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 형체, 영광

새벽예배 2022.06.07 | 고린도전서 15장 35-49절 | 이선기 목사



고린도전서 15장 35-49절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새벽 묵상

연못 바닥에 애벌레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연꽃줄기를 타고 물위로 올라간 수많은 자기의 친구들이 함흥차사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부터 누구든지 일단 물위로 올라간 후에도 반드시 연못 속으로 되돌아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꼭 이야기하도록 서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 중 하나가 연꽃 줄기를 타고 올라와서 물위에 떠있는 연꽃의 넓은 잎사귀 위에 앉아 완전히 탈바꿈을 하여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잠자리로 변했습니다. 그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물속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연못 위로 날아다니면서 연못 속에 있는 친구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무리 물속에 애벌레들에게 소리치고 소리쳐도 애벌레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으로 변한 잠자리가 바로 자기들과 같이 있었던 애벌레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어떤 애벌레도 깨달을 수 없었기에 잠자리는 답답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설교의 왕자라고 불리는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이 어느 날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는 불량소년을 보았습니다. "아이야 새를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그랬더니 소년은 대답합니다 "괴롭히다가 죽일 거예요". 스펄전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돈 2파운드를 아이 손에 쥐어 주고 그 새를 사서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이틀 후 부활주일.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귀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내어주심으로 죽게 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못 바닥에 사는 애벌레들은 전혀 모르는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삶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독생자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참 자유를 주시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신 하나님의 사랑, 게다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부활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감격과 소망 다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또 부활에 대한 말씀 부활장 고린도전서 15장 총 5개의 부분 중 네 번째 부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제는 부활의 진행과정과 자랑할 것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육체의 부활을 의심하던 일단의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바울이 부활의 사실성과 그 원리를 깨우쳐 주는 부분입니다. 사실 바울이 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쓸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영혼 불멸 사상은 믿으나 육체의 부활은 믿지 않는 헬라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이성적이고 초경험적인 부활의 교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앞에 1절부터 34절에서 부활의 확실성이나 부활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후 바로 오늘 본문에서 부활의 몸의 상태와 그 본질 및 사망에 이를 육체와 영원한 생명에 이를 형체의 차이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바울이 깨우쳐 주려했던 부활의 원리를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바울이 썼던 단어의 차이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39절에 나오는 “육체”라는 단어와 40절에 나오는 “형체”라는 단어 그리고 41절에 나오는 “영광”이란 단어입니다.


1. 첫 번째로 “육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사르크스 라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눈에 보이는 육신, 피부와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의 팔다리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사르크스, 육체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 14절에서 이 사르크스를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악의 개념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는 이 육체에 집착하고 육체만 아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을 수 있는 이들이 있었기에 이들에게 큰 의문이 생겼는데 35절 오늘 본문 첫 번째 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즉 우리 육체의 한계를 경험으로 아는데 이 육체는 관에 들어가면 흙 속에서 썩어 냄새도 나게 될 텐데 어떻게 살아나느냐? 그래서 “어떻게 다시 살며”라는 문장에는 이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는 선입견이 느껴집니다. 여러분 반 기독교인들, 무신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바로 이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여지는 것,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 내가 만질 수 있거나 이래야만 믿지 그렇지 않은 경우 다 거부합니다. 바울은 이런 이들을 향하여 호칭을 붙입니다. 36절 “어리석은 자여” 헬라어로 “아프론”하고 부르면서 씨 이야기의 비유를 들어서 육체에만 집착하여 사는 이들의 한계를 정확히 지적하게 됩니다. 36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절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일 뿐이로되” 그저 보이는 알맹이 밖에 모르고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즉 흙 속에서 씨앗이 완전히 죽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이 살아나는 원리, 그 하나님이 만드신 신비한 원리를 땅 속에 있다고 안 보인다고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여 하는 책망입니다.

