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한 사람!

새벽예배 2022.03.16 | 마가복음 8장 34-38절 | 이선기 목사



마가복음 8장 34-38절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절.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절.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절.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3월 16일 새벽 묵상


여러분 사순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고난 받으신 이유는 딱 하나, 죄인인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40일을 금식하셨던 주님을 생각하면서 절제하며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이 시간들을 통하여 거듭남의 감격이 다시 살아나시길 바랍니다. 열정이 다시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주님께서 살아나시는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자주 하지만 설교는 사실 복잡한 게 아닙니다. 복잡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학교 때 설교학을 가르친 목사님이 딱 중학교 2학년 정도의 표현으로 설교하라. 즉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쉽게 설교하라 하셨습니다. 쉽게 설교하되 설교의 핵심을 놓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핵심이 바로 예수님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 집중하자는 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이번 한 달 동안은 예수님께 집중하여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찬양은 왜 하는가? 날 위해 내 삶의 주인공 예수님 보내주신, 내 대신 독생자 예수님 십자가 지게 하셔서 가능성 없는 우릴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서, 그 사랑과 그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주님께 집중하여 노래하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금방 다 잊어버리고 불평하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에, 하나님은 노아시대에 방주에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신 것처럼, 살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모세가 장대 위에 뱀을 매달아 달면 쳐다보라, 쳐다본즉 살리라 하셨습니다. 장대 위에 달린 뱀을 쳐다보아야만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 믿지 않고 쳐다보지 않았던 자는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안 믿으면 죽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설득해도 안 믿다가, 영원히 죽는 길로 가게 되고 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일이 있는데 교회가 자꾸만 죽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웬말입니까? 말이 됩니까? 죽은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불교의 절처럼 이 땅, 속세에 대한 생각을 다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또 좋은 게 좋은 거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여 그냥 주일만 한번 오면 되지! 아마 천국은 갈꺼야! 그런 종교인들 만드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에 속하여, 죽어가는 세상, 기준이 없는 세상에 기준을 제시하는 공동체, 살리는 공동체,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 이게 사람답게 사는 거라고 알려주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살리는 교회가 자꾸만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죽어 가는가? 본질을 놓치니까 죽어갑니다. 교회가 장대위에 달린 뱀 쳐다보는 일을 그치고, 다른 것에 집중하다보니 본질을 놓쳐 버리고 있습니다. 본질이 무엇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00년이 넘도록 변함없는 복음의 본질,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집중해야 합니다. 그럼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살리는 역사를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 정신이 무엇인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을 나타냅니까? 목에 멋지게 기독교인이라는 상징으로 걸고 다니는 게 십자가의 참 의미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바로 포기하는 게 십자가입니다. 나를 포기합니다. 내 가진 것을 포기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합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모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에 결코 포기하지 마라. 결코, 결코...했는데 우리는 반대로 해야 합니다. 결코 포기해야 합니다.. 결코 결코

가장 중요한 것들을 십자가의 주님 때문에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진 보이시죠? 누구입니까? 슈바이처입니다.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로 대학교수로 활동했으며, 어려서부터 천부적 재능을 발휘하며 파이프오르간의 연주자였던 다재다능한 천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아시는 대로 적도 아프리카의 오고웨 강변, 랑바레네에 병원을 설립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의 병을 고쳐주고 영적인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며 일생을 마친 분입니다. 사람들은 슈바이처가 그냥 선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존경하는 것 같은데, 그건 슈바이쳐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슈바이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집중함으로 자신의 중요한 것들을 포기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게 슈바이쳐의 진짜 모습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한 사람 그래서 포기한 사람 슈바이쳐.

