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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으로, 노예로, 국가대표로!

새벽예배 2023.09.25 | 히브리서 11장 39-40절, 12장 1-11절 | 이선기 목사




히브리서 11장 39-40절, 12장 1-11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새벽 묵상


“나의 사명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누가 한 말일까요? 1950년대 남미 에콰도르 아마존지역의 아우카 부족들에게 선교하러 들어간 짐 엘리엇 선교사가 창에 찔려 순교하게 되었는데 그가 평상시에 했던 말입니다. 순교한 후에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된 일기장에는 이런 글도 쓰여 있었습니다.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일, 그것을 위하여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들을 버리는 사람, 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계속해서 또 이런 고백을 일기장에 담았습니다. “주님, 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을 위해서 내 삶이 불타오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나의 사명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즉 내가 이 땅에서 할 일을 정확히 발견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결국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들을 버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즉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분별하면서 욕심을 이기시고 집착을 버리시길 바랍니다. 다만 주님을 위해서 내 삶이 불타기를 원합니다. 즉 주님 보실 때 자랑스러워 할 일이 무엇인가? 평생 잘 했다고 칭찬받을 내 달란트 잘 찾으시고 거기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이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분명히 아주 흐뭇해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히브리서 기자는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보다 탁월하시다. 천사보다 우월하시고, 모세보다 뛰어나신 분이시다. 영원한 제사장이시고, 새 언약의 중보자시며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분이시다. 율법의 완성자요 제사를 완성하셨다. 하고 지난 10장까지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그러다가 핍박과 박해를 받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차라리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이들, 믿음이 약해진 이들을 향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인 11장을 통해 왜 믿음이 흔들리는가? 이 믿음의 선배들을 보라. 하며 믿음을 강하게 하고 다시 세우기 위해 선배들의 이름과 행적을 떠올리게 하며 확실한 예를 들어 표현했습니다. “믿음으로”라는 표현이 무려 스무 번 이상 쓰여진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은 아마도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아주 큰 신앙의 확신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비록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핍박도 당하고 고난도 당하고 있지만 믿음의 선배들의 상황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더 좋은 환경이다. 전혀 흔들릴 필요가 없음을 또한 강조했습니다. 즉 믿음의 선배들은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것을 믿었는데 우리는 직접 하나님과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본 이들이 아닌가? 우리는 직접 주인공을 보았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을 생명의 삶 책대로 12장 1절부터 시작하지 않고 11장 맨 뒤 39절과 40절부터 본문을 읽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1장 39절 보십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지금 믿음의 선배들은 보이지 않지만 믿었으나 약속된 것을 받은 것은 이 히브리서를 읽는 우리들이 아닌가? 즉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으니 자부심을 가지라는 표현입니다. 40절 보십쇼.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심이라.” 즉 지금 우리는 복음 때문에 고난 받고 핍박과 박해를 받지만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더 좋은 것이다. 엄청난 하나님 나라 상급이 준비되어 있으니 소망을 가지라는 표현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얼마나 좋은 시대입니까? 우리 한국 신앙의 선배들 70년 80년 전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 사회가 너무 가난하고 힘든 시기였고 너무 큰 전쟁과 혼란의 시기였기에 예수 믿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울기도 수도 없이 울었고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고 실제로 순교하신 분도 너무 많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자유를 얻어 예수 믿는 것, 교회 오는 것이 얼마나 편해졌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한국도 아니고 너무 가난했던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해 준 기독교의 나라 본국인 이 미국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합니까?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선조들이 고생하면서 믿은 예수님, 예수 믿기 힘들고 고생스러운 시대에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선배들의 수고를 기억하면서 그 선조들의 고생과 순전한 믿음의 덕을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 누리고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드디어 12장의 이야기입니다. 12장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1절 보십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여기서 이러므로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토이가로운” 이라고 발음하는데 앞에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앞에 모든 것들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의 선배들, 11장 믿음장에 나온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다 종합하는 단어입니다. 