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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새벽예배 2023.03.08 | 사무엘상 20장 12-23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20장 12-23절


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18.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19. 너는 사흘 동안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20.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화살 셋을 그 바위 곁에 쏘고

21.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22.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새벽 묵상

여러분 영어로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I will eat my hat” 나는 내 모자를 먹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 표현을 한국말로 아주 잘 번역해 놓았는데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는 뜻입니다. 절대 불가능한 일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쓰는 표현이죠. 그런 일은 절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런데 여러분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고 합니다. 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말의 유래와 어원을 두고 두 가지 혹은 세 가지의 주장이 있는데, 우선 장을 손바닥 장(掌)으로 보는 쪽에서는 ‘내 손을 뜨거운 걸로 지지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내 손에 손을 지지겠다는 이상한 표현이 되어, 같은 말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지 말고 그냥 ‘내 장을 지진다’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장을 간장의 장(醬)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요, 고기나 채소에 간장을 붓고 졸이는 것처럼 손가락을 끓는 간장에 지진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부엌에서 간장을 지지면서 손을 데어본 경험이 있는 부인들한테서 나온 주방용어에서 유래했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불교의 소지공양(燒指供養)과 연관 지어 해석하기도 하는데, 수행을 위해 손가락을 태우는 것처럼, 손가락이나 손바닥에 불을 붙이고 그 화력으로 간장을 달인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뭐가 맞을까요?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표현이 그냥 내 손을 지진다로 해야 할까요? 아니면 내 손바닥 위에 불을 붙이고 간장으로 달인다. 라고 음미하고 이 표현을 써야 할까요? 여러분 맘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 표현을 우리가 아무리 써서 표현해도 우리 인간은 결코 믿을 존재가 아니고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표현하고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정말 손을 지지든지, 손바닥 위에 불을 붙이든지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말, 그리고 사람 자체를 신뢰하지 말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사람을 창조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며 살았던 사람 요나단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어제 우리는 요나단이 다윗에게 있어서 얼마나 좋은 상담가였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의 영혼을 너무나 사랑한 사람, 그리고 아버지 사울왕과 상관없이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하면서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했던 다 내어주었던 사람 요나단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요나단의 특징, 요나단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이었는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하나님 기준으로 살았는지가 확연히 드러나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이 또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다 두려워하는 다윗에게 말합니다. 내일이나 모레 내가 아버지 사울왕을 만나서 그 의향을 살필 것이다. 12절 보십쇼.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주목할 것은 그냥 내가 내일이나 모레 아버지를 잘 살펴볼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인삼아 살펴보겠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다 보고 계시니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약속하겠다는 표현입니다. 즉 진리 되시는 하나님, 모든 것의 기준이 되시는 흔들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맹세하고 하는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교훈을 발견하는데

1. 하나님은 진리 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요나단에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만이 진리이심을 믿으십니까? 그 믿음에 추호도 흔들림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취하고 다곤 신전에 둔 블레셋 사람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나머지는 우상일 뿐이다. 거짓이고 그저 허수아비 그냥 만든 형상일 뿐이다. 이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둔 것입니다. 다음날 보니까 다곤신상이 엎드러져 언약궤 앞에 절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두려워하며 깨달아야 하는데 또 원래대로 세워둡니다. 또 그 다음날 보니 어떻게 되었다고요? 역시 다곤 신상이 쓰러져 있는데 그 머리와 두 손이 잘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나머지 형상은 그냥 두 손 못쓰는 쓸모없는 돌덩어리라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니까 진리되시는 하나님을 모르니까 블레셋 여기서 저기 저기서 또 다른 곳으로 계속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기고 또 옮깁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옮기는 곳마다 전염병으로 하나님이 그 지역을 치십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깨달아야 하는데 워낙 이 블레셋인들이 무지하여 마지막에는 원래대로 돌려보내 보자 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젖나는 소 두 마리를 하나님의 언약궤 실은 수레를 끌게 해서 새끼들 있는 쪽으로 빠지면 그러면 그렇지 그냥 우연이었어 가 되는 것이고 직진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다. 어떻게 됩니까? 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직진하게 됩니다. 진리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유일한 살아계신 하나님,