슈바이처도 목사님이셨는데 이분과 저를 비교해 보니 왜 그렇게 제가 작아지는지....이런 이유로 제가 오늘 설교제목을, 중요한 것 포기한 슈바이처를 생각하며 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한 사람이라고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럼 슈바이쳐는 무엇을 포기했는가? 그의 삶에 중요한 세 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첫째 심취했던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는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대학교수직을 포기했습니다. 세 번째는 풍요롭고 안락한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본문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 기독교의 핵심 막 8장 34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하고 딱 맞는 사람, 정말 예수님 말씀하신 그대로 집착을 버리고 포기하는 삶을 산 사람이 바로 이 슈바이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슈바이쳐가 자기 것을 다 포기했더니, 오히려 나중에 돌아보니까, 그가 포기했던 모든 것을 다 풍성히 얻게 하셨습니다. 슈바이쳐는 그토록 심취했던 바하의 음악을 포기했었지만 바하 협회는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연주회를 아프리카에서 열어주었고 대형 오르간을 슈바이쳐에게 선물했다고 합니다. 또한 존경과 명예가 뒤따르는 교수직을 포기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평생 동안 강의할 만한 강의 시간을 단 일 년 동안에 모두 다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안식년을 맞아 귀국한 그에게 대학마다 앞 다투어 초청해서 그의 강의를 듣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었지만 그가 저술한 자서전을 비롯한 많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자신이 선택한 삶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마음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포기했더니 오히려 다 얻게 되는 것, 저와 여러분도 이런 기쁨을 누리는 예수님의 사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예수님의 사람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신비하신 은혜, 잃은 것 같은데 다 이루어주심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간단하게 해도 되는데, 풀어서 알려주신 것, 예수님 따르는 방법을 알려주신 그 의도를 파악해 보면 됩니다.


1.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포기했습니다. 오늘 34절에 “자기를 부인하고”라는 표현 무엇입니까? 이제는 내 속에 내가 없는 것 그게 자기 부인입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가시나무새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동안은 내 속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내 맘대로 살아서 주님의 자리가 없었는데, 이제 구원받고 나니, 그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되니, 내가 잘못 살았구나! 이제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 되는 것,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억누르고 예수님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 나는 없어지는 것, 내 고집 내 자존심 이런 것 다 사라지는 것, 이게 자기 부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나를 다 죽이는 것 그게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부인의 좋은 예로 새벽기도가 있습니다. 새벽기도 하는 분들 자기 부인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새벽기도 해야 되는 이유, 제가 청년들에게 이런 말씀 많이 전했는데 최고의 신랑감, 최고의 신부감은 다른 게 아닙니다. 새벽기도 하는 사람이 최고의 신랑감이요, 새벽기도하는 여자청년이 최고의 신부감입니다. 왜요?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죽이고 주님을 주인으로 삼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왜 신앙 있는 신랑 안 나타납니까? 왜 신앙 좋은 신부 안 나타납니까? 새벽기도 안하니까 안 나타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훈련된 사람, 예수님의 사람, 자기부인 하는 사람 주려고 하시는데, 본인이 새벽에 엎어져서 자고 있는데, 그런 사람 아직 주실 리 없습니다. 새벽기도하며 자기 부인하면, 자기 부인하는 강력한 최고의 엄친아 신랑감 분명히 나타납니다. 새벽기도하며 자기 부인하면 최고의 신부감 분명히 나타납니다. 키 큰 남자 실없는 남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얼굴 예쁜 여자 화장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부인해야 진짜입니다. 이렇게 청년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아멘이신가요?

