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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눈을 감는게 낫다

새벽예배 2023.04.24 | 사무엘하 8장 1-18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8장 1-18절


  1.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8.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9.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10.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새벽 묵상


하나님이 만든 우리 신체 중에서 눈만큼 중요한 기관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인지할 때 모든 인간이 처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 눈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눈이 바로 인간을 유혹에 넘어가게 하여 죄를 짓게 만든 결정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이 하와를 유혹하죠? “너희가 그것을(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그랬더니 창세기 3장 6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가 그 나무를 본즉, 만약에 하와가 그 선악과를 보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눈을 감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먹음직도 보암직도 탐스럽기도 한 나무임을 안 보았으면 아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 차라리 뱀만 쳐다보면서 계속 뱀을 응시하면서 결국 뱀을 잡아 뱀탕을 끓여 먹었거나 뱀술을 담가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왕이 나오는데, 이 다윗왕이 뒤에 사무엘하 11장에 가 보면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눈으로 갑자기 보게 되어 큰 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결국 밧세바를 취하여 임신을 하게 되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서 들어오게 하여 죄를 감추려고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살인하게 되죠. 다윗의 죄의 출발은 바로 목욕하는 여인을 눈으로 본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이 다윗을 기름 부을 때를 떠올려 보십쇼.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들 중에 정말 멋있는 첫째 둘째 셋째를 보면서 택하려고 하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교훈하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눈이 얼마나 중요한가와 함께 우리 눈이 얼마나 유혹에 빠지기 쉽고 우리를 속단하게 만드는 지를 인정하고 조심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엄마가 자녀를 기를 때 우리 아들딸이 좋은 것만 보고 자라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에게 좋은 것만 보며 자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좋은 것만 보시고 유혹이 올 때는 차라리 눈을 감으시길, 눈을 감고 이왕 눈을 감았으니 깊은 기도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왕의 군사적 치적을 기록한 본문입니다. 먼저 통일된 이스라엘 안의 질서와 기강을 확립한 다윗은, 적극적으로 이방 왕국의 정벌에 나섬으로 그동안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주변의 열강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복속시키게 됩니다. 오늘 본문 보시면 모압, 아람(소바와 다메섹), 암몬, 아말렉, 에돔 등을 쳐서 굴복시키고 하맛에게는 조공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는데 사실 이것은 창세기 15장에 나온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창세기 15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면서 그 영토를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여러분 이 말씀이 참 중요한데

우선 오늘 본문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익숙한 구절, 저와 여러분의 눈을 유혹하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6절 끝에 그리고 14절 끝문장입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우리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합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다. 가는 곳이 어디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니까 무조건 다 승리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문장만 생각하면 이런 생각까지 들 수 있습니다. 당시에 다윗왕이 가는 곳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는데 나폴레옹이나 징키스칸처럼 나라를 계속 더 확장해서 계속 전쟁했으면 전 세계를 통일했을 것 아닌가? 이게 우리 눈의 한계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욕심에 이끌리게 하여 끊임없이 더 더 원하여 그 끝이 없는 만족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이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당시의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을 쳐서 항복을 받았음에도 그 여세를 몰아 전 세계를 정복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창세기 15장 18절 조상 아브람에게 주신 땅 즉 애굽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만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이 주신 영토다! 그 이상의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이걸 깨닫고 딱 거기까지만 영토를 확장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우리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성공과 성취와 소유를 얻게 될 기회가 있다고 해도 내게 적절한 것이 어디까지인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깨닫게 되시고, 그 이상을 넘지 않는, 자족할 수 있는,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만족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아굴은 잠언 30장 8절과 9절에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이 사무엘하 8장 바로 앞에 지난 토요일부터 묵상한 7장의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다윗은 왕으로 평안히 살게 될 때에 나단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계신 곳을 크게 멋지게 지어드리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인용하여 무리하게 교회 성전 건축에 근거를 삼았던 한국의 교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서 빚을 많이 내어 교회 건물을 크게 더 크게 짓는데 너무 열을 내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고 지금 그 부작용으로 부도가 나는 교회 건물이 얼마나 많은지... 이게 바로 눈으로 보기에 끝없는 욕심을 따라간 모습의 본보기 아닙니까? 하나님은 다윗왕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나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건물에 거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건축물을 지으려고 하느냐?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 주리라. 즉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신앙의 위대한 뼈대를 너의 후손들을 통하여 세우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는 어마어마한 건물에 집착하지 마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건물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다윗은 이런 눈으로 보이는 것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고 두 가지 중요한 결단과 행동을 하였는데 그 모습에서 필요한 교훈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첫 번째로 병거 900대의 말의 힘줄을 끊는 다윗에게서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결단의 모습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3절에 보시면 다윗은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을 쳐서 4절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 4절 후반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이 부분은 평행구절 역대상 18장 4절과 함께 봐야 하는 구절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는 빠져 있는데 역대상 18장 4절에는 전체 병거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 다윗이 그 병거 백대의 말들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전체 1000대 중에서 100대의 병거의 말의 힘줄을 끊었다. 무려 90%의 말의 힘줄을 끊어 전투용 말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그저 농사짓거나 다르게만 쓰도록 만들었다.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보다 내 군사력을 더 의지할까봐. 눈에 보이는 전투용 말 일천 대, 최강의 군사력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워 끝없는 욕심에 이끌려 살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버리는 행동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다윗의 진가의 모습이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에 이제 바로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이스라엘 장정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게 말이 됩니까? 인간의 힘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군사력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기드온의 용사 32000명 모인 중에 22000명이 무서워 도망가게 했는데 10000명을 두고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 아직도 많다. 아니 하나님 십만명 넘는 미디안과 싸워야 하는데 많다니요. 냇가에 가서 물을 마시게 하라. 그래서 딱 300명만 추리시는 하나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전쟁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람 의지하지 말고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라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붙들고 있는 눈에 보이는 말의 힘줄을 과감하게 끊으시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크신 하나님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가장 강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아낌없이 다 드리는 마음, 잠깐 쓰다가 말 것들에 집착하지 않는 다윗의 모습을 발견하시고 내가 여호와께 드리는 태도를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에게는 주변국과 전쟁하면서 얻은 전리품도 상당했습니다. 7절 8절 보십쇼. 금방패, 많은 놋들. 10절 끝에 은그릇, 금그릇, 놋 그릇. 그 양이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90% 말의 힘줄 끊는 것 말고 또 한 가지 행동을 하는데 11절 보십쇼. “다윗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여기서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라는 표현, 그것도 라는 표현은 다른 모든 것을 드리고 남김없이 내 것을 전부 다 드렸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모든 국가를 다 이기고 어마어마한 전리품을 얻었어도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의미입니다. 저는 그저 명하신대로 했을 뿐이고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 의미입니다. 십일조도 십의 일을 드리는 것도 바로 이 의미 아닙니까?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봉헌하고 있습니까? 모든 것들 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영원한 시간까지 주관하시는 만물의 주인께 우리가 뭘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분께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께 드릴 때 그렇게 이렇게 재고 저렇게 재고 째째해지는지..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액수보다 더 중요한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그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눈으로 보이는 이 모든 전리품들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드리고도 더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것도 여호와께 드린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생명을 내어 주신 분께 평생 드려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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