20번 이상 나오는 “믿음으로”라는 단어의 대상들이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을 기억하면서 흔들리지 말고 후배인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로 얻을 교훈은 선배들이 증인된 삶을 살았으니 우리도 증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증인은 누구입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감하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바로 증인입니다. 앞에 믿음의 선배들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는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그대로 증언하는 증인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후배인 우리도 있는 그대로 진실을 전하는 자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증인이란 단어가 헬라어 마르투스죠. 그런데 헬라어 마르투스는 증인이기도 하지만 순교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자의 밥이 될 지라도 진실을 전하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 그게 바로 마르투스, 증인입니다. 견딜 수 없는 박해와 핍박이 와도 끝까지 진실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자, 그게 그리스도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3차로 선교여행을 하면서 마지막 로마에서 순교자가 되기까지 그렇게 힘든 인생을 살 필요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끝까지 수도 없이 매 맞고 잠도 못자고 감옥에 갇히고 생명의 위협과 고통을 감내해야 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자신을 만나주신 부활의 주님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의심할 뿐만이 아니라 예수쟁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앞장선 바울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것은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까 너무 감사하고 감격하여 자신이 직접 주님과 함께 지냈던 제자랑 다를 바 없다 해서 자신을 사도로, 사도 바울로 불리길 원했고, 부활은 정말 사실이구나. 거짓말이 아니구나. 나도 주님처럼 부활의 존재가 되겠구나 하는 소망을 가지고 증인의 삶, 이방인들에게도, 유대인들에게도 증인의 삶,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갔던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여러분 500명 이상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어찌 우리가 부활의 증인되시기를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부활주일이 아니지만 오늘도 또한 우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삶은 계란 드실 때마다 부활의 증인되기로 다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계란 껍데기를 깨고 나와 새로운 삶, 부활의 삶을 살아갈 그 놀라운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당당하시고 어깨를 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다 똑같이 보여도 곧 오실 하나님의 나라. 부활의 나라의 시민권을 얻으신 저와 여러분이시기에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2. 두 번째로 히브리서 기자는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하라고 권면합니다. 1절 다시 보십쇼. 중간에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경주를 하며” 여러분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마치 당시에 운동 경기 하는 것을 연상하며 그리스도인이 어떠해야 할지 권면을 하고 있는데, 이 당시의 운동경기는 남자만 출전하고 남자들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출전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동등하게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그 어느 인위적인 것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선수가 되었는데 그리스도인이 바로 그래야 한다. 죄짓고 온갖 인간적인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순전하고 정직한 모습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인내로써 라는 단어에 인내가 헬라어로 “휘포모네”라는 단어인데 휘포는 below 어디어디 아래를 의미합니다. 모네는 확고한 것 꽉 붙잡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에 배,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의 동력이 무엇이었는가? 배 제일 밑에 노를 젓는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땀흘리며 노를 저어야 큰 배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끊임없이 노를 저는 것 그게 바로 휘포모네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배 아래에서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 즉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거기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확고히 지키면 결국 하나님의 상급을 얻게 된다. 비록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고생스럽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부활의 나라에 소망을 가지라.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인내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곧 영광의 주님 품에 안기게 될 소망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다시 1절 맨 끝에 문장 보십쇼.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즉 우리는 경기장의 선수다. 하나님 나라 국가대표다. 그런데 앞에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응원하는 가운데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하는데 끝까지 달려가야 한다. 분명히 할 것은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즉 경주마처럼 눈을 옆을 못 보도록 앞만 보도록 한 경주마처럼 우리는 앞만 바라보아야 한다. 앞에 누구? 즉 예수 그리스도 믿음의 주인이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이, 율법의 완성자요, 완전하신 우리 삶의 주인을 바라보고 뛰면 십자가를 끝까지 참아내신 예수님처럼 앞만 향해 달려가면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 즉 하나님 품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게 바로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이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이라는 사실입니다. 앞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나라에서 함께 만나 하나님 품에 안기시고 참 평안을 함께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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