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추천서, 특별한 일꾼

새벽예배 2022.07.11 | 고린도후서 3장 1-11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후서 3장 1-11절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미국 제 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 그러나 이 모든 세상의 업적보다 신앙을 더 중요시했던 사람 누구인 줄 아십니까? 예 존 워너메이커죠. 존 워너메이커의 여러 일화 중에서 들으면서 사명감으로 함께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체신부 장관이었던 워너메이커에게 질문했습니다. “장관님 장관님은 그 큰 사업에 바쁘시고 주로 체신부 장관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많이 바쁘실 텐데, 어떻게 4천 여명이나 되는 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을 책임지는 주일학교 교장일까지 감당하십니까?” 그랬더니 워너메이커는 정색을 하면서 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제 주 업무는 주일학교 교장일입니다. 그 외의 체신부 일이나 백화점 일이 부업입니다. 저는 이미 45년 전에 깨달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 말씀, 그 말씀을 분명히 믿기에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누군가 당신의 주 업무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주 업무는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도 워너메이커 못지않게 주 업무는 부활의 증인, 주님 전하는 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에이 목사님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시죠. 우리가 사회에서 돈 버느라 얼마나 피 튀기는 전쟁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지금 생업을 다 그만두고 전도하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 속에서, 내 일터가 선교지다 여기시면서 복음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으시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아는 한국에 사시는 두 분의 유치원 원장님이 계십니다. 한 분은 정말 유치원을 잘 운영해 가십니다. 최고의 사업가로 유치원을 확장시켜가며 정말 수지타산 잘 맞도록 잘 운영하십니다. 몇 년 하던 유치원 건물을 금방 팔고 좋은 곳으로 옮겨가며 프랜차이즈로 정말 잘 만들어가셨습니다. 그 분은 정말 돈 잘 버는 사업가 유치원 원장님이셨습니다. 또 한 분은 유치원을 참 오래하시는데 유치원 건물은 늘 똑같습니다. 꾸준히 하시는데 돈은 잘 버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정말 참 선생님이십니다. 원장님이신데도 owner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정말 학생들을 사랑하십니다. 학생들이 반 선생님보다 원장님을 더 좋아하기도 합니다. 이 분은 원생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함께 심어주어 미래의 하나님의 리더들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일하시는 분입니다. 일주일마다 한 번씩 유치원에서 꼭 예배를 드리는데 참 여러 번 제가 그 예배를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이 원장님의 목표는 돈 버는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그 분의 목표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어떤 분을 더 기뻐하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도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하시는 일을 통해 복음 전하는 사명 특별한 사명을 발견하시고 열심히 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3장 1-11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바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사명, 특별한 소명감입니다. 바울은 지난 1장과 2장에서는 여행경로를 바꾼 것 때문에 문제 삼는 이들에 대하여 변호하느라 애를 많이 썼는데 이번에는 당시에 고린도교회 안에 있던 교인 중 일부가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있던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의혹을 해결하고자 오늘 본문 3장 1절부터 5장 10절에 이르는 긴 지면을 할애하여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이야기를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장 1절부터 4장 6절까지는 신약 시대 사도직의 우월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두 가지의 특별한 근거를 대면서 자신의 사도권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오히려 강하게 선포하면서 바울 스스로도 자신의 사명감으로 투철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성도님도 계시고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도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 윌셔교회 출석하시는 분도 계시고 다른 교회 출석하고 계신 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직분이 무엇인가? 혹은 교회가 어느 교회인가 상관없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히 가져야 할 사명감과 확신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그 그리스도인의 사명감과 확신으로 다시 투철해지는 모든 성도님들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첫 번째로 바울은 나의 추천서는 바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합니다. 1절 보십쇼.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왜 추천서 이야기가 나오는가? 고린도 교인 중에 일부가 바울이 어떤 권위 있는 단체나 사람의 천거서 즉 추천서가 없다는 이유로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배척하려고 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한 개인의 권위는 바로 그를 파견한 단체나 어떤 특정 인물의 추천서에 의해서 판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추천서가 곧 한 개인의 신임장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바울은 세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바울의 추천서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3절 보십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은 성령에 대한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라는 표현은 “먹”은 헬라어로 “멜라니”라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쓴 추천서는 시간이 흐르면 없어지고 마는데 나는 성령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추천서가 있다. 