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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머리는 짐만 무겁게 한다

새벽예배 2022.12.20 | 전도서 7장 15-29절 | 이선기 목사




전도서 7장 15-29절


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23.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24.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연구하여 악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27. 전도자가 이르되 보라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연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니라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새벽 묵상


옛날 어느 선비가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먼 곳으로 가기 때문에 식량, 취사도구, 책, 옷, 일용품 같은 것을 준비해 가지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비는 하인들을 데리고 길을 떠나기로 하고 하인들에게 지고 갈 짐을 하나씩 맡으라고 하였습니다.

평소에 일을 싫어하고 꾀만 부리기를 좋아하던 하인들은 책이나 옷가지 같은 아주 가벼운 짐을 먼저 지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항상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던 하인은 무거운 쌀자루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하인들은 “바보 같은 녀석, 저 쌀자루는 우리 짐보다 두 배는 무거울 거야 순발력이 부족하면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한다니깐. 요령이 있어야지!” 하면서 쌀자루를 진 하인을 비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이 점심 때가 되었습니다. 일행은 쌀자루를 풀어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부지런한 하인의 짐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또 시간이 흘러갑니다. 해가 지고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일행은 또 쌀자루를 풀어 또 밥을 해 먹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지런한 하인의 짐은 점심 때보다 훨씬 더 가벼워졌습니다. 길을 갈수록 쌀자루는 점점 더 가벼워졌지만 다른 짐들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여행이 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쌀자루를 진 하인은 거의 빈손으로 가벼운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다른 짐을 진 하인들은 계속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갯길을 넘어가야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누가 더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잔머리는 짐만 무겁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장 나만 편하면 되지 하고 쉽게 가려고 하다가 더 힘들어지지 마시고 주어진 일에 좀 우직하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교육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지식을 전달하거나 잘 알려주는 것을 교육으로 여깁니다. 그런 교육을 받으면 잔머리 쓰는 사람밖에는 나올 수 없습니다. 교육이 그저 지식전달이라면 사실 학원교육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교육은 지식뿐만이 아니라 인격을 만들어내는데 그 주요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인격형성은 인간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르게 형성시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교육”은 성경의 지식만을 전달하는데 그 목표가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는 바른 신앙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형성시킵니다. 그 기독교 교육의 목표가 바로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얻게 하는 기독교 교육, 잠언 9장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셨는데 오늘 본문 29절도 보십쇼.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하셨는데 꾀들을 내거나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우선 1. 첫 번째로 지혜는 능력이라고 표현합니다. 19절 보십쇼.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여기서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은 누구일까요? 성주들, 성의 대표자들을 의미합니다. 강력한 성의 성주 10명이 지혜로운 자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표현입니다.

기드온이 단 300명의 군사로 십만이 넘는 미디안 군대를 무너뜨린 사건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의 합작품이었습니다. 처음에 모인 32,000명의 용사만으로도 사실 미디안과 싸우기에는 턱없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싸움은 단지 군사의 숫자나 다른 군사력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시고자 32,000 중 31,700명의 오합지졸을 구분해 내십니다. 두려운 자들 집에 가라 했더니 22,000명 돌아가고, 10,000명 남습니다. 남은 10,000명 중에 물 마시러 내려가라 했더니 9,700은 무기도 내려놓고 허겁지겁 물을 마십니다. 한 손으로 창을 잡고 한 손으로 개처럼 물을 핥아 먹는 300명이 추려집니다. 그 300명 가지고 횃불을 항아리에 감추고 나팔을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십만명 넘는 미디안 군대를 전멸시키십니다.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으신 하나님의 지혜로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 대해서 다니엘서 초반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1장 17절 “하나님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이방 나라, 포로생활 가운데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 때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귀한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이 솔로몬, 솔로몬이 바로 최고의 부와 명성과 최고의 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에 있었다는 사실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지혜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지혜는 주변 평가에 초연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21절 보십쇼.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사람들의 평판에 흔들리지 말라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원래부터 이기적으로 내가 보는 편협한 시각으로만 바라보기에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기 때문에 그런데 너무 연연하다보면 낙심하거나 혹은 우쭐하기 쉽다 하는 교훈입니다. 21절 앞에 20절 보십쇼.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즉 모든 인간은 아주 쉽게 죄를 범하는 존재이기에 전혀 죄 없는 의인은 세상에 없다 하는 표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핑계대는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아담아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아니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만드신 저 여자가 주므로 먹었습니다. 남자답게 죄송합니다. 하나님 제가 죄를 지었사오니 부디 내 아내 하와는 벌하지 마옵소서.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하와를 잘 돌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먹었나이다. 제 남편 아담은 제가 주니까 먹었을 뿐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먹었으니 다 저 때문입니다. 저만 벌하여 주옵소서. 이래야 멋진 것 아닙니까? 아담도 하와는 다 남의 탓만 하다가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 아담과 하와에게서 비롯된 죄성으로 인해 결국 죽을 존재가 되고 말았던 죄성을 가진 인간들을 보면서 편협하고 상당히 주관적인 인간 때문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지 말라는 전도자 지혜자의 교훈입니다. 22절 보십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즉 저와 여러분도 모두 다 이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사람은 다 그렇게 편협한 존재이니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람의 이야기에 흔들리지 말라. 네 주관을 가지고 확고하게 밀고 나가는 자가 지혜자다 하는 교훈입니다.

