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4.25 | 사무엘하 9장 1-13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하 9장 1-13절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
새벽 묵상
1. 주 보혈로 날 사심은 그 뜻이 깊고 크셔라 상하심과 죽으심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 2. 하늘보좌 아버지 집 겸손히 떠나신 그 뜻 주의 사랑 사랑만이 그 일을 이루셨도다 3. 나는 주의 소유되고 주는 나의 상전이니 그 명령만 따르오리 공의의 옷 입고 살리
놀라와라 주 사랑이 날 위해 죽으신 사랑 놀라워라 주 사랑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 어찌 날 위함이온지 / 누가 지은 찬송일까요? 우리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동생 찰스 웨슬리가 지은 찬송입니다. 형인 감리교의 대표 존 웨슬리 목사님에 가려져서 그의 목회적 여정이 덜 드러나곤 하는데 존 웨슬리 목사님 못지않게 찰스 웨슬리 또한 영국 전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요 찬송가를 집필한 시인이요 작곡가였습니다. 53년 동안 56권의 찬송집, 총 8,989곡의 찬송을 지은, 놀래시지도 않네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찬송가 작사 작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설교로 복음을 전했다면 찰스 웨슬리는 찬송가로 복음을 전한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훌륭한 전도자. 그가 만든 찬송 예를 들면, 만 입이 내게 있으면 , 천부여 의지 없어서, 나 맡은 본분은, 왠일인가 내 형제여, 예수 부활했으니, 천사 찬송하기를 등 참 많은데 방금 전 “어찌 날 위함이온지”라는 찬양도 사실 당연히 우리 찬송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곡입니다. 이 찬송을 묵상하고 youtube나 다른 채널을 통해 많이 들으시면서 특별한 은혜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이 “어찌 날 위함이온지”라는 곡이 왜 특별한가? 복음의 핵심인 구원받은 감격을 아주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자격이 안 되는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신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너무 크신 은혜에 대한 감격이 그대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받은 죄인, 구원받은 감격, 여러분 이게 바로 교회의 본질이요. 신앙의 출발입니다. 다른 형식적인 것들 외형적인 것들로 인해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이 시대에 다시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시면서 용서받은 자로서의 감격의 눈물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구원받은 자, 용서받은 자로서의 감격을 가장 생생하게 표현하는, 비유로 표현하고 있는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하나로 만드신 하나님, 통일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다윗은 우선 내적으로 즉 정신적으로 이스라엘을 정비하기 위해 사무엘하 6장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옵니다. 그 다음은 어제 사무엘하 8장에서 외적으로 이스라엘을 정비하면서 즉 이스라엘 주위의 나라들, 최 강대국 블레셋을 항복시키고, 모압, 암몬, 아람, 에돔까지 모든 주변국들을 하나하나 종속시키게 됩니다. 이렇게 크게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한 다음에 이제 오늘 본문 사무엘하 9장에 이르러 다윗왕은 무엇을 했는가? 자신을 그토록 생명같이 사랑한 요나단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면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고 요나단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합니다. 그래서 7절 보십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이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입니까? 비록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왕의 위협으로 인해 수년 동안 도망자 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래서 사울 족속이면 아주 지긋지긋하다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신을 사랑한 그 받은 사랑이 더 크기에 그 사랑을 보답하고자 했던 다윗
우리가 여기서 집중하면서 얻어야 할 교훈은 우선 1. 첫 번째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절 보십쇼.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여러분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보십쇼. 왕자들 사이에서 세력다툼을 하다가 일단 세자가 되고 주상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동안 주상이 되지 못하게 호시탐탐 위협을 했던 세력들을 하나같이 귀향 보내거나 제거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다윗의 시대에도 새로운 왕이 들어서면, 반역의 화근을 없애기 위해 이전 왕족을 몰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당시의 전통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하여 은총을 베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은총은 다윗이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혹은 우정 때문이었다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은총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헤세드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헤세드는 어떤 단어입니까? 하나님만이 쓰실 수 있는 단어로 하나님의 약속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 그게 헤세드입니다. 그러니까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 언약을 맺었는데 그 언약 위에 하나님의 헤세드의 은혜가 임했다는 사실,