변함없는 영원한 것 붙들고 확신에 차서 하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 속에 영원한 확신, 부활의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정말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복음 전하는 전도자로 살고 계십니까? 시들시들해지신 분이 있다면 그 영원한 확신이 다시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3절 그 다음에 나온 구절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여기서 돌판은 바로 십계명에 대한 표현입니다. 즉 모세가 받은 율법적인 계명, 구약, 즉 하라와 하지 말라로 제한된 것,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즉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마음 중심에 계속해서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소명감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평생 지울 수 없는 복음의 확신이 되살아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추천서는 고린도 교인들 자체다. 그래서 2절과 3절에 반복해서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즉 추천서다)”“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글로 쓰여진 게 아니고 직접 눈에 보이는 증거, 복음 전도로 회개하고 주를 영접한 고린도 교인들이야말로 살아있는 바울의 추천서다 하는 표현입니다. 감리교회 창시자 웨슬리 목사님은 사실 읽을 만한 책들을 별로 쓰지 않으셨습니다. 굳이 찾는다면 일기밖에 쓰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럴까? 웨슬리 목사님은 그저 열심히 전도하신 분입니다. 말 타고 있는 웨슬리, 한국 감리교회 심벌 마크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웨슬리 목사님은 열심히 말타고 다니시면서 타락한 영국 사회를 구원하시고 열심히 설교하시고 열심히 전도하시고 복음 전하신 것 그게 다입니다. 직접 눈에 보이는 증거, 복음을 듣고 통회하며 회개하고 주를 영접한 이들 그들이 바로 웨슬리 목사님의 증인들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너무 서류, 행정적인 것, 뭐 이런 것들에 치중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교육을 수료하고 훈련을 받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말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고 있는가?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 쓰다가 두고 갈 것들 말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 말고, 하나님이 기억하실 것들, 영원히 남을 것들 거기에 최고의 가치를 두면서 그것을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보일 나의 추천서로 삼으면서 준비하시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2. 두 번째로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으로 확신을 가지고 일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이 바로 그렇게 새 언약의 일꾼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6절 보십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왜 새 언약이란 표현을 썼는가? 바울을 치부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붙잡고 있는 옛 언약과 구별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새 언약을 상반된 옛 언약과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즉 6절 중간에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역에는 의문으로 나와 있습니다)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여기서 이 율법 조문(의문)은 그람마토스라는 헬라어로 형식주의 혹은 멍에로 간주되는 모세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저 하라와 하지 말라는 행위의 지킬 것들로 되어 있는 옛 언약들, 여기에는 어떤 생명도 없었고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 이후에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그 안에는 율법 뿐이요 자비와 사랑이 없었습니다. 율법의 문자적 규정에만 매달리는 형식주의에 깊이 빠짐으로써 정말 중요한 것 율법을 통해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는 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나도 모르게 우리 신앙의 모습이 이렇게 문자적 규정에만 매달리게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교회다니는 사람이라면 이것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저 이렇게 해야..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으로 나를 얽어매고, 다른 사람도 판단하고 정죄하고 평가하고...이것은 철저히 옛 언약을 붙드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사실,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 것은 결국 죽이는 것이 될 뿐 살리는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율법의 규정에만 매달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래도 영광은 받습니다. 7절에 나오는 대로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예 영광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곧 없어지는 단기간의 영광일 뿐이라는 사실, 그래서 7절 중간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잠깐 동안의 영광은 주어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 영원한 영광입니다. 8절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다. 9절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즉 새 언약의 일꾼이 품은 그 의의 직분은 더욱 넘치는 영광을 가져올 것이다. 10절 더 큰 영광으로 11절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즉 바울이 지금 새 언약의 일꾼으로 일하는 것은 영원한 영광, 더욱 큰 영광, 넘치는 영광, 길이 있을 영광이란 사실, 아마도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다양하게 영광을 표현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광 중에 영광, 가장 큰 영광, 더욱 큰 영광, 길이 있을 영광 이 모든 영광이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새 언약의 일꾼에게 주어진다는 것, 율법에 사로잡힌 자에게는 짧은 영광이나 새 언약 복음의 일꾼에게는 영원하고 가장 큰 영광이 주어짐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특별한 추천서를 가진, 특별한 일꾼으로 특별한 영광의 사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