여러분 한국에서 목사님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상담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상담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조용기 목사님도 목회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시어머니 며느리 상담이라고 하셨습니다. 요즘에는 시어머니랑 며느리랑 따로 살기에 문제가 적지만 예전에 같이 살 때에는 시어머니 권사님이 와서 하소연 하면 목사님은 시어머니 권사님 말만 듣고 이렇게 권사님께 답하셨습니다. “아니 어찌 그리 못된 며느리가 다 있나. 권사님 마음 아프셨겠다. 세상에 그렇게 어머니에게 함부로 하는 며느리가 있다니” 하고 혀를 찼답니다. 며칠 후에 며느리 집사님이 찾아와서 시어머니 권사님에 대해야 이야기하는데 시어머니 권사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랑 180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아니 그렇게 못된 시어머니가 다 있나? 이렇게 착한 며느리를 구박하다니...내가 들은 게 상당히 잘못 들은 거네요.. 집사님 시어머니의 핍박을 견디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했답니다. 며칠 후에 주일에 이번에는 시어머니 권사님과 며느리 집사님과 같이 목사님을 만났는데 목사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목회 상담 공부할 때도 시어머니랑 며느리 상담은 가능하면 피하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 입 가지고 두 말이 아니라 한 이십가지 말을 듣게 된다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주변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방주를 만들지 못하고 함께 익사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귀가 안 좋아져서 잘 안 들려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아! 사람의 말에 이리 저리 흔들릴까봐 잘 안들리게 하셨구나! 하나님, 하나님 말씀에만 집중하겠습니다. 하시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19세기 설교의 왕자 스펄전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의 말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분의 귀를 멈추는 것입니다. 듣는 것에 마음 두지 마시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하십시오.”

너무 사람의 말,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초연하는 자가 지혜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사람의 말 듣다가 이리 저리 흔들리고 상처받지 마시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면서 사람의 말에 초연한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지혜는 심지어 배우자의 중요성도 깨닫게 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26절 보십쇼.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여러분 솔로몬은 많은 이방 아내들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여인들의 부드러운 손이 올무나 그물이나 심지어 포승줄 같이, 경찰들이 범죄자 묶는 포승줄 같이 솔로몬을 포박해서 죄의 감옥에 가두게 되었다는 사실, 결국 이 이방아내들 때문에 산당을 지어주고 우상 섬기는 것을 허용하다가 솔로몬은 마지막이 좋지 않은 왕이 되고 맙니다.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도 생각해 보십시오. 원래 아합은 그렇게까지 잘못된 왕은 아니었는데 이세벨 때문에 사람도 함부로 죽이는 이세벨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표적인 악한 왕의 대표로 평가받게 됩니다. 잠언 21장 19절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여러분 아내만 문제일까요? 옛날 우리나라보다 남존 여비가 심했던 이스라엘 사회였기에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지 오늘날로 표현하면 정 반대로 고통 겪는 아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편 잘못 만나서 고생하고 고통겪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투며 성내는 남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사람은 다 믿을 존재가 아니다. 사람의 말도 들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하면 됩니다. 능력의 하나님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고 그 뜻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지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이번 성탄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집중하시고 영적인 귀를 기울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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