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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고 영원하며 높으신 분

새벽예배 2023.09.11 | 히브리서 7장 1-10절 | 이선기 목사




히브리서 7장 1-10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새벽 묵상


갑자기 출연했다가 홀연히 없어진 사람, 어디 출신인지 누구의 아들인지 부모도 모르고 족보도 없고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 사람, 그러나 가장 높은 왕인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여러분 누구입니까?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교회 전교인 퀴즈대회에서 나왔던 문제입니다. 어떤 할머니 권사님이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홍길동?

이 특이한 문제를 맞히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머리 큰 국민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이름은 바로 이선기였습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제가 6학년에 맞추었던 문제입니다. 답은 홍길동이 아니라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멜기세덱이란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이 멜기세덱은 성경에 3군데 혹은 4군데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창세기 14장, 시편 110편 그리고 오늘 본문 히브리서 7장에 가장 길게 설명되어진 인물입니다. 본격적으로 멜기세덱을 소개하고 있는 것은 오늘 7장인데 그 전에 앞에 5장 6절과 10절에 아주 짧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는 언급이 되어 있긴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로마 제국의 박해를 틈타 복음을 훼방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위험으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 올바른 기독론을 변증할 필요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시 유대 사회에서 모세보다 열등한 존재로 그저 구약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대제사장으로 소개하고 싶어도 당시 제사장은 오직 레위 지파에서만 대대로 전수되고 있었기에 유다지파 출신인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 면에서 주인공이신 것을 놓치고 있는 이들이 있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 어떤 존재이신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그들에게 필수적이라고 느낀 히브리서 기자는 앞에서 그리스도가 얼마나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이심을 밝힌바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이 누구인지를 자세히 밝히면서 예상했던 대로 역시 또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주인공 되심을 다시 또 강조하고 있습니다.

과연 멜기세덱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으시고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지를 깨닫고 오늘도 또다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지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 되시고 예수님 닮는 그리스도인의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첫째로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절부터 보겠습니다. 2절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우선 문자적으로 멜기세덱이란 이름의 뜻이 문자적으로 의의 왕입니다. 멜기세덱에서 멜기는 멜렉의 변형 즉 “왕”이란 뜻이고 그래서 아비멜렉 기억하시죠? 세덱은 체데크, 즉 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의의 왕” 여러분 “의”가 무엇일까요? 마틴루터는 이 “의”가 무엇인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무릎으로 성당을 기어 올라가면서 수행하면 의로워진다는 사제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열심히 올라가는데 자꾸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무릎으로 올라가면 무릎만 아프고 관절염만 걸릴 뿐이지 이게 뭔가?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루터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답을 알려주십니다. 즉 의롭게 되는 것은 그게 아니다. 행함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내가 뭘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의,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고 해 주시는 “칭의” 여기에서 의가 무엇인지를 발견했습니다. 감리교에서는 선재적 은총이라고 하는데 내가 뭘 하는게 아니고 먼저 찾아오셔서 나보다 나를 먼저 사랑하시는 은혜, 여러분 이게 바로 다른 종교와 우리 기독교의 차이 아닙니까? 기독교 말고 모든 종교는 다 인간이 신을 찾아갑니다. 절을 수천 번 한다든지, 돈을 많이 바친다든지, 굿을 하던지 하면, 인간이 어떤 경지까지 갈 수 있다. 그런데 기독교는 다르죠.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먼저 아래로 오셔서 우리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갚을 수 없는 그 은혜, 자격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죽어주신 그 위대한 사랑. 다시 2절 끝에 보십쇼. “그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여기서 살렘은 샬롬, 즉 평화, 평강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평화를 이루었습니까? 먼저 아래로 찾아오심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심으로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기독교의 방향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아래로의 방향성을 늘 기억하시면서 저와 여러분도 의로운 그리스도인, 샬롬의 그리스도인 되시길 바랍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형들을 만날 때 자신을 낮추고 평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십쇼. “형님들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께서 큰 구원으로 생명을 보존하시려고 나를 형님들 앞서 보내셨습니다”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사람이 영적으로 큰 사람입니다. 먼저 미움의 관계를 깨고 용납하는 사람이 주님 닮은 사람입니다. 그게 기독교 정신입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저 인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하시는 분은 아직도 먼 사람입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자신을 낮추시고 의의 왕, 평화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 멜기세덱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

