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2023.03.21 | 사무엘상 25장 23-35절 | 이선기 목사
사무엘상 25장 23-35절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34.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35.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새벽 묵상
여러분 우리 한국 속담 중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무슨 의미일까요? 옛날 한국 가족문화에서는 며느리가 시댁에 들어오면 귀머거리 삼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으로 그저 온갖 갈굼과 상처를 견디며 시댁에서의 생활을 견뎌냈어야 하는 시대였는데, “출가외인이다”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떻게 해서든지 시댁에서의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었던 그 때에 시어머니들이 며느리 구박을 많이 하면서 심지어는 며느리를 때리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때릴 때에 옆에서 말리는 시누이가 있는데 그 시누이가 시어머니를 말리면서도 조곤조곤 며느리에게 하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 더 상처가 되는 말이었기에 차라리 때리는 시어머니가 낫다 하는 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속담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말이 얼마나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매를 맞으면 그 때만 잠시 아프고 마는데, 이 말이라는 것은 계속 가슴에 남아 참 오랫동안 길게는 죽기 직전까지도 가시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8절에 “혀는 능히 길들이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라고 했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의 위험성을 늘 기억하시면서 누구에게든지 가까운 가족에게도 항상 조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 하나는 시누이가 며느리를 미워하는 이유, 그리고 며느리가 시누이를 미워하는 이유를 살펴볼 수 있는데 정신의학적으로 추론해 볼 때 “전치”라는 정신 기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치가 무엇인가? 자기의 화난 것을 다른 사람에게 특히 만만한 상대에게 화풀이 하는 것을 전치라고 합니다. 아마도 그동안 살면서 시누이는 오빠나 엄마에게 화가 난 것을 며느리에게 풀고 있는 것이요, 며느리는 시댁이나 남편에게 화가 난 것을 만만한 시누이에게 푸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누이가 그냥 별 의미 없이 하는 말인데도 며느리 당사자에게는 큰 상처로 들려질 수 있고 시누이도 왜 며느리가 저렇게 버릇없이 우리 엄마한테 행동하나 하면서 며느리를 오해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을 지내는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침묵하심을 닮아 말을 아끼고 다른 사람에게 말로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할 때에 시누이, 며느리 만만한 사람 찾아 푸는 자 되지 마시고 우리의 친구 되시는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시기를 그래서 스트레스는 없어지고 근본적인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위로하고 심지어 화를 누그러뜨리고 실수하지 않게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모든 힘든 것들을 철저히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은 여인 아비가일의 지혜와 행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부자였지만 바보 멍청이였던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은 어제 말씀드린 대로 나발의 하인 중에 지혜로운 하인의 보고를 듣고 급히 음식들을 챙겨서 다윗에게 달려갑니다. 어제 본문에 말씀드린 대로 예물을 먼저 보낸 아비가일은 다윗 일행을 만나면서 철저히 다윗 앞에 엎드립니다. 23절 보십쇼.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어제도 다윗 만나기 전에 급히 음식물을 준비했는데 오늘도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심지어 얼굴을 땅에 대어 절했던 아비가일. 24절 앞부분을 보십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구체적으로 발에 엎드렸다고 표현한 것은 멀리서 하는 둥 마는 둥 엎드린 것이 아니고 그 더러운 발 앞에 엎드렸다. 더 낮아질 곳이 없이 완전히 땅바닥에 엎드렸다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아비가일은 당대 최고의 부자 나발의 아내, 귀부인 중에서도 귀부인이었습니다. 여러분 부자는 느리게 움직입니까. 빨리 움직입니까? 느리게 움직입니다. 얼굴을 함부로 땅에 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비가일은 부자인 것도 벗어버리고, 체면 자존심 다 버리고, 얼굴을 땅에 대면서 즉 다윗을 임금으로 대하면서 최고의 예의를 갖추며 낮아지고 더 낮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다윗이 곧 왕위에 오를 것을 아는 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아비가일이 얼마나 겸손한 여인이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첫 번째로 이 아비가일의 겸손함을 본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슈바이처의 3등칸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위대한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있었던 일화입니다.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슈바이처가 도착할 기차역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1등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다 내릴 때까지 슈바이처 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2등칸을 타고 왔나 생각해서 사람들은 다시 2등칸 쪽으로 몰려갔습니다. 역시 거기에도 슈바이처 박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3등칸 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3등칸의 맨 끝에서 슈바이처 박사가 내리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니 박사님처럼 위대하신 분이 왜 3등칸을 타고 오셨습니까. 1등칸을 타고 오실 수 있었을텐데요.”