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새벽예배 2022.11.16 | 창세기 47장 23-31절 | 이선기 목사




창세기 47장 23-31절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인터넷 네티즌들이 모아놓은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신기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몇 가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1. 미국에서는 40초당 1명이 자살합니다. 2. 세계에서 처방전에 있는 의사의 악필 때문에 잘못 약을 처방받아 죽는 사람이 1년에 7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3. 음주운전으로 죽는 사람은 1시간에 1명이라고 합니다. 4. 에베레스트 산에는 수습하지 못한 시체가 200여구 있는데 시체가 있는 곳은 대부분 정상 근처라고 합니다. 5. 감자칩 프링글스를 만든 사람은 죽은 뒤 화장을 해서 프링글스 통에 넣어 달라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묻혔다고 합니다. 6. 1923년에 태어난 소련의 남자 80%가 2차 대전 때문에 죽었다고 합니다. 7. 90초당 1명씩 출산하다가 사망한다고 합니다. 8. 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져 죽는 사람은 여태까지 천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9. 하루에 2만 명의 아동이 기아로 사망합니다. 10.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6천명이 바지를 갈아입다가 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이태원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154명의 죽음도 얼마나 황당합니까?

좀 어이없기도 하고 참 여러 가지 이유로 누구든지 갑자기 우리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습니까? 두 가지를 마음에 담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무사히 삶을 영유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하나님 기뻐하실 일들을 행하시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는 장례식이나 천국환송식이라고 하지 영결식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 결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신 고향으로 가신 선배들을 만날 날이 점점 오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잘 준비하시다가 선배들의 환영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왜 갑자기 죽는 이야기로 출발을 했는가? 오늘 본문이 바로 야곱의 죽음 직전의 모습과 준비하는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28절에 야곱이 애굽 땅에서 17년 정도를 살게 된 후에 즉, 야곱이 백사십칠세 정도 되었을 때에 야곱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130세에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땅 애굽에 이주해 와서 17년 동안 살면서 야곱은 그 동안 못 누려왔던 말 못할 기쁨을 다 누렸던 것 같습니다. 앞에 47장 9절에 바로왕 앞에서 참 험악한 세월 보내었나이다 고백했던 야곱이었는데 이제 애굽에서의 삶은 별로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즉 참 평안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남은 여생을 애굽에서 평안히 살았던 야곱과 같이 그런 삶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꼭 그렇게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깨달을 것은 1. 첫 번째로 야곱이 자신의 삶을 은혜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29절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즉 요셉이 인도하여 이렇게 세계최고의 나라 애굽에 와서 살아보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첫 번째로 우리의 모든 삶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신 것을 잊지 말며 사람에게도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제 와 엊그제 본문에서 요셉이 모든 돈과 토지를 아낌없이 빼돌리지 않고 바로에게 그대로 다 드리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로왕이 무서워서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왕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은혜 베푸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도 감사했지만 바로왕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 하나도 남김없이 바로왕에게 드렸던 것입니다. 바로왕은 어땠을까요? 바로왕도 하나님은 모르지만 요셉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꿈을 해석해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7년 풍년동안 온갖 곡식을 잘 저장하고 관리하여 애굽을 점점 부요한 나라 가장 부요한 나라로 세워가는 최고의 신하 요셉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기본은 우선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통로로 사용하시는 내게 은혜 베푼 이들의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이 없었다면 아말렉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바나바가 없었다면 그의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각자 살고 있지만 서로 도우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처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에도 아담과 하와를 서로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이들이 서로 돕는 존재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저는 그렇더라구요. 고마운 마음이 들면 그 시간을 놓치면 결국 못하더라구요. 직접 못 만나면 전화로라도 전화 안 받으면 카톡으로라도 남길 수 있지 않습니까? 기회가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다 표현한 것을 보면 부모가 자녀에게 감사한 마음이 보여 참 흐믓합니다.