사무엘상 18장 3절에 보면 요나단이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하면서 더불어 언약을 맺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16절에 보면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면서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나단은 비록 사울왕이 아버지이지만 하나님의 손을 떠났고 하나님 보시기에 어긋난 길을 걸어가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이 왕이 될 것을 바라보면서 비록 아버지가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혈연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더 신뢰하며 약속하면서 다윗을 피신시켜주고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다윗 또한 그 사랑의 진심을 깨닫고 사울왕과의 인간적인 관계를 뒤로 하고 요나단과 좋은 동역자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하며 한 마음이 되었다는 사실. 여러분 자칫하면 원수가 될 수 있었던 관계가 하나님 안에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 여러분 이게 바로 교회 공동체의 본질이요, 신앙의 공동체의 특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처음 교회에 오게 되었을 때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교회에 와서 처음 만났던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았습니까? 왜 따뜻해졌는가? 세상에서 맺을 수 없는 용서받은 죄인의 감격으로 서로 형제자매의 관계를 이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성경을 보니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세우신 약속들이 발견되었고, 계속해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버리고 제 멋대로 살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그 최고의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내가 죄인이었구나. 저 사람도 죄인이었구나. 우리 다 모두 다 죄인이었는데 용서받았구나. 서로 용서받아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구나 이걸 깨닫고 감격하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이게 교회 공동체의 본질입니다. 교회는 비즈니스 하는 곳도 아니고요. 그저 친교모임 하는데도 아니고 동창회 모임도 아닙니다. 딱 하나,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여 하나 되는 공동체 그 곳이 교회입니다. 이 본질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요나단이고 뭐고 나는 그냥 하나님과 나하고만 약속하면 다 된거다. 난 혼자 하나님과 1대 1이면 족하다. 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혹시 상처를 입은 분들이 있다면 빨리 회복하시고 용서받은 형제자매로 다시 연합하시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의 역할과 사명을 발견하시면서 나의 사명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약간 특별한 한 사람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바로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라는 사람입니다. 원래 사울의 종이었는데 므비보셋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우선 이 사람의 이름이 무려 네 번이나 등장합니다. 2절에 두 번, 3절에 한 번 4절에도 한번 이렇게 네 번입니다. 성경에서 종의 이름을 이렇게 4번이나 반복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냥 사울의 종, 혹은 사환이라고 하지 종은 굳이 이름을 쓰지 않는데 왜 네 번이나 쓰고 있을까 뭔가 아주 주목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만큼은 그래도 이 시바라는 사람의 좋은 점 한 가지를 찾으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바로 므비보셋을 다윗왕에게 소개하면서 다윗왕이 요나단의 사랑을 갚을만한 계기를 마련하고 므비보셋을 존귀히 여김 받게 하는 연결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학자들 중에는 3절 끝에 왜 므비보셋을 소개할 때 굳이 다리 저는 자로 소개했겠느냐? 이 시바는 기회주의자다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실제로 사무엘하 16장에 가보면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는 길에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먹을 것을 잔뜩 싣고 다윗 일행을 찾아오고 다윗을 위로하며. 도망가는 다윗에게 자기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모두 자기 것으로 돌리는 교활함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만큼은 딱 하나 장점, 시바가 다윗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과 만나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귀한 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교회 안에서 용서받은 죄인들과 함께 형제자매의 관계를 이룰 뿐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줄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존귀히 여김받게 해 줄 기회, 한 영혼에게라도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아버지를 아버지께로 소개할 사명과 의무가 저와 여러분이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하신 주님의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목놓아 찾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일. 이제는 전도가 불가능한 시대다 하지 마시고 다시 영혼 구원의 불길이 타오르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므비보셋을 만나 은총을 베푼 다윗왕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시고 나의 구원받은 감격이 다시 뜨겁게 회복되시길 바랍니다.
시바의 소개로 다윗 앞에 오게 된 므비보셋, 7절 보십쇼 중간에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사울왕이 가졌던 모든 밭을 준다는 것, 최고의 소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항상 왕의 상에서 왕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여러분 구원받은 것, 용서받은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가 누릴 부활의 소망,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복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 아무 자격 없는 므비보셋이 누리게 될 기적같은 은총에 므비보셋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8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이스라엘에서 개는 아주 수치스러운 가장 심한 욕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죽은 개”라니 이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쓰레기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아마도 므비보셋의 눈가는 온통 눈물 범벅이 되어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똑같은 존재였습니다. 우리 주님이 주님이신지 구세주인지 몰랐을 때는 우리도 죽은 개 였습니다. 그런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독자를 죽이시기까지 한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았고 영생 얻었고 부활의 나라에 들어갈 특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다시 우리의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시고 구원받은 감격으로 뜨거워지는 므비보셋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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