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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한 자여 깨달을 일이 있고 할 일이 있다

새벽예배 2022.10.24 | 창세기 39장 1-10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39장 1-10절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새벽 묵상


저와 여러분은 지금 요셉이야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여러분 왜 요셉을 좋아하십니까? 6절 끝 문장에 나오는 대로 요셉의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구덩이에 빠지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서 불쌍해서입니까? 요셉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이게 맞을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2인자 국무총리가 되었기 때문 아닙니까? 성공했기 때문 아닙니까? 만약에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지 않았어도 여러분 요셉을 좋아하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계략으로 요셉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어도 여러분 요셉을 좋아하셨을까요? 우리 속에는 해피엔딩 즉, 무엇보다도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큰 명예나 권세를 얻는 크게 무엇인가를 소유하거나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요 비전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2절과 3절에 나오는 형통이라는 표현을 들으면서도 주로 부자 되고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을 예상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 형통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찰라흐”라고 발음하는데 전체 성경에서 총 5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이 창세기 39장에 형통이란 단어가 3번이나 나오는데 오늘 읽은 구절 중에 2절과 3절에 나오고요 나머지 한번은 내일 본문 23절에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2절과 3절에 나오는 형통을 자세히 읽어보십쇼.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 좀 거리가 있습니다. 2절 읽어보실까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부를 가지게 되었다는 표현도 없고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도 없는데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3절도 보십쇼.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애굽 사람의 노예일 뿐인데 주인이 보기에 범사에 형통하게 보였다 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명예의 높고 낮음이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성경이 말하는 형통일까요? 형통이란 단어 바로 앞에 문장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즉 1. “여호와께서 함께하심 자체”가 바로 형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으로 보통 사람과 다른 신비한 무엇인가를 자신 있게 누리게 되는 것 그게 바로 형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 한분도 빠짐없이 눈에 보이는 소유나 명예의 형통이 아니라 진짜 형통함을 깨닫고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항상 “폐하, 잘된 일입니다”라고만 말하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과 신하들이 함께 사냥을 하러 갔는데 총을 관리하는 신하가 왕의 총에 총알을 거꾸로 장전해서 넣는 바람에 왕의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갔습니다. 그러자 폐하 잘된 일입니다. 하고 말하는 신하가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 다행히 손가락 하나만 다치셨으니 그래도 참 잘된 일입니다. 노여움을 푸십시오” 왕은 너무 화가 나서 총을 관리하는 신하는 사형에 처하고 폐하 잘된 일입니다. 라고 말하는 신하는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2주 후에, 왕이 다시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만 길을 잃어 식인종에게 붙잡혔습니다. 식인종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왕의 손가락 하나가 없었습니다. “이 음식은 흠이 있구나”라며 식인종들은 왕을 그냥 풀어줬습니다. 식인종에게서 풀려난 왕이 감옥에 가서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자네 덕분에 살았어. 미안하네. 내가 그 때 너무 화가 났었네.” 그러자 신하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폐하. 식인종에게 잡혀가셨는데 무사히 풀려나셨으니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그리고 왕께서 저를 이 감옥에 넣지 않으셨으면 저는 분명히 폐하와 같이 사냥을 나갔을 것이고, 저는 흠 없는 음식이 되어 저들의 밥이 됐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이 신하가 바로 하나님을 잘 믿는 신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 형통은 어떠한 상황이나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 반드시 좋은 길로 잘된 길로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장 눈에 보기에 좋은 결과가 없을지라도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서 결국은 내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시길 변함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절대적인 형통의 사람 진짜 형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제 형통한 자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셨으면 형통한 자가 깨달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을 통해서 사명을 깨닫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4절 보십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여러분 요셉이 미디안 상인에 손에 팔려 애굽으로 갈 때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애굽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어디로 팔려나갈지 몰랐을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친위대장 즉 늘 바로왕의 수족과 같이 쓰임받는 최고 고위층의 노예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참 신기한 것은 형통의 근원 즉 하나님께서 요셉의 범사에, 즉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디발이 보고서 은혜를 베풀어, 가정 총무로 삼고 더 큰 은혜를 베풀어 보디발의 모든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할 정도까지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기 가정 총무로 삼고 모든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였다 여기서 뭐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여러분 요셉은 처음 아버지가 주신 채색옷을 입고 완장을 찼을 때부터 집안의 가정 총무 즉 관리자 역할을 이미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비록 아버지에게 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하는 일이었지만 얼마나 그 일을 충실하게 철저하게 했는지 형들의 미움을 살 정도 였고, 심지어 그 일로 인하여 결국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을 때에 아마도 요셉은 내가 이렇게 될 것을 어떻게 아시고 아버지께서 내게 관리자 일을 맡기신 것일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10명의 형들도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했으니 보디발 집의 그 많은 일꾼들, 소유들을 관리하면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을 것입니다. 