한국에 서대문구 냉천동에 제 모교 감리교신학대학교에 가면 예배실에 아주 중요한 한 문장이 헬라어로 써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 “헤 알레쎄이아 엘류세로세이 휘마스!” 즉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나님만이 진리이심을 깨닫고 참 진리를 전하는 목자가 되어 세상에 나가서 목회하라. 많은 영혼들을 옳은 곳으로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께로 인도하라. 그 문구를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던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진리이심을 깨닫게 되면 삶이 분명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이 땅에 왔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결국 어떻게 인생을 마감하게 될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다 깨닫게 됩니다. 진리 되시는 하나님만이 답할 수 있는 그 신비한 비밀, 그 비밀을 깨닫고 진리 되시는 하나님 붙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갈멜산에서 850명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이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하루 종일 자기들이 믿는 바알 아세라가 진리인 줄 알고 춤추고 노래하고 목이 터지라 외치고 또 외쳐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형상이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엘리야 선지자가 진리 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드러냅니다. 제단에 물을 부으라 더 부으라, 또 부으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진리의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셔서 제물을 태우실 뿐만이 아니라 도랑에 고인 물까지 싹 걷어가 버리십니다.

하나님과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는 여러 길 중에 한 길이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다. 내가 곧 유일한 길이라는 표현이십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에 다시 진리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열정이 살아나시고 확신이 더 확고해지시고 더 당당해지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 진리 되신 주님을 든든한 빽으로 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요나단은 하나님은 정확히 판단하시고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요나단이 했던 말 중에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신다”는 표현이 오늘 본문 전체에 참 많이 나오는데 12절에 두 번 13절에 두 번, 14절에 한번 15절에 한번, 16절에 한번, 마지막 23절에 한번 이렇게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가 두 번씩이나 나온 13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13절에 중간에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그 다음도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하신 것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무슨 표현입니까?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또 옳은 길을 가는 다윗과 함께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정확히 판단하시고 공정한 분이신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15절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버리지 말라 하고” 여기서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대적할 자 없는 하나님께서 강하게 심판하신다. 공명정대하게 판단하시고 악인을 패망케 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요나단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처음 골리앗을 물맷돌로 때려눕힐 때부터, 미갈을 아내 삼기 위해 블레셋 군사 200명을 물리치고 올 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시기 질투심으로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옳지 못한 추격을 하고 있는데 다윗은 처음부터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옳은 길로 걸어가고 있구나. 결국 아버지 사울왕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새로운 왕으로 다윗이 등극하겠구나. 그래서 지금 15절 보십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즉 다윗, 네가 이스라엘에 2대 왕이 되겠구나. 다 대적들을 물리치고 난 후에 왕이 되어도 나 요나단을 기억하고 내 집에 인자함을 영원히 끊어버리지 말라.

우리가 정리하며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악인이 아무리 이기고 우세한 것 같아도 공정하신 심판의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결국 의인을 승리케 하신다는 것, 끝까지 하나님 손을 놓지 아니하고 의로운 길, 하나님이 보실 때 옳은 길을 가고 있으면 결국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고 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억울해도 조금 더 기다리시고 의로우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분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23절 보십시오.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하니라” 여기서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여러분 성경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고귀한 표현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사이에 계시는 하나님, 이 세상을 지으시고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나 사이에 임재해 계신다는 표현,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오늘 이 새벽에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저 사이에 바로 이곳에 임마누엘 하신다는 사실..여러분 감사와 감격이 넘치시기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실 정도로 우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사이에 계심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영원토록 계시느니라. 여기서 영원토록이 그 유명한 히브리어 “올람”입니다. “영원하신 팔 밑에”라는 뜻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 사이에 계셔서 영원하신 팔로 우리를 지키시고 죽음 이후에 영원까지 우리를 팔 밑에 안전히 보호하시고 지키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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