아브라함이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 자기 부인의 과정, 자기 죽이는 훈련이었습니다. 사울왕의 문제가 뭐였습니까? 언제 버림받았습니까? 자기 죽이지 못하니까 자기 부인하라고 아말렉 전투에서 생명 있는 것 죽이라고 했더니, 버젓이 살려가지고 왔습니다. 사무엘 “왕이여 제사보다 순종이 낫습니다.” 왜 두 번이나 실수하십니까? 자기 버리지 못하니까 하나님이 사울왕을 버리셨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 그게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부인하는 예수님의 사람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슈바이처가 대학교수직을 포기했다고 말씀드렸죠 그겁니다. 오늘 본문 보십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마다 각자가 십자가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하기 힘든 것 그게 내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말씀드렸죠. 당대 최고의 로마인 선생님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고 나니까 자기가 받은 최고의 교육을 뭐라고 여겼습니까? 빌립보서 3장 7절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고”, 8절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토록 내가 잘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배설물로 여겨지고 바울은 내가 하기 힘든 것, 복음을 위해 내 삶 전체를 이방인 선교사로 드리는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 그게 예수님의 사람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강점을 사용하시는 분이기시도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것은 내 경험, 나만의 요령을 의지하고자 함이기도 하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유익을 얻고자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전쟁 잘 했던 사람 다윗, 여러분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 때려눕힌 것 갑자기 잘한 게 아닙니다. 원래 물맷돌 하나도 못하는 데, 갑자기 던져 하나님 능력으로 앗싸 이게 아닙니다. 양들 치면서 무수하게 연습해 왔던 사람, 실력 있는 어릴 때부터 탁월한 전쟁의 실력을 연마해 온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이제 왕이 되어서 전쟁하러 갈 때에도, 얼마나 잘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윗은 항상 전쟁하러 갈 때에, 우선 기도하는 일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왜요? 내가 가장 잘 하는 전쟁이지만 하나님 없이는 안 됩니다. 이게 다윗이었습니다. 자신의 능력, 경력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자 자신을 자꾸만 내려놓는 사람. 하나님 앞에 두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니까, 내 십자가를 지고자 하니까 더 크게 들어 쓰셨습니다. 여러분 이게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잘 하는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찾으시고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을 따르는 것 지금의 좋은 상황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 것, 그게 예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금 가진 것을 주님이 쓰시고자 하면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사람. 심지어 주님 원하시면 가족도 포기하고 가지고 있었던 것 다 포기할 수 있는 사람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주님 따라 나아가는 것 그게 제자들이 할 일이었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사람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 지금 누리는 것을 포기한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욥만큼 성경에서 누리고 있는 것 포기하는 훈련 잘 된 사람이 없습니다. 가진 재산 다 가져가셨습니다. 한 자녀 잃는 것도 견딜 수 없는 일인데, 자녀 10명 다 가져가셨습니다. 몸의 건강까지 사단이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던 욥, 그 훈련 다 끝나니까 하나님께서 갑절로 갚아주시지 않습니까?

지금 있는 곳이 너무 편하고 좋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지만 꼭 한번 의심해보십시오.

변온동물, 즉 주변 온도에 따라 몸의 온도도 함께 달라지는 변온동물인 개구리의 경우 , 뜨거운 물에 바로 넣으면 온도를 감지하고 바로 튀어올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찬물에 넣고 온도를 서서히 가열하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과 함께 개구리 몸의 온도도 올라가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로 삶아 죽게 되는 거죠... 편하고 좋기 때문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편하고 좋기 때문에 가라! 말씀하시는 음성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뜨뜻...하게 몸을 담구고 여기고 좋사오니..... 하면서 죽어가는 개구리가 바로 여러분과 저는 아닌지요?... 평안하고 좋을 때마다 꼭 한번 의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여기가 제가 있어야 할 곳이 맞습니까? 주님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데 저만 지금 이러고 있는 건 아닙니까? 훈련은 고됩니다. 훈련은 힘들고 눈물 납니다. 훈련은 쓰디씁니다. 그러나 훈련받는 자만이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리 포기하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해 나를 위한 삶을 포기하신 분이셨습니다. 죄없으신 분이 안 당하셔도 될 고난과 핍박 다 당하시고 십자가 지시고 죽는 순간까지 우릴 너무 너무 사랑하신 분, 죽음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지금까지 우릴 사랑하시는 분 예수님이십니다. 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하신 예수님 그분께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