전체를 관리하는 시야가 훨씬 넓어졌을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감옥에까지 들어간 요셉, 감옥에서도 또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옥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셔서 내일 22절에 보면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다 요셉이 처리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보디발의 명으로 요셉이 들어간 감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왕의 죄수가 되었겠습니까?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은 국가의 제반 업무를 담당하는 국직국직한 인물들이 정치, 사법, 행정 장관 등 높은 인물들이 들어오는 감옥이었습니다. 요셉의 관리 감독 경험이 가장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당시 최강대국 애굽의 모든 책임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그 중요한 자리의 관리감독을 누가 했는가? 바로 이 요셉이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하나하나 예비하시고 이끌어가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한 사람 요셉을 더 큰 관리 감독으로 더 더 큰, 아예 큰 최고의 관리감독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늦은 밤, 미국의 어느 지방 호텔에 노부부가 찾아왔습니다. 노부부는“ 예약을 못했는데 혹시 방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호텔 종업원은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대답하고 빈 방을 찾아보았지만 빈 방은 없었습니다. 밖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서 노부부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어서 주변의 호텔에 연락해서 빈 방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주변의 호텔에도 빈 방은 없었습니다. 호텔 종업원은 노부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빈 객실이 없습니다. 밖에는 비가 많이 오고 밤도 늦어서 다른 지역까지 이동하기 어려울 텐데. 괜찮으시면 제가 사용하는 방에서 하루 밤 지내시는 건 어떠실까요?” 노부부는 종업원이 사용하는 방에서 머물고 다음날 호텔을 나서면서 객실료의 3배를 지불했지만 종업원은 직원이 사용하는 방은 객실이 아니기 때문에 객실료를 받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했습니다. 종업원은 정중한 인사와 함께 노부부를 배웅했습니다. 2년 후, 비바람이 치던 밤에 방문했던 노신사가 뉴욕행 왕복 비행기 표와 함께 자신을 찾아와 달라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종업원은 비행기 표를 받고 뉴욕으로 가서 노신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노신사는 그에게 뉴욕 중심가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궁전 같은 호텔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이 호텔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호텔을 경영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노신사가 바로 백만장자인 월도프 애스터였고 종업원은 아스토리아호텔 사장이 된 조지 볼트였습니다. 진심 어린 배려와 친절 덕분에 지방 호텔 종업원이었던 조지 볼트는 미국의 고급 호텔 중 하나인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사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이 하는 일이 별 볼일 없을 수도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고 이 지겹고 별 볼일 없는 일 이거 해서 뭐하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내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성실하게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더 큰 일을 맡기실 때에 부족함이 없도록 기초부터 철저히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형통한 자가 깨달을 일 말고 꼭 할 일이 있는데 3. 하나님께 죄짓는 일에 있어서 아주 단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시는 대로 하나님은 형통의 사람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야곱을 통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에 복을 내리신 것처럼 요셉을 통하여 복 주시는 하나님, 문제는 복이 커질 때 엄청난 유혹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7절에는 요셉에게 눈짓하며 동침하기를 청하는 보디발의 아내가 10절에 보니까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다는 사실, 요셉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요셉은 계속 거절하면서 9절에 보면 이렇게 거절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이야기 합니다.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죄 짓는 일이라는 사실. 결국 10절 맨 마지막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즉 하나님께 죄짓는 일에 대하여 단호했던 요셉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와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 진짜 형통이었던 것처럼 눈에 보이는 죄가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지은 죄일지라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심을 더 두려워했던 요셉, 결국 이 하나님이 두려워 단호함을 택했던 요셉, 내일 본문에 보면 보디발은 사건에 진실을 알고 요셉의 무죄함을 알고 요셉을 죽이지 않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보내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어떤 단호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 사람과 별로 다른 게 없이 좋은 게 좋은거지 하고 아무 구별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구별됨이 없이는 구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적인 복을 알려줄 수 없습니다. 단호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단호하셨습니다. 변명하거나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류가 누릴 형통을 위하여 단호하게 십자가에서 죽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단호함으로 인해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대충대충 믿지 마시길 바랍니다. 단호하시길 바랍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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