여러분 지금 혹시 그저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거기에 치우쳐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으로 새로운 생명이 소생하는 것 같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것들을 놓치며 사는 우리들이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젊을 때에 건강, 아름다움, 지식, 명예, 명성, 여기에 사로잡혀 집착하는 사람은 과거만 동경하며 지금과 비교하여 후회가 되고 한탄이 나오며 결국 지금 내 모습에 너무나 초라하고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옛날에는 대단했었는데, 내가 한창 때는, 나도 젊을 때는...열심히 말씀하시다가 그런데 지금은 이 모양 이꼴이 되었으니...여러분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모습을 좋아하시겠습니까?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과거보다 지금이 더 중요합니다. 과거는 추억이요. 지금은 선물입니다. 잠언 16장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노인이 되는 것은 기다리고 고대하던 면류관이 가까워 왔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곧 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지나온 과거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에 할 일 씨앗이 죽어 새롭게 살아날 새로운 생명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지금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데 보람을 느끼시면서 또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구원받은 감격으로 기뻐하시고 더 찬란할 내일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 단어는 “형체”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쏘마”라는 단어입니다. 이 쏘마는 사람이나 동물의 신체, 그 조직체를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39절에 눈에 보이는 사르크스, 육체와 구별된 조직체인 형체, 즉 신비한 부활의 몸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몸을 보이실 때 그전까지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헬라어가 갑자기 등장하는데 바로 몸이란 단어 헬라어로 쏘마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몸 쏘마는 부활의 몸으로 도마가 주님의 몸을 만질 수 있었던 것처럼 직접 만질 수도 있고 사르크스와 완전히 다른 신비한 몸이라는 사실, 38절 보십쇼.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40절 보십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44절에는 형체라는 번역대신 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44절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다 쏘마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엘리야나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부활의 몸 쏘마가 아니었습니다. 싸르크스 그냥 육체였습니다. 아마도 올라가면서 육체는 없어져 버렸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주님만이 이 땅에서도 만져질 수 있고 영원한 나라에서도 그대로 존재할 신령한 몸 쏘마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바라기는 지금 내가 가진 이 육체 말고 신령한 몸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자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고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져도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소망을 육체에 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질 지라도 불속에라도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육체는 타 죽을지라도 타죽지 않는 영원한 신령한 몸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신령한 몸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기도하기를 계속한 것도 역시 이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들어간 풀무불 속에서도 세 친구들의 머리털 하나도 그슬리지 않게 지켜 주셨고, 사자굴 속에 들어간 다니엘도 육신 어디 상한 곳이 없이 안전하게 사자의 입을 틀어 막아주셨습니다.

육신의 질병 때문에 고통 죽에 있는 분들 있습니까? 우리 앞에 신령한 몸 신비한 몸, 쏘마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지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반전의 능력을 기대하시고 체험하시고 멋지게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영광입니다.

헬라어로 “독사”라고 하는데 40절 중간부터 보십쇼.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여러분 41절에 “해의 영광이 다르고”라고 했기에 “달의 영광이 다르고”라고 했기에 해나 달이 영광을 받는다는 뜻인가? 그게 아닙니다. 저 위대한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영광을 받으신다. 달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신다. 별의 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별을 만드시고 별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 돌릴 영광이 다르다는 표현입니다.

아주 특별한 것은 이 영광, 독사라는 단어는 오직 딱 한분 하나님께만 영광 돌릴 때만 사용하는 즉 하나님의 완전성, 하나님의 탁월성, 하나님의 임재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만 특별히 사용되는 표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인공은 육체의 한계를 가진 동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부활의 나라에 들어갈 형체, 신비한 몸을 주시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심을 특별히 기억하라 전하는 바울의 메시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독사, 즉 유일하게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그 특별하신 하나님을 마음에 간직하시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면 절대 잘못된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의 육체가 다할 그 날이 갑자기 온다 해도 곧 신비한 몸을 입게 되고 영광의 하나님과 밝은 얼굴로 만나게 될 것을 믿고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