것은 다윗 너다. 사울을 피흘리게 만든 자여! 라는 표현입니다. 그 다음 표현 “사악한 자여”는 우리 성경 개역개정 성경에는 부드럽게 사악한 자여라고 되어 있지만 개역개정에는 그 표현이 아주 강합니다. “비루한 자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비루하는 것은 너절하고 더럽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더러운 놈아. 드러운 놈아 그런 뜻입니다. 성경 원어로는 더 심각한 표현인데 “이쉬 하벨리야알”이라고 발음합니다. 느낌이 많이 안 좋죠. 예 벨리알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벨리알은 신약성경에서 사탄의 별명입니다. 그러니까 원어의 뜻은 이 사탄아 그런 뜻입니다. 8절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즉 사울의 피를 흘렸으니 이제 그대로 너도 피를 흘리게 되었도다. 끝부분에 나라를 여호와께서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맨 마지막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여러분 이렇게 시므이가 여러 표현으로 돌까지 던지면서 다윗을 저주하는데 9절에는 심지어 다윗 옆에 용사 아비새가 제가 저 놈의 머리를 베겠습니다. 하는데도 다윗은 말리면서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10절 보십쇼.“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여러분 다윗왕이 왜 이렇게 이 엄청난 저주를 듣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다윗은 이 모든 수치 당함이 바로 자신의 죄의 댓가였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그대로 되받아 수치 당함으로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로 2. 무엇 때문인지 깨달으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다윗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감사 중에 두 번째 because ~ 때문에 감사합니다. 바로 그 모습 아닙니까? 하나님 바로 제 죄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줄 알겠습니다. 준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체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죄를 기억하시고 때리시기 때문에 오는 아픔입니다. 받아들입니다. 바로 이 모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1절에는 좀더 체념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과 모든 이들 앞에서 얼마나 수치스러운 상황임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여기까지 하고 아무 말없이 지나갔으면 다윗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텐데 그 다음 12절에서 다윗은 아주 특별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2절 보십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무슨 고백입니까? 바로 In spite of ~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고백입니다.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그래도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니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비록 이렇게 시므이를 통해서 저주도 욕도 듣지만 다 하나님의 뜻임을 받아들입니다. 결국 3. 내가 보기에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으로 좋은 것으로 내게 갚으실 것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그냥 좋은 일만 생겨야 아멘이 아니라 수치를 당하며 나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고백하는 다윗. 여러분 이래서 다윗을 이스라엘 최고의 왕.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라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느부갓네살 신상에 절하지 않아 풀무불 속에 들어갈 때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저 불속에서 죽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받아들이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이게 가장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 아닙니까?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신뢰함,
예수님도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달려 죽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고백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기쁜 일이든지 고통이든지 다 받아들이시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