2. 두 번째로 멜기세덱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항상 제사장이었습니다. 3절 보십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여러분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 직분이 아론의 혈통에서 나온 레위 지파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직분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졌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분명하고 레위지파인 제사장들은 25살부터 30살까지 5년 동안 제사장으로서의 수련을 쌓은 뒤 30세부터 50세까지 현역으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 이토록 제사장의 기준이 엄격하고 분명한데 멜기세덱은 도대체 그 어느 것 하나 제사장 조건에 맞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예표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즉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기에 당연히 아비도 없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마리아에 제한되지 않는 그리스도의 먼저 존재하심. 그래서 어머니도 없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고아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시작과 끝이 없는 제한이 없으신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시작도 끝도 되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분이라는 사실. 이렇게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고 시작이 되시고 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사역을 하시기에 그 사역은 일시적인 사역이 아니라 무한하며 영원하다는 사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의 제사장들은 그 정해진 시간동안 즉 제사장으로서 정해진 20년 동안 1년에 몇차례만 중보사역을 감당하게 되는데 영원한 제사장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영원한 중보자이심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시는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 까지 아니 세상 끝날 이후에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만물을 지으시고 죽음 이후에 영원한 삶까지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데 우리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너무 작은 데 연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쓰다가 없어질 것, 영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끝이 없는 분을 의지하는 자 되시길 바랍니다. 돈이 너무 좋지만 너무 돈 돈 하다보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건강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를 썼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육신이 다 되었다. 얼마 못 쓴다 하는 선고를 갑자기 받으면 얼마나 황당하고 절망스럽겠습니까? 지금 우리 가진 육체에도 너무 연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집도 그렇습니다. 자녀도 그렇습니다. 젊음도 그렇습니다. 저도 염색해서 그렇지 어느 날 거울을 보니 흰머리가 너무 많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도 제 나이때 완전 흰머리 백발이 되셨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너무 집착하다가 세상 끝날까지 아니 끝날 이후까지 우릴 인도하시는 하나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멜기세덱은 가장 높은 왕이었습니다. 4절부터 10절까지가 그 표현입니다. 4절 보십쇼.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창세기 14장의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고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을 가지고 올 때에 멜기세덱왕을 만난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4절 후반 절에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여기서 십일조가 시작이 되었는데,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는 것은 충성과 헌신의 의미입니다. 마치 하나님께 드리듯이 멜기세덱에게 충성과 헌신을 맹세하는 뜻, 그러니까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존재라는 의미입니까?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렇게 멜기세덱에게 충성과 헌신의 의미로 십분의 일을 드렸다. 그러니까 멜기세덱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과 헌신을 다짐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5절 레위 자손 중에서 제사장이 된 이들,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즉 아브라함의 직계 후손도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는데, 6절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다. 즉 멜기세덱이 얼마나 크고 높은 존재인지 알라는 의미입니다. 멜기세덱은 무엇을 했는가? 6절 맨 뒤,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여러분 복을 비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거죠.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과 에서에게 한 것처럼. 그러니까 지금 계속해서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존재인지를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즉 멜기세덱이 예표하는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 일시적으로 높은 자가 아니라 영원히 높임 받을 존재다. 9절과 10절 레위 지파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나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일뿐인데 멜기세덱이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나님, 영원히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높은 존재라는 표현입니까?

이렇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높은 분, 가장 높은, 더 높은 존재가 없이 높은 분이신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다면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큰 빚을 진 황송한 존재입니까? 오늘도 아니 평생 동안 너무 큰 사랑 받은 빚진 자의 마음을 품고 감격 속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고 전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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