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4등칸이 없어서요” 겸손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누가복음 14장 11절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 두 번째로 아비가일의 부드럽고 지혜로운 말을 본받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아비가일이 이렇게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댄 것만도 대단한데 겸손한 아비가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십쇼. 24절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 주여 라는 표현이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 되시고 나는 노예입니다. 하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로 “아도니”라고 발음하는데 이 아도니는 나는 노예니 죽여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런 표현이기도 하구요. 아도니 라고 해서 소유격으로 나의 주님, 그냥 주인이 아니라 나의 유일한 주님이란 표현으로 오직 나의 전부가 되시는 분이란 표현이기도 합니다. 더 신기한 것은 이 아비가일이 이 “내 주”라는 표현을 오늘 본문에서 어마어마하게 썼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24절부터 31절까지 내 주라는 표현이 몇 번 쓰였는지 세어보십시오. 여덟절 동안 무려 29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놀래시지도 않네요. 평균 한 절마다 3번 이상을 계속해서 쓰면서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 보고서도 아비가일이 얼마나 겸손한 여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내 주”라는 표현만으로도 다윗의 마음은 이미 누그러져 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성도님 중에 한 분은 저를 만나면 꼭 이렇게 인사를 하십니다. “존경합니다. 목사님”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남사스러운지요. 솔직히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고 그렇습니다. 마음이 그냥 확 열리면서 안아주고 싶더라구요. 하물며, 이렇게 그냥 존경하다는 말만 들어도 사람의 마음이 확 열리는데 당대 최고 부자 나발의 아내가 땅에 엎드린 것도 모자라 “내 주여” 내 존귀하시고 유일한 나의 주인님. 이 표현을 29번이나 하는데 얼마나 다윗의 마음이 뭉클해졌겠습니까? 아비가일의 부드러운 표현은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24절 보십시오.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남편 나발의 모든 죄를 다 제가 받겠습니다. 하는 표현입니다.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이 표현도 그냥 말해도 되는데 “주인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하는 정중한 표현입니다. 여기까지만 듣고도 제가 다윗이었다면 이미 큰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25절도 보십쇼. “원하옵나니” 즉 저의 소원입니다.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26절 보십쇼.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즉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듯 내 주인이신 다윗도 살아 계십니다.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27절 이 여종이 가져온 예물을 주인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도록 허락하소서. 28절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인님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십니다. 주인님을 악한 일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29절 하나님이 주인님의 생명을 생명싸개 속에 싸여 보호하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31절까지 이런 표현들을 아비가일이 쓸 수 있는 아니 모든 여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표현을 총동원해서 다윗에게 말로 표현하는 아비가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부드러운 표현, 한 여인이 표현한 가장 아름다운 말이 바로 이 표현입니다. 저는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 한 85세 할머니가 남편이신 86세 할아버님 보고 어머 당신 알통이 아직도 살아있네 했더니 남편 할아버님께서 밤마다 아령을 하셔서 근육이 40대로 돌아가는 그 장면이 떠올랐고요. 또 하나는 저와 여러분 가정에 이렇게 말하는 여인들만 있으면 가정의 남편들은 자존심이 살아나며 남편들이 다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갈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집사람도 오늘 이 아비가일의 표현을 꼭 들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잠언 31장 26절에 현숙한 여인은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할 때에” 29절 남편이 이렇게 칭찬한다고 했습니다.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모든 여인들이 아비가일처럼 부드럽고 지혜있게 말하시고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모든 남성들이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하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3.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아비가일의 특징, 아비가일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여인이었습니다. 어제 아비가일이라는 이름의 뜻이 뭐였죠? “나의 아버지는 기쁨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름대로 아버지 하나님이 나의 최고의 기쁨이었던 아비가일이었기에 다윗과 대화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내 주 라는 표현은 29번 나오지만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도 아비가일과 다윗의 입을 통해서 10번 이상 나옵니다. 아비가일이 하나님께서 내 주인의 손으로 피흘리심을 막기 위해 저를 보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든든히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 싸개 속에 다윗을 보호하십니다. 했더니 다윗도 32절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네가 오지 않았으면 아침에 네 집에 한 남자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했더니 다윗도 아멘하면서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화를 누그러뜨리고 평안히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니 다윗도 아비가일의 집안도 다 화평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셔서 싸움이 그치고 미움이 사라지고 화평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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