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하는 표현을 하는 것도 좋지만 부모도 자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가장 으뜸되는 계명을 먼저 주 너의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라 하시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매주일 감사를 표현하시고 주중에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면서 사는 사람이야말로 야곱처럼 인생의 마지막을 가장 잘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임을 기억하시고 마음껏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오는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매주 추수감사주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매주 감사의 표현으로 다 갚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현에 인색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야곱이 가나안에 묻히기를 사모하는 모습에서 돌아갈 본향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야곱의 속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29절 후반부를 보십쇼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손을 허벅지 아래에 넣고 맹세하는 것은 생식기와 관련된 맹세입니다. 즉 생명 걸고 하는 맹세를 뜻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데려오라고 엘리에셀을 보낼 때 똑같이 손을 허벅지 아래에 넣고 맹세한 바 있습니다. 목숨걸고 꼭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요셉에게 너는 목숨걸고 나를 반드시 애굽에서 장사하지 말게 하라는 요구입니다. 30절 보십쇼. “내가 조상들고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개역성경에는 조상의 묘지라고 하지 않고 선영에 장사하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 조상 우리 선조들이 있는 그 곳, 여러분 여기가 어딜까요? 예 막벨라굴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즉 야곱의 할머니가 묻혀있는 곳, 또 아브라함이 묻혀 있는 곳, 이삭이 묻혀있는 곳, 내가 묻혀야 할 곳은 바로 거기 막벨라굴이다. 하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이 막벨라굴이 아주 땅이 좋아서 그랬을까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고향 이상의 의미 즉 가나안 땅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분깃이었음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 막벨라굴이 있는 그 곳이 바로 모든 인류의 구속을 담당하시기 위해 오실 메시야를 위해 예비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는 장례 절차나 음식이나 이런 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나를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저와 여러분도 우리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 오더라도 이 고백을 준비하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나를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즉 나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라. 보이는 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끄는 그 길, 그 장소를 사모하시고 표현하시길 바랍니다. 무디는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날 신문에서 D.L.Moody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으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말을 믿지 마십시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잘 살게 되었다는 것 뿐이니까요." 존 웨슬리의 동생이며 찬송가 작가인 찰스 웨슬리는 소천하기 직전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기쁩니다. 아 만족하다. 만족하다." 거룩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갈 내 본향을 사모하시면서 영광스럽게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야곱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과 아주 가깝게 교제하는 일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31절 보십시오.“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했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먼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대하는 물건이 뭡니까? 침상 머리입니다. 또 자기 전에 마지막까지 우리 눈으로 보고 눈을 감는 것이 무엇입니까? 역시 침상 머리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잘 때나 깰 때나 가장 먼저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잠에서 깨어나서 가장 먼저 무엇을 보십니까? 또 잠들기 전에 무엇을 마지막으로 보고 잠이 드십니까? 혹시 핸드폰 아닌가요? 저한테 하는 말입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하나님 생각하며 잠이 드시고 “하나님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깰 때도 하나님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또 하루 선물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여러분 죽음을 준비하는 게 다른 게 아닙니다. 이게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모습 아니겠습니까?

진짜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제 오늘 본문 앞부분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초반부에 모습은 어제에 이은 이제 애굽의 백성들이 돈도 다 바치고 가축도 다 바치고 심지어 토지까지 다 바치고 종이 되면서 요셉이 23절 종자 씨를 주어 땅에게 뿌리게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추수한 것의 오분의 일을 바치게 하는 애굽의 과세의 기준을 세우는 요셉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애굽 전체 백성을 살리는 요셉을 향하여 백성들이 뭐라고 표현합니까? 이게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입니다. 25절 백성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으니” 요셉을 향하여 최고의 표현인 “주”라고 표현하면서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표현입니다. 뒤에 나오는 야곱의 죽음과 연관지어 보십쇼. 지금 애굽의 모든 백성의 눈에 보이는 요셉의 모습은 바로 메시야였습니다. 즉 장차 오실 메시야, 구원의 주님을 예표하는 모습이 이 순간 요셉에게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후반부에서 비록 야곱은 하나님의 때가 되어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소망이 있는 것은 마치 애굽 백성을 다 살려낸 요셉처럼 죽음까지 이기시고 온 인류를 구원해 내신 우리 주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죽음을 넘어 영원한 나라에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죽음의 순간이 갑자